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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온 Jun 25. 2024

기타

#18/28 짧은 글 에세이_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의 차 안에서는 항상 밴드 음악들이 흘러나온다. 

일렉기타의 다양한 톤과 화려한 연주, 그에 맞춰 베이스와 드럼은 우리 몸을 

들썩 거리게 만들 만큼 폭발적인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 또 보컬은 어떤가.

이제는 실력이 없으면 절대 뜨지 못하는 밴드계에서 그가 즐겨 듣는 음악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들어보니 나는 그에게 두 번째였다. 이미 먼저 그와 조우한 기타가 있었다. 첫 번째 기타는 기타 줄과 넥 사이 간격이 컸다고 한다. 나름 조절을 했지만 여전히 높게 떠 있는 기타 줄이 기타 초보였던 그에게 부담이었다. 

그래서 그 기타는 그가 다니는 교회로 기부가 됐다. 살짝 높았던 것 외에는 문제없이 잘 칠 수 있는 기타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다시 기타를 치고 싶어 했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기타를 사러 악기점에 갔다. 전보다 더 비싼 기타이면서 줄과 넥 사이의 간격이 많이 떠있지 않은 기타들을 하나씩 만져보고 결정했다. 기타 내에 자체적으로 이퀄라이저를 조절할 수 있는 기타였다. 그게 바로 나다. 

처음 나를 골랐을 때 무척 좋았다. 그가 내 줄을 쓸어내렸을 때 나는 아름다운 소리로 그의 귀를 자극했다.


 그의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 들어가자마자 바로 나를 꺼내드는 그에게서 반짝이는 눈을 봤고 성실한 모습을 봤다. 하고 싶던 곡이 있었는지 바로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그에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그는 교회를 다니지만 가요도 좋아해서 다양한 곡과 스타일로 기타 연습을 했다. 한 음씩 선율을 만들어 치는 아르페지오 주법과 경쾌한 리듬이 돋보이는 퍼커시브 주법을 좋아해서 한 동안 그런 곡들만 연습했다. 

그 이후에는 교회오빠답게 CCM이라는 장르를 주로 연습했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기타에 대한 열정이 식었는지 지금 내 케이스에는 먼지가 쌓여있다. 책장과 침대 사이 빈 공간에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다. 

이제는 아주 가끔 나에게 눈길을 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집에 늘 늦게 들어오던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자주 하지도 않던 그가 어느새 집에 일찍 들어오고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요즘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뒤에서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새벽에는 미라클 모닝을 한다고 졸린 몸을 일으켜 터덜터덜 거실로 걸어 나가 물을 담은 컵 하나를 들고 부스스한 채 의자에 앉아 자판을 열심히 두들기고 있었다. 자판 소리가 안 들리는 날에는 책을 읽고 화면 속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독서모임을 하는 듯했다. 그 외에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들에 그에 기대에 부응했다. 

이렇게 부지런하게 사는데 나에게 관심 가져주지 않는다고 내가 서운해 할 수가 없다.

뒤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언제 가져줄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 가끔 치는 날이 길게 이어지다가 마침내 기타를 자주 쳐야만 하는 상황이 생기면 오래가지 못하지만 하루 루틴 안에 반드시 들어간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행사지만 기쁨으로 그의 도움이 된다. 음악이 주는 기쁨은 음악을 잘 못해도, 무지해도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음악이 만국의 공통언어다'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다. 

전 세계적으로 BTS와 블랙핑크가 유명해졌고 그 이전에 싸이로부터 시작된 한류가 지금은 OTT드라마까지 뻗어나갔다. 물론 1999년에 방영된 허준, 2003년에 방영된 대장금 같은 드라마가 그 시초이긴 하지만 

다 제외하고 봐도 지금은 그때보다 인터넷이 더 발달했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처럼 큰 자본이 없어도 우리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는 음악만큼 짧고 효과 좋은 것은 없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피아노나 기타가 가장 보편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악기라고 생각한다. 이건 나와 함께 하는 그와도 동일한 생각이다. 그는 어느 집단에 가도 자연스럽게 음악 얘기를 하곤 하는데 어렸을 때

피아노나 기타 혹은 다른 악기를 다 조금씩 다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꼭 있었다. 그들이 다 조금씩 밖에 못했던 이유는 대게 이랬다. 꾸준히 하지 못하는 이유는 실력의 진척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금방 실증을 느끼거나 정체된 실력을 키우기보다는 더 좋은 가치라고 판단되는 일에 시간과 돈을 쏟으러 자리를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 또한 그랬다. 어렸을 때 피아노학원을 7년 가까이 다녔는데 지금은 제대로 칠 줄 

아는 곡이 한 곡도 없다. 물론 악보는 읽을 수 있고 음악을 한 번도  안 했던 이들보다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더 잘 즐긴다. 연습하면 충분히 연주도 가능하다. 비록 마지막 7년 차에 그의 나이는 17살이고

그로부터 12년이 흘렀기 때문에 세월 앞에서 장사는 없음을 그도 알 것이다. 지금은 그토록 오래 친 피아노보다 집에 내가 있으니 기타인 나를 더 잘 다룬다.

보통 기타를 처음 배우면 F코드에서 많이 막힌다. 평생 해본 적 없는 손 모양으로 힘을 줘서 아픈 걸 참아가며 소리를 내기까지 흥미를 잃지 않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F코드만 소리 나면 그 이후에는 처음보다

덜 힘들다. 물론 일정 단계까지지만 말이다. 어떤 분야이든 하면 할수록 어렵고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틈틈이 기타를 치는 그도 표정에서 훤히 드러난다. 소리 내기도 쉽지 않은 코드와 여섯 줄의 아름다운 조화를 손가락 끝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한 줄씩 튕길 수도 있고 여러 줄을 튕길 수도 있고 정박, 엇박을 넘어가며 다양한 박자들을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 엄청난 실력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에게서 그런 전문가다운 소리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들어줄 만한 연주는 할 수 있으니 박수받을만하다.


 교회에서 나를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이 종종 있어서 자연스럽게 실력이 좋아지고 있다. 

그에게 나는 기타 등등이 아닌 당연히 있어야만 하는 기타 그 자체다. 

음악을 사랑하는 그에게 반드시 수식어로 남는 '기타'

그게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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