담배 때문에 무릎을 꿇고 빌다
나로 인해 모든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아빠는 단식 투쟁을 해제했고 엄마도 웃음을 되찾고 불안해했던 반려견도 안정을 되찾았다. 분위기는 안정되었고 예전처럼 활기를 띠게 되었다. 실내 흡연 문제 때는 항상 씻고 곧장 방으로 가서 잤는데, 아빠는 퇴근해서 TV를 보고, 엄마와 가볍게 대화하고 11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아, 그땐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던가.’
아빠의 모습을 보며 뭔가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고 기분이 불편했다. 가정에 평화가 온 것이 온전하게 기뻐할 수도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은 애매한 감정이 교차했다. 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공허했다. 맥이 빠져 보였는지 엄마가 내 방으로 왔다. 내 곁으로 와서는 엄마가 다 안다고 손을 토닥이다가 꼭 잡았다.
“우리 딸 애쓰는 거 엄마는 다 알아. 고마워.”
“엄마도 내가 예민하다고 생각해? 담배 냄새 잘못 맡을 정도로?”
“분명히 담배 폈을 거야. 저번에도 우겼잖아.”
그나마 엄마의 말이 내게 위안이 되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에 돌덩이를 얹은 것 같았고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뒤엉켜 있었다.
“우리 딸이 정말 대인배야. 아빠보다 그릇이 넓어.”
엄마의 칭찬에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뭔가 자꾸만 의심스러웠다. 그럼에도 가족 전체가 안정되고 있으니 내 선택이 옳은 거라 합리화하려 애썼다. 이게 맞는 걸까. 불쑥 의구심이 들 때마다 애써 눌렀다. 이게 맞아. 이게 맞는 거야! 대뜸 마음이 안 좋아질 때마다 주문처럼 외웠다. 괜찮아. 괜찮잖아. 내가 선택을 했고 다들 상태가 나아졌으니까 힘든 게 아니라고.
마음이 무거울수록 애써 웃어보려고 입꼬리를 올렸다. 기분이 조금은 괜찮아지기를 바라며 혼자 거울을 보며 미소 지었다. 다수가 괜찮으니 이 정도는 힘들어도 내가 감당하고 참는 것이 맞는 거라고.
혼란스러울 때마다 스스로를 질책했다.
도전한 공모전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머릿속에 형형색색의 실타래가 의미 없고 무책임하게 뒤엉켜 있는 기분이었다. 집중이 되지 않았고 몇 시간이고 멍을 때렸다. 생각이 마구잡이로 머릿속으로 들어오는데 그 형상이 또렷하지 않았다.
생각을 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 영혼에 겹겹이 불안이라는 먼지가 겹겹이 차곡차곡 쌓였다. 하려고 하는데, 단 몇 줄도 쓰기가 힘들었다. 억지로라도 생각해보려고 해도 나사가 빠진 로봇처럼 삐걱대며 시간을 보냈다. 결국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상실감이 커졌다. 악착 같이 독하게 이를 악물고라도 해야지. 스스로에게 비난하며 하라고 질책했지만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렇게 단조롭지만 서서히 지치는 일상이 지속되었다.
가족 대통합을 이룬 그 주 토요일에 아빠가 술을 제안했다.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았으니까 고기와 술을 마시며 친목을 도모하자는 거였다. 엄마는 내 눈치를 슬쩍 보면서 그 이야길 꺼내었다.
“에효, 이 양반이……. 딸이 공모전할 때마다 항상 술이더라. 이번에는 도와준다고 하더니 또 이러네. 또 이래.”
모든 일을 덮기로 한 그날 아빠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지금부터라도 네가 하고 있는 공모전을 잘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내가 공모전을 도전할 때마다 아빠는 늘 술 약속이 잡혀 있었다. 그때마다 늘 진탕 마시고 들어와서 내 컨디션을 깨트리고는 했다. 그런 후에 아빠는 미안하다면서 이번에는 꼭 도와주겠다는 말을 언제나 반복했다. 아빠에게 도움을 준다는 의미가 어떤 걸까. 내가 생각하는 도움이란 상대가 필요한 부분을 배려해주는 건데, 나와 사뭇 다른 개념을 가진 것 같았다.
