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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온 Jul 03. 2024

여행용 캐리어

#21/28 짧은 글 에세이_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행은 늘 즐겁다. 새로운 곳에서 늘 지나온 땅이 아닌 다른 땅을 밟으며

새로운 공기, 새로운 건물들을 마주하는 낯선 기쁨이 좋다.




 특히, 국내여행보다 해외여행이 아무래도 더 짜릿하다. 앞서 말한 것들도

좋지만 새로운 언어를 듣는 것과 평소 타지 않던 비행기를 타며 저 높은 구름 위를 유영하는 경험은 

이미 겪어본 일들도 새롭게 만든다. 다만 사람이 아니어서 창문 밖의 구름을 실제로 못 봤다. 전해 들었고 나를 데려간 동행자가 한 껏 상기된 표정으로 찍은 사진만 봤을 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사람들은 나를 데리고 몇 번씩 해외여행을 갔다. 

각자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일정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내 안에는 늘 옷과 세면도구로 가득 찼고 어떤 날에는 선물로 가득 찬 날도 있었다. 나는 이 집 첫째 아들과 가장 많은 해외여행을 다녔는데 아직 밟지 못한 나라가 많다. 일본 3번, 대만 1번, 홍콩 1번을 갔는데 20살 때부터 퇴사하지 않고 이 정도 다녀왔으면 잘 다녀온 거라 생각한다. 유럽은 둘째 아들과 엄마, 호주와 미국은 아빠가 나를 데려갔다. 덕분에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언어를 경험했다.

마지막 여행이 2019년 10월이 마지막이었는데 그 사이 코로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가 덮치는 바람에 제주도 외에는 못 갔었다. 그리고 마침내 코로나가 종식되고 2024년인 올해 초, 둘째가 이탈리아에 나를 데리고 다녀왔다. 오랜만에 나갔기 때문에 너무 설렜고 하늘길을 지나온 사실이 코로나 종식을 체감하게 해 줬다. 사실 실제로 집 밖을 나가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었다. 그저 누군가의 바람을 TV를 통해, 인터넷을 통해 퍼뜨렸다고 생각했다. 루머라고 표현하는 게 딱 적당한 듯하다.

어찌 됐든 이탈리아는 다녀왔고 루머가 아닌 사실로써 다음 여행의 기대와 설렘은 분명히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초, 이제는 긴팔보다 반팔 입은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아직까진 춥다는 말이 나오는 아주 적당한 날씨에 둘째가 또 싱가포르에 간다고 하길래 엄청 설렜는데 나를 데려가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엄청난 충격이다. 어떻게 여행 가면서 나를 빼놓고 갈 수 있는지.

첫째는 지금 바빠서 해외여행 갈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 언제 또 나갈 수 있는지 불안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최근에 칫솔이 바다를 보고 싶다고 전해 들었다. 산도 보고 싶고 높은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풍경도 보고 싶다고 했던 그 친구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미 나는 다 봐서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난 꽤 살았지만 아직까지 어린아이 같은 칭얼거림을 버릴 수 없다. 내 유전자가 여행 가라고 만들어진 유전자라 그런지 어쩔 수 없는 기질이다. 


 어떤 사람이 여행 가고 싶으면 거리뷰로 그 나라에서 시작해서 가보고 싶은 곳을 마우스 클릭으로

간접적인 여행을 즐긴다고 하는데 내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손이 있다면 그런 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유튜브로 봐도 되지만 그만큼 가고 싶다는 뜻이다. 다음 여행지는 도시 말고 휴양지로 떠나고 싶다. 따뜻한 나라로 떠나서 한가로이 그 나라의 공기와 여유를 만끽하고 싶다. 

그러다 뜻밖에 좋은 소식을 들었다. 첫째의 여행 소식이었다. 베트남 하노이로 3박 4일 놀러 간다고 한다. 첫째는 절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오랜만에 나가는 것이고 3박 4일일 테니 옷도 많이 챙겨갈 거고

그동안 주변에 해외여행을 갔다 온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받은 게 많아서 보답의 의미로 사야 할 게 많으니 무조건 내가 필요하다. 암 그렇고 말고, 당연한 얘기다. 첫째가 나를 데려가야 한다고 둘째에게 날짜와 함께

선전포고를 했다. 아직 출발 날짜까진 한 달도 더 남았는데 벌써 기대가 된다. 이번 여행지에서는 매일 숙소가 바뀐다. 내 바퀴도 그만큼 많이 구를 터라 굉장히 고된 여정이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이고 여행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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