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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온 Jul 02. 2024

칫솔

#20/28 짧은 글 에세이_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가 사는 곳은 우리들의 무덤이자 집이다. 우리들이 태어나는 곳이기도 하고 일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 곳에서 태어나고 모든 생 가운데 일과 휴식을 하며 같은 곳에서 노년을 살다가 무덤으로 간다.

이곳은 감옥일까.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내가 머무는 공간은 인간 기준의 7세 정도 되는 어린아이의 손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머그잔으로 불리는 자그마한 컵 안에서 이리저리 부딪힐 때마다 얇고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그곳에서 일주일에 2일만 일하는 친구와 함께 지내게 됐는데 치약이라는 다른 종도 같이 있었다. 치약은 우리와 곧 잘 어울렸다. 닿으면 시원해지는 게 꽤나 중독적이었고 치약과 함께 있을 땐 왜인지 모를 완벽함이 느껴졌다.

 하나의 세트를 이뤘기 때문일까. 내가 있는 곳에 그가 있고 그가 있는 곳에 항상 내가 있어야만 했다. 그게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치약은 내가 일 할 때 항상 따라 나오는 내 보조자였다. 그런데 치약은

날이 갈수록 말라갔다. 일이 힘든지 물어봤는데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했지만 그 속에 분명 말하지 못하는 속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말없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점점 야위더니 날 고용한 고용주가 치약을 데리고 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같이 있는 세월 동안 정들었는데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른 치약이 들어왔다. 전에 있던 치약보다 살짝 작은 치약이었는데 아직 처음이라 밝다.


나는 한 번의 이별을 경험하고 새로운 친구를 봤을 때 전처럼 편하게 웃을 수 없었다. 일주일에 2일만 일하는 친구가 내가 오기 전에 이미 몇 번의 이별을 한 경험을 말해줬다. 당연하게 하는 이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슬퍼하는 건 이번 한 번이면 족할 것이고 지금 이해가 안 될 텐데 좀 지나고 나서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날이 올 거라고 한다. 그리고는 덧붙여 자기 고용주에 대한 얘기도 해줬다.

 "내 고용주는 이 집에 안 사나 봐. 그래서 주말만 일하는데 난 벌써 3번째 치약을 봤어. 나도 처음에는 

   슬펐는데 첫 번째 함께 지냈던 치약이 가기 전에 나에게 해준 말이 있거든 들어봐"

 "어떤 말?"

 "우리들 삶이 이렇게 흘러가는 건 당연한 거래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거야"

뭔가를 배운다는 개념은 그동안 내 삶에는 없었지만 오늘 새로운 걸 배웠다. 세상에는 분명 나보다 똑똑한 칫솔도 있고 나 같은 칫솔도 있다. 치약도 마찬가지겠지. 

아직까지 나는 이 좁은 화장실 속, 그중에 컵 안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듣기로는 나랑 같이 사는 칫솔은 고용주와 한 번 여행을 다녀왔다면서 세상의 다양함을 들려주는데 바다라는 걸 봤다고 한다. 아직 산은 못 봤다고 아쉬움을 표현하는데 무슨 말을 하든 난 그가 부러운 게 사실이다. 바다에는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곳인데 거기는 온통 파랗다고 했다. 


 집이 아닌 곳에는 새로운 것들이 많다. 늘 보던 풍경이 아니라 넓고 탁 트여 답답함이 시원하게 없어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내 앞에 보이는 저 문을 넘어가면 미지의 세계가 펼쳐질 거라는 기대감에 내 고용주는

여행을 안 가나 약간의 불만 섞인 불평과 기대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아 근데 나 말고 다른 칫솔이 더 있는 건 아니겠지? 여행용으로 따로 구비해 놓은 칫솔이 많이 있다고 한다던데 내 고용주에게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김칫국부터 마신 게 나를 좀 더 불편하게 할 뿐인데 알면서도 계속 상상하게 된다. 밖에 나간다면 시원하고 푸른 바다를 보고 싶고 같이 사는 다른 칫솔보다 더 빨리 산을 보고 자랑도 하고 싶다.

그리고 높은 건물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게 좋은 호텔도 가보고 싶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호캉스를 많이 간다고 한다. 내 고용주도 젊은 편에 속하니까 그거까지도 기대해 볼만하다.


 여행에 대한 기대는 접어두고 일상을 살아갈 때, 치약과 함께 일을 할 때 나는 내 고용주의 동굴 같은 입 안을 구석구석 닦는다 저번 치약은 히말라야 소금이 첨가된 치약이라고 했는데 이번 치약은 매콤한 느낌이다.

뭐,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적응하니까 이 치약의 알싸함이 없으면 일을 제대로 안 한 느낌도 든다. 열심히 닦다 보니 나도 이제 슬슬 탈모가 진행되고 있다. 나이를 속일 수가 없었다. 옛날에는 열심히 일해도

멀쩡하던 내 털들이 어느새 열심히 일하고 나면 하나씩 빠지는 게 느껴진다. 죽기 전에 여행을 꼭 가보고 싶다고 고용주에게 전해 줄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그에게 말을 전달해 주세요. 저는 아직까지 여행 한 번 못 가본 불쌍한 생이랍니다. 놀러 가서도 일을 안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본 풍경들이 차가운 타일과 거울에 비친 고용주의 모습만

보기보다는 다양한 풍경을 보며 일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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