“됐어. 어차피 글도 잘 안 써지는데.”
“이럴 때 도와주면 좀 좋을까.”
“근데 술 마시면 또 흡연 욕구가 올라오는 거 아니야?”
엄마와 나는 제일 먼저 그 부분이 걱정이 되었다. 엄마도 아빠에게 그런 걱정을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빠는 담배 생각 안 난다고 답을 했다고.
염려스러웠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고, 결국 친목 도모는 성사되었다. 엄마는 낮부터 마트에 가서 고기와 재료들을 사왔다. 토요일에 회사를 가지 않는 아빠는 느긋하게 침대에서 낮잠을 잤다.
엄마 혼자 바쁜 것 같아 마음이 미안해졌다. 글을 쓰다가 나는 부엌으로 가서 배달이 온 상자를 뜯어 물건들을 정리했다. 허리 펼 새 없이 엄마는 저녁에 먹을 재료를 손질했다. 저녁을 먹을 쯤이 되자 코를 골며 자던 아빠가 거실로 나왔다.
그러자 엄마와 나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나는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고 엄마는 반찬을 세팅했다. 1월 말 단 한 차례 실내 흡연만 인정한 아빠만이 오직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잠시 뒤 고기가 식탁에 올라갔고 아빠는 식탁에 앉았다. 엄마가 얼른 냉동실에 잠깐 얼려둔 소주를 잔과 꺼내 내왔다. 이상한 게, 모든 게 아빠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난리 나게 한 장본인은 아빠였다.
그럼에도 나와 엄마는 아빠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여보. 고기 따듯할 때 드세요.”
아빠는 고기를 쌈 싸먹고 소주를 따라 시원하게 들이켰다. 아빠를 보고 엄마와 나와 반려견도 그제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고기를 먹는데 아빠가 본인 잔에 술을 따랐다. 그러더니 각자의 잔에 따르라고 했고 아빠는 잔을 들었다.
“그 동안 힘들게 해서 미안해. 앞으로 잘 살아 보자.”
실내 흡연을 한 적 없어 억울하다 했다. 잘못이 없는데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인건가. 의문 속에서 서로의 잔이 하나가 되어 부딪쳤다. 아빠는 만족스럽게 술을 쭉 들이켰고, 나는 어딘가 모르게 갑갑했다. 등의 어딘가가 간지러운데, 그 지점을 찾지 못한 것처럼, 긁어도 시원치 않고 어떠한 이상한 갈망이 생겼다.
혼동 속에서 고기를 묵묵히 고길 씹었다. 그저 기계적으로 치아를 움직이고 음식 덩이들을 목구멍으로 조용히 삼켰다. 그저 먹는 행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동생 S였다. 핸드폰 너머로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가득히 들려왔다. 문득 달력을 보고 나는 짧은 탄식을 터트렸다. 이 날은 외가 사촌들이 오랜만에 한데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외삼촌의 차남은 호주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오랜만에 한국에 귀국을 해서 사촌끼리 만나자는 제안을 해왔다. 나는 그때 혹독한 시련을 겪던 터라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외가 사촌들 중에 나만 불참하게 된 것이다. 동생은 지금 사촌들 만나고 있다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바꿔주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나는 사촌들에게 잘 지내고 있냐는 안부를 물었다. 사촌들은 간만의 만남에 들뜬 목소리였고 즐거워 보였다. 나만 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서러운 감정이 내 안에서 목울대를 훅 치고 올라왔다.
다음에 꼭 보자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온 몸에 뒤엉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맥주를 더 사오겠다며 황급히 집을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내 존재가 먼지 같았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치가 없고 우주에서 둥둥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지하 주차장으로 왔다. 아파트 내에 편의점이 연결이 되어 있다. 터벅터벅 한 걸음씩 내딛는데 참아왔던 감정이 차올랐다.
