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마디가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 티켓일 줄이야
2022년 2월 2일에 한 차례. 2022년 3월 9일 테이프로 막힌 방에서 한 차례. 나는 총 두 차례에 걸쳐 집안에서 담배 냄새를 맡았다.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 원인되는 요소를 제거해 상황을 해결하는 거였다. 내 건강이 무너진 건 확실히 집안에서 빠지지 않는 담배 연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아빠의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고 방법은 금연뿐이었던 것이다. 근데 아빠는 죽어도 아니라고 부정했다. 내가 절박하게 쓴 맹세 서약서에도 기꺼이 맹세를 한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이거다. 상대가 자신에게 어떠한 의혹을 가지고 있다면, 굉장히 억울한 상황이지 않나. 일반적으로는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어. 그게 아니야.’라면서 본인이 그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아빠의 행동은 어딘가 미심쩍었다.
내가 실내 흡연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나. 진짜 아니라면, 그 행동을 한 적이 없다면 화들짝 놀라는 게 일반 상식이지 않나. 아빠는 담담했고 0.1초 만에 아니라 부정했다. 오히려 내게 본인이 흡연을 한 게 맞느냐며 되물으며 질책하듯 몰아 붙였다. 아빠는 본인이 담배를 집안에서 피지 않았다는 걸 가족들에게 이해시키거나 설명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갑자기 발작을 하면서 화를 냈다. 잘못이 없다면 억울해하며 해명해야 하는 게 먼저이지 않은가. 그 지점이 매우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분명히 담배 냄새를 맡았는데 아빠가 죽어라 아니라고 하니까 답답한 건 내 몫이었다.
주말에 식사하라는 엄마 말에 ‘밥 안 먹어!’를 시전하고, 아빠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안 먹으면 어떻게 하냐고 당황해했다. 당뇨도 있고 여러 약들을 복용하는데, 끼니를 거르면 속이 상하고, 건강이 안 좋아지니까 조금이라도 먹으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아빠는 완강히 식사를 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것은 분명한 데자뷰…….
단식투쟁을 하는 아빠를 보고 딱 느낌이 왔다. 내가 이쪽 방면은 뼈가 저릴 정도의 조기 교육을 했던 터라 확신할 수 있었다.
엄마, 이거 할머니랑 너무 똑같지 않아?
그렇다. 이 수법은 친할머니와 살았던 내내 당했다. 우리는 할머니와 살면서 늘 밥을 한 번 먹는 것이 전쟁이었다. 할머니는 우리 집의 혁명적인 단식 투쟁가였다. 저녁 먹기 2시간 전부터 할머니는 달달 볶았다. 입맛이 없어서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 시어미니를 설득해 밥상 앞에 앉히고 엄마는 숟가락을 꼭 쥐어드렸다. 그럼 목이 까끌까끌해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양반이 고봉 밥 한 그릇을 뚝딱했다. 그때 할머니 나이가 60대였다. 집안의 제일 큰 어른이 늘 밥을 안 먹겠다고 선두주자로 나서니 어린 내 눈에 참 이상하게 보였다. 음식을 섭취하는 건 생존의 기본 조건 아닌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할머니와 사는 7년 내내 그녀의 단식투쟁은 한결 같았다.
안 먹어! 안 먹는다! 찢어질 것 같은 고성은 당연했고, 기분 좋게 밥을 먹은 기억도 없을뿐더러, 이런 환경에서 소화가 될 리가 없었다. 밥을 먹는 게 즐거운 일이 아니라 고역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빠는 할머니를 닮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편식은 해도 엄마의 밥상을 거부한 적이 없었다. 근데 실내흡연 이슈가 수면 위로 오르게 되자 아빠가 할머니처럼 행동했다. 표정과 말투가 싱크로율 100퍼센트였다. 할머니는 세상은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정말이지, 그녀의 영혼이 아빠에게 빙의된 줄 알았다.
그 징글징글한 단식 투쟁을 또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아빠는 지금 뭔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거겠지. 내가 계속 담배 피는 게 맞다 주장하니까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거지. 할머니처럼.”
나는 엄마에게 이런 행동을 받아주지 말라고 조언했다. 아빠가 식사를 할 때까지 어떠한 반응도 하지 말라고. 엄마는 알겠다고 했고 아빠는 본격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아빠는 출근할 때도 끼니를 거르고 나갔다. 퇴근해서도 씻고 곧장 9시에 자러 들어갔다. 주말 저녁때도 문을 닫고 식사를 거부했다.
