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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온 Jun 19. 2024

안경

#17/28 짧은 글 에세이_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내 투명함은 안과 밖을 연결 짓는 통로이기도 하면서 보호막이기도 해.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는 그 통로이자 보호막을 두껍게 만들어서 멀리 있는 것도 잘 보이게 만들더라고. 지금 나를 사용하고 있는 이 사람은 좋은 시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를 사용 중인데 나를 통해 보는 글자들을 머릿속에 담아두려고 노력하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 있어. 안과 밖을 연결 짓는 통로에 글자들을 집어넣고 있는 셈이지. 집어넣어진 글자들은 머리와 가슴으로 들어가 사람을 더 성장시킨대. 말을 좀 어렵게 하는 거 같다고? 

맞아, 나도 이 사람처럼 내면에 복잡한 무언가가 있는지 괜히 말을 어렵게 하게 돼. 





 너네는 '안경'하면 무슨 생각이 들어? 내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패션이나 공부 잘할 것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더라고. 나를 선택한 이 사람은 두 개 중에는 '패션'쪽에 가까운 것 같아.

그래도 이 사람은 글을 좋아하나 봐. 피곤해도 짧게라도 책을 읽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해 보이더라. 책을 읽기만 하지 않고 글을 쓰기도 하는데 쓴 글들로 책을 만들 건가 봐. 전보다 훨씬 더 나를 찾고 있어. 

덕분에 나도 좋은 책들을 많이 보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안경잡이라고 놀림받는 친구들이 대부분 똑똑했다고 들었거든. 그래서 마치 내가 그때 그 시절 똑똑한 안경잡이가 된 느낌이야.

이 집에서는 아마 내가 제일 아는 게 많은 똑똑한 사물이지 않을까 싶어. 좀 오만해 보였다면 사과할게 굳이 욕먹어가며 똑똑한 사물이 되고 싶지는 않거든.


 내가 며칠 전에 그와 함께 거울 앞에 선 적이 있는데 내 투명한 유리알이 살짝 노란빛을 띠더라. 아무래도 노트북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를 차단할 목적으로 쓰고 있는 것 같은데(이것도 책에서 봤어) 그런 거라면 날 정말 잘 사용하고 있는 거야. 시력 보호는 모든 생명체에게 정말 중요한 거니까. 사람에게 다섯 가지 복이 있다는데 그중 하나가 시력이래. 시력이 좋은 건 모든 사람이 공감할 만한 정말 좋은 스펙이잖아. 이 사람은 나를 잘 보이기 위한 수단보다는 보호막으로 사용하고 있어. 지금 시력이 좋은 것 같아. 저번에 듣기로는 왼쪽 1.2에 오른쪽 1.5라고 했나? 아직 올해 시력은 재보지 않았지만 아마 크게 바뀌진 않은 것 같아. 바뀐 게 있다면 나를 쓰고 있는 그의 이미지가 바뀌었어. 외적으로 뿐만 아니라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그의 내면까지도 말이야. 


 이건 내 생각도 있지만 그와 같은 사람들의 말인데 어느 날 그가 늘 다니던 교회를 갔을 때 교회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대 "안경 쓰니까 사람이 좀 달라 보인다." 공감이 되는 게 날 사용하는 이 사람은 지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싶을 때 날 사용한다던가, 부은 얼굴을 가리고 싶을 때 날 사용하더라고.

그런데 좀 달라 보인다는 말이 꼭 좋은 뜻만은 아니었던 거지.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어. 나는 요즘 유행하는 투명한 테를 가졌고 금색의 포인트들을 갖고 있는 나름 세련된 안경이라고 생각했는데 날 쓰고 간 날, 그가 들은 말은 '윌리를 찾아서'의 윌리 같다는 거야.(※ 검색해 보면 월리, 윌리 둘 다 같은 것으로 나온다.) 내가 놀림당한 것처럼 기분이 약간 묘했는데 이 사람은 웃더라. 

안경을 쓰지 않던 사람이라 그런가 나를 쓴 본인도, 안경 쓴 이 사람을 본 사람들도 어색해했어. 그래서 집에서만 쓰는데 자꾸 쓰다 보니까 금방 익숙해지는 거 있지? 나도 처음에 그들이 어색하는 걸 느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를 쓰고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그를 보고 많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예전에 나 말고 안경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친구는 그의 회사 서랍 제일 아래 칸 중에서도

안쪽에 뿌리가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대. 그 소식을 들으니 나도 언젠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 했었는데 그 친구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참 다행이야. 사람 인생만 쉽지 않은 게 아니더라.

품생(品生)도 결코 쉽지 않아.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계속해서 어필을 해야만 해. 마치 사람들이 끊임없이 삶에서의 안정욕구 느끼고 싶어 하는 것과 취업시장이나 어떤 집단 내에서의 소속욕구를 느끼듯이 말이야.


 자주 쓰다 보니 주변 사람들도 나를 쓴 그를 어색해하지 않아 하더라. 이제야 비로소 한 몸이 된 거지. 언젠가 그의 시력이 떨어지면 나에게서 렌즈만 바꿔 끼우면 되니까 크게 불안함은 느끼지 않아.

그가 달력을 볼 때 나도 같이 본 적이 있는데 어느새 그와 함께한 지 3개월이 지났더라. 안경 쓴 사람들이 가끔 무슨 일을 하다가 피곤하면 눈물샘이 있는 눈 앞쪽을 문질러주곤 하는데 최근 며칠 사이 그가 나를 눈 위로 올리더니 눈 앞쪽을 문질러주고 있었어. 그도 점점 나를 쓰는 게 피곤해진 건지 자주 그러더라고. 나를 보던 눈빛도 예전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여전히 나를 찾아주고 있음에 안도와 불안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요즘이야. 그래서 든 생각인데 들어보고 어떤지 판단해 봐. 

내가 그와 붙어 있을 때 그에게 계속해서 텔레파시를 보내던 뇌파를 보내던 어떤 식으로든 교감을 해서 밤에 불 꺼놓고 침대에 누워서 지금처럼 폰을 보라고 하려고. 그래야 나를 좀 더 오래 쓰지 않겠어? 아... 이건 너무 나쁜 마음인가? 어차피 아예 깜깜한 환경도 아니고 매번 침대 머리맡에 전등이 있어서 전등을 켜고 폰을 보다가 잘 때 다 끄고 자는 게 그의 루틴이야. 지금처럼만 하라는 거지. 더 많이도 말고 딱 지금처럼 적당히 말이야. 그의 시력이 너무 나빠지면 나도 마음이 아파. 진짜 진심이야. 나를 너무 나쁘게만 몰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좋아하는 사람 옆에 붙어 있고 싶으면 이 정도 욕심, 질투는 할 수 있잖아?!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아. 나도 그 아름다움을 내 수명이 다 할 때까지 보고 싶어. 좋은 글, 좋은 영상, 좋은 사람들과 함께

그들이 웃고 있는 그 자리에 있고 싶어.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 결코 외로운 삶을 살지 않는 건 어느 누구나 다 원하는 삶이지 않을까?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그렇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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