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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온 Jul 23. 2024

책갈피

#26/28 짧은 글 에세이_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책과 어울리고 책과 붙어 있다 보니 늘 대화에 책의 내용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화를 하다가도 책에서 봤던 내용을 말한다던가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해주고 싶은 상황도 자주 생기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희열을 느낀다. 




 물론, 듣는 친구들이 처음에는 신기해하고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영 탐탁지 않아 하는 친구도 더러 있다는 게 눈에 보인다.


 '쟤 왜 저렇게 잘난 척해?'


 잘난 게 아니라 사실 나는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책 속에 파묻혀야 하는 삶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건데 이해를 못 해주는 게 서럽다.


 인천 동구에 있는 작은 독립서점인 '모도 책방'이라는 곳이 있다. 모 아니면 도의 심정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책방을 열은 젊은 사장님이 노인분들 많은 곳에 호기롭게 책방을 차렸다. 나는 그곳에서 만들어졌다. 수많은 책들과 함께 했고 여러 손님들께 책을 구매하면 선물로 드려졌다. 어느 날, 책을 좋아하다 보니 글쓰기도 좋아하게 된 손님을 만나게 됐다. 그 손님은 책을 읽다 보니 글을 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는데 아마 자기 계발서를 읽은 것 같다.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하고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하는지 모르는지만 책을 통해서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모도에 왔다. 글쓰기를 주제로 하는 코너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책 제목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여러 권의 책들을 마주했다.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자신 있게 한 권을 집어 들고 바로 결제를 했다. 그리고는 모도 사장님은 나를 그 책 사이에 끼워주시더니 이내 서로 감사인사를 나눴다. 사장님은 모도에서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 손님은 그걸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독서모임에 대한 질문을 하며 종종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손님은 나를 들고 경쾌한 발거음으로 모도를 나왔다.


 나는 그 손님의 집에서 오랜 시간 여러 책들 사이를 옮겨가며 삶을 살아갔고 다양한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꼈다. 그중에서 처음 함께 왔던 그 책의 한 구절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좋은 책은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고 아주 오랫동안 믿어왔다. 나는 누구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책과 함께라면 어떤 모험이든 가능하다.' 

                                                                     -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中 - 


 어쩜 내 삶의 경험을 고스란히 표현해 줄 수 있는 문장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난 인간이 보든 어떤 물건이 보든 한 낯 두꺼운 종이 정도 되는 책갈피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자유롭고 세상의 모든 지식들 사이를 유영하듯 돌아다니며 마음을 울리는 한 마디에 감동한다. 참 감사한 삶이다. 불평, 불만 하나 없이 '아는 기쁨'을 온전히 느낀다. 나와 똑같이 생긴 책갈피들이 머무를 글자들만의 세상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문장의 아름다움을 서로 공유하고 싶다. 책은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다. 배움의 끝은 없으니 평생 배워야 한다는 말에 독서를 평생 해야만 하는 이유도 책에서 찾게 된다.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 맞는 말이다. 고전 소설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세상에서 살았던 훌륭한 사람의 글이었고 쇼펜하우어처럼 과거 유명한 철학가의 글들은 요즘 나오는 작가들의 생각들과 합쳐져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는 없지만 책의 어느 한 부분은 반드시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있다. 작가가 책을 낸다는 것은 그만큼 글을 사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자신의 글이 겨우 라면 먹을 때 냄비를 올려두는 용도로 쓰이게 대충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 손님이 나를 데려간 후로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그전부터 쓰고 있었고 그날 같이 산 책을 다 읽고 나서 읽었던 부분을 나름 적용해보려고 했으나 쉽지 않아 보였다. 한 권으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기는 역시 말이 안 된다. 시간이 지나 계절이 바뀌고 옷차림이 두꺼워졌다가 얇아지고 비 오는 게 자연스러운 계절이 되고 나서야 글이 자유롭게 머리에서 손 끝으로 흘러나온다. 계절이 바뀌는 사이에 꽤나 많은 책을 읽은 듯하다. 나는 여러 책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가 읽은 책 속의 글들을 먹는다. 무럭무럭 자라지 않지만 잘 익어가는 느낌은 받는다. 난 훌륭한 사람은 못돼도 훌륭한 책갈피는 되고 싶다. 비록, 낡고 해질지언정 그 누구보다 많은 것들이 깃들어있는 책갈피가 되기를 바란다.


 내 다음 거처는 어디일까, 자기 계발서도 읽었으니 이왕이면 소설이면 좋겠고 소설이 아니라면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이라는 책 같이 특정 장르의 에세이에 머무르고 싶다. 요즘은 너무 양산형 에세이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이런 웰메이드 에세이가 절실하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웰메이드라고 하는 게 아니다. 다산 정약용이 <소서팔사>라는 더위를 식히는 여덟 가지 방법을 제시했었는데 이런 정보들을 알려주면서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여름을 어떻게 날 수 있는지 충분히 생각할 수 있게끔 숙제를 내준다. 뿐만 아니라 대서에 해당하는 7/22일부터 약 15일간, 우리는 여름을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은지에 대해 작가의 시선으로 알려준다. 가장 알맞은 시절에 건네는 스물네 번의 절기라는 다정한 안부를 경험하게 되는 책이다. 때문에 독서모임 때 이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너무 좋아서 괜히 한 번 추천해본다. 


 손님, 아니 이제는 가족이라고 해도 될 만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그의 글도 여전히 양산형에 가깝다. 그래도 양산형까지는 올라왔다. 전에는 양산형까지 가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투박하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글들도 자주 쓰곤 했다. 확실히 글은 쓰면 쓸수록 늘어간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글을 써야 유명 작가의 글솜씨에 도달할지는 모르겠다. 그 사이에 나도 그만큼 많은 책을 읽으며 건강하고 똑똑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나를 위한 글이 쓰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브런치 스토리에 나를 주제로 글을 쓴다고 하는데 나중에 구경이나 시켜줬으면 좋겠다. 나를 노트북 사이에 껴 놓는다고 내가 그 글들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잘 써준다면 충분히 유명해질 테고 그렇다면 건너 건너 소식을 들을 수 있겠지 싶다. 

 

 어떤 책이든 그 사이에 껴있다는 건 나의 흔적이 발차쥐를 남기듯 남는 것이고 글자의 세계에 머물러 재밌는 이야기를 보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다. 앞으로의 여생에 보게 될 아름다운 글자의 조합들이 나를 기대하게 하고 설레게 한다. 재밌는 표현을 수집하는 설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는 앎의 즐거움, 문장 하나에 얻게 될 감동까지 책에는 정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많다. 여러분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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