내가 팔삭둥이라서 이해력도 떨어지고 지능이 낮은가. 왜 나는 무던하지 못하고 성격이 예민한 걸까. 나는 왜 나약하고 독하지 못할까.
마음에 주황글씨처럼 새겨진 나에 대한 평가들. 그것들을 지워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을 했다. 배우고 익히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실패해도 또 시도하고 연구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승기를 잡고 흔드는 거북이를 상상했다. 근데 왜 나는 같은 지점에만 머물고 있는 것 같은가. 수영할 수 있는 오리지만, 수영을 하지 못하고 물만 먹고 있는, 생태계에 오류 같은 존재, 그게 나인가.
눈물을 참고 또 걷고 걷다가 주차장 가운데 멈칫 섰다. 언제나 실패를 맛봐도 눈물을 훔치며 곧 웃을 수 있다고 다짐하던 내 모습들. 그 기억들이 우두두 쏟아지자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언제나 꿈꿔왔던 건 나의 행복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하고 활짝 웃고 싶은지 다였을 뿐이었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마음속에서 그 말이 울대까지 치고 올라왔다. 아파트 내 지하 주차장에서 나는 처량 맞게 울었다. 눈이 빨개진 채로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고 집으로 왔다. 안으로 들어가자 엄마와 아빠는 TV를 보고 있었다. 가볍게 대화도 하고 웃는 내 부모님을 보며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은 안정을 찾았는데, 나는 왜 이리 불안한가. 다행인건데 내 이기적인 욕심인가. 일상을 찾은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나는 죄책감이 들면서 지독하게 고독이 밀려 들어왔다. 어떤 영토에도 속하지 못하는 섬 같았고, 가족과 분명히 함께 있지만 나는 사무치게 외로움을 느꼈다.
그래, 이건 아니다. 내 마음의 목소리가 말했다. 이건 분명히 뭐가 잘못된 거라고. 내 마음이 불편하다면 뭔가 방향이 틀린 거라고.
나는 TV를 보는 아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 행동에 당황을 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나는 아빠에게 빌었다. 비록 내가 없던 일로 만들어준다고 했지만, 내 진심이 제발 아빠에게 닿기를, 다시는 담배로 내 모든 시간이 멈추지 않기를 바라며.
“아빠 나 좀 도와줘! 나 좀 제발 살려줘!”
나는 눈물로 아빠에게 간절히 호소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통증을 겪기 싫었고, 실내 흡연으로 인해 정신적인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도 끔찍했다.
“집안에서만 담배 안 피고, 내 건강만 안 나빠지면 내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그 약속만 꼭 지켜줘. 제발, 부탁이야.”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빠는 정색하며 ‘아, 얘가 왜 이래?’하며 황당해하다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마치 ‘지가 덮자고 해놓고 이제 와서 난리야?’라는 눈빛이었고, 비어진 아빠의 자리를 보며 나는 오열했다. 엄마는 나를 일으켜 세웠고, 방으로 갔다. 나는 엄마를 끌어안고 서럽게 울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안아주며 어깨를 다독였다.
엄마는 꼭 그렇게 될 거니 걱정 말라고 등을 쓸어내렸다. 아빠가 집안에서 담배를 계속 피면 나는 희망이 없다며 울었다.
“아빠가 약속했잖아. 이젠 안 그럴 거야.”
그날 밤 우리 모녀는 서로 끌어안고 보이지 않는 희망을 품었다. 며칠 뒤에 아빠는 내가 무릎 꿇은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가 술에 취해 꿇고 싶어서 멋대로 꿇어놓고.
아빠의 말이 내게 칼이 되어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이 이후로 나는 담배 냄새를 맡기만 해도 신체적으로 이상 증세가 생기게 되었다.
비흡연자인데 담배 알레르기 환자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