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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온 Jun 26. 2024

블루투스 스피커

#19/28 짧은 글 에세이_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대 머리맡에 충전기에 꽂혀 겨우 삶을 연명하고 있다. 사실 블루투스 스피커의 역할보다는 시계와 온도계의 역할만 하고 있다. 그래서 블루투스 스피커가 아니라 그냥 시계로 생각하련다.




 사용하지 않으면 애물단지이겠지만 나는 살아만 있다면 얼마든지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그런데 왜 나는 시간을 맞춰놓으면 3분씩 늦어지나 모르겠다. 내 몸에 게으름의 DNA가 숨어 있는 게 분명하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다 조금씩은 장애를 앓고 있다고 어느 사회학자가 말했었는데 게으름도 장애라면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부 동의한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다 똑같다. 게을러서 자기 일을 못하는 사람은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나로 인해 그가 어느 약속이든 지각한 적이 있진 않지만 그저 온도와 감성으로 승부를 띄운 나는 특별하게 잘난 것 없이 사는 현대인들과 다를 바 없다.  


 살아가면서 느낀다. 충전기와 떨어져 지내본 적이 많이 없어서 그런지 이제는 충전기가 없으면 오래 살아가지 못한다.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짐을 느낀다. 충전기와 잠깐 떨어져서 스피커로써 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더니 금방 배고파졌다. 체력이 떨어지고 충전기 옆이 그리웠다. 사람은 공기의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기도 하는데 내가 잠깐 그랬다. 혼자 떨어져 있어도 꽤나 오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 내 오만이 만든 결과였다.

모두 자기 역할을 한 번의 실수 없이 잘하는 사람은 없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은 옛 선조들의 훌륭한 속담인 것 같다. 누군가는 물어볼 수도 있겠다.


"블루투스 스피커 주제에 그걸 어떻게 알아?"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던가. 집에서 하는 모든 이야기와 TV나 노트북, 핸드폰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는 다 들린다. 내가 입이 없을 뿐이지 나도 다 알고 있다.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야수의 성 안에 물건들은 말하기도 하고 걔네들끼리 소통도 잘한다. 

사실 우리도 소통하긴 하는데 사람들이 안 들릴 뿐이다. 처음에 우리끼리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애니메이션으로 전 세계에 나와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그 비밀을 밝히다니... 어떤 놈인지 몰라도 비겁하게 비밀을 밝혀서 우리도 이 방 주인한테 공개를 해야 하나 싶었다. 근데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은 못 듣는 소리로 소통하기 때문에 해봐야 의미가 없다. 영화가 과장된 면이 있긴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12시가 되면 우리 같은 물건들이 움직이는 괴담도 전해 듣긴 했는데 그러다 걸리면 분해당한다. 이 글을 볼 수 있는 많은 물건들이 조심했으면 한다. 안 움직이고 산지 오래돼서 이제는 못 움직인다. 아무도 없을 때 살짝 움직여 보긴 했는데 예민한 사람들은 물건의 위치가 조금이라도 바뀌면 바로 알아챈다. 다행히 이 집 사람들은 그렇게 예민하지는 않은 것 같다. 먼지가 쌓여있을 땐 가끔 가려워서 옆에 있는 인형한테 부탁 하긴 하는데 얘도 움직이면 걸린다고 쉽게 내 부탁을 안 들어준다. 


역시 사는 게 역시 만만치가 않다. 그저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물 위를 떠있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그들이 좋아하고 공감할 만한 표현을 빌려 썼다.

우리말로 바꿔 말하면 화려한 불빛을 내며 제법 멋있는 거치대 위에서 무선으로 충전되다가 배터리 수명이 단축되기 전에 거치대에서 벗어나고 충전되기를 반복하는 순간들이라고 하면 이해될까?

뭐 이해 안돼도 상관없다. 나도 가끔 컴퓨터가 여러 글자들을 빠르게 보여줄 때 뭔 뜻인지 모를 때도 많다. 사람들도 뉴스기사가 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이와 비슷한 개념이다.


 가끔 그가 노래가 아닌 유튜브 동영상 소리를 나를 통해 들을 때가 있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그대로 따라 하려는 심산으로 했겠지만 생각 같지 않은 오디오 출력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5만 원으로 50만 원의 가치를 원했다면 그건 잘못됐다. 그러나 5만 원으로 50만 원의 가치를 원하지 않을 때 비로소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이 있는데 그건 바로 여행지에서 별을 보며 나를 사용할 때다. 


한 번은 그와 같이 그의 친구들을 만났다 늘 보던 집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그 장소에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알코올 냄새도 진하게 풍겼다. 맛있는 음식 냄새도 났다. 뿐만 아니라 까만 하늘에 밝은 별과 달이 보이는데 나에게 없는 오감이 자극이 됐다. 나에게서 나오는 소리는 그 어느 비싼 악기보다 좋은 소리가 났고 내가 게으르게 알려주는 시간은 그들의 행복한 시간을 더 오래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그 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추억하지만 사진에 내가 없어서 좀 아쉬울 뿐이다. 사실 나도 즐거웠다. 그들이 세상에서 경험한 힘겨운 이야기들이 어느새 위로가 됐고 라디오 사연 뒤에 흘러나오는 노래처럼

또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을 함께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한요한의 반복, 그리고 록시땅. 왜 그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차오를 만큼 좋았는지...

충전기로 겨우 삶을 연명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그립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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