왜 저러는지 복장이 터졌다. 그럼에도 내가 틀렸다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더 단호하게 행동하여 아빠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었다. 또한 다시는 같은 행동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짐을 약속받고 싶었다. 그런데 뜻밖의 복병이 속출하게 되었고 그게 바로 엄마였다.
“네 아빠 오늘도 아침 거르고 나갔어.”
나와 다짐했던 단단한 결심은 작심삼일이었다. 엄마는 계속해서 아빠의 상태를 내게 수시로 보고를 했다. 오늘은 아빠가 어지럽다고 하더라. 오늘은 아빠가 혈압이 낮아졌다고 하더라. 오늘은 살이 무려 2키로나 빠졌다고 하더라.
“엄마. 아빠가 일부러 저러는 거라니까. 할머니 때도 겪었고, 배가 고프면 사람은 뭐라도 먹게 되어 있어. 지금 우리랑 기싸움 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최대한 방어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다. 엄마는 단호해지겠다고 다짐했지만 며칠 후에 내 방에 다급하게 들어왔다.
“지금 네 아빠 완전 초죽음이야. 저러다 큰일 날 것 같아!”
회사에서 기력이 없어서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어서,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아빠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장 경제력인 부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아빠가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 같으니 엄마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저러다 잘못되면 어떻게 해?”
양 쪽에 틈바구니에 끼어져 나는 진짜 죽을 맛이었다. 이것이 바로 고래 등에 새우가 터져 버리는 꼴이 아닌가. 엄마가 흔들리니 내 평정심에도 금이 가버렸다.
이건 아닌데 내가 진짜 착각하는 건가?
혼동이 왔고 결국 아빠와 대화하기로 결정했다. 주최는 엄마였고 또 다시 협상의 테이블에 앉아야만 했다. 아빠의 표정은 상당히 침울해 보였다. 이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자리에 앉은 나는 침묵하다가 내 의견을 꺼내놓았다. 실내 흡연 두 차례에 관해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하자, 아빠가 대뜸 다른 부분에 관해서 인정을 했다.
“내가 1월 말에 화장실에서 담배 핀 건 맞아.”
“그것도 아니라며? 억울하다고 했잖아?”
“그건 맞아. 내가 했어.”
아빠는 2월과 3월은 죽어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내가 못 미더운 표정을 짓자 아빠는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가련한 표정을 지었다.
“믿어줘. 진짜야.”
전혀 믿음이 안 가는 호소였다. 여전히 아빠가 실내 흡연했다고 믿었지만 내 몸과 마음은 이미 들들 볶여서 고갈이 된 상태였다. 3월에 테이프로 막힌 공간에서 담배를 폈다는 것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진짜 손끝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들들 볶이니까 이 고통 속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더는 담배 문제로 실랑이를 하면서 감정 소모를 하는 걸 끝내고 싶었다.
“알겠어. 이번 건 내가 없던 일로 할게.”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거야. 대신 이젠 집안에서 담배 피는 걸로 더 이상 문제를 만들지 마. 제발!” 아빠는 이때 얼마나 회심의 미소를 지었겠나. 자신이 어떤 일을 해도 없던 일로 만들어주는 딸내미가 있으니 든든했을 것이다. 단식투쟁을 선포하고 비실대면 아내가 화들짝 놀라고, 딸은 어차피 없던 일로 해줄 테니까, 굳이 금연 따위 하지 않아도 되겠네?
영혼까지 탈탈 털릴 정도로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빠의 의도가 보였다. 나는 그때의 내 선택이 뼈가 시리고 분통 터질 정도로 후회스럽다. 없었던 일로 만들어 주는 것. 별 거 아니어 보이지만 그건 내 주도권을 상대에게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양도하는 행위였다. 특히 비상식적이고 기괴한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당신의 먹잇감이 되겠다고 자처하는 것과 같았다.
그땐 아빠의 실체를 몰랐기에 이 같은 선택을 했다. 엄마도, 아빠도, 나도, 반려견도 다 힘드니까 모두를 위한 길이라 여겼다.
이유는 단 하나, 가족이라서, 가족이니까.
“알겠어! 다시는 그럴 리 없어!”
아빠는 내 말을 들으며 활짝 웃었다. 근데 참 기묘하지 않나. 본인이 2월과 3월에 실내 흡연을 한 적이 없다면 이렇게 넘어가는 게 말이다. 나 같으면 이 부분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고 억울함을 끝까지 주장했을 것이다.
“내가 이 참에 독하게 마음먹고 금연한다.”
무슨 일인지 아빠는 전혀 억울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속이 후련해 보였다. 말과 행동에 모순이 느껴졌지만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