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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온 Jul 17. 2024

폰케이스

#25/28 짧은 글 에세이_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로나가 터지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 22년 2월에 그가 코로나에 처음 걸렸다. 온 세상이 시끄러울 때도 그의 건강에는 아무 이상 신호도 없다가 이대로라면 절대로 걸리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 때쯤 뉴스에서는 이런 소식을 보도하고 있었다. 


'코로나의 확산세가 누그러들다가 최근 2주 사이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대충 심각하다는 내용이었다. 그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다. 코로나가 터지고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을 때 그는 감기조차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나 운전 이제 좀 잘해'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고가 나는 것처럼 평소와 같이 마스크를 썼고 음식점에서 밥을 먹기 위해 내리고 별다를 것 없이 똑같은 일상을 보냈지만 어느새 몸이 무겁고 어지럽고 뜨거운 게 설마 하는 불안감을 감돌게 했다. 육감이 알게 하는 그 불안함은 현실로 다가왔고 회사에서 코로나 검사키트로 두 줄이 뜨는 것을 확인했다.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그때 당시 그는 뉴스에서 떠드는 것처럼 죽을병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는데 강제적으로 회사에서는 7일간 휴가를 부여했다. 당연히 가지고 있는 연차는 소진하지 않았다. 후일담이지만 그 이후로 개인 연차를 소진해야만 쉴 수 있었다. 아무튼 하루, 이틀 아프고 씻은 듯이 나아버린 그는 방 밖으로 벗어나면 안 된다는 사회적 약속을 철저히 지키느라 심심함이 극에 달했다. 오죽 심심했으면 스마트폰을 바꿨을까. 그때 바꾼 '핸드폰이 갤럭시 S22 울트라'였다. 전화 몇 통으로 스마트폰을 바꾸고 보고 싶던 드라마를 넷플릭스로 정주행 했다. 그는 빈센조를 봤는데 후반부부터 재미가 없던 건지 드라마보다는 아직 손에 들어오지도 않은 폰에 관심이 더 쏠려서 기존 폰에 갤럭시 S22울트라 폰 케이스를 검색하고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나를 구매했다.


 그린 색의 스마트폰에 같은 그린 색 케이스를 끼우는 단조로움은 그가 그린 색에 미쳐있나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의 폰을 마주하는 순간 나와 같은 색상이어서 반가웠지만 내가 반가워하는 것 이상으로 나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본 그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이 글을 쓰고 있는 24년 7월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나는 서랍 속에 갇혀 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처음 왔을 때 이전에 쓰던 폰 케이스들이 지금 내가 있던 곳에 있었는데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굳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튼 즉흥적으로 순식간에 구매까지 이뤄져서 그의 손으로 들어가게 됐고 나중에 나 외에도 5개의 폰 케이스가 더 들어왔다. 지난 2년이 넘는 사이에 그의 스마트폰과 거의 한 몸이 되어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햇빛도 안 보이는 서랍 속에 들어갔었고 다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들어갔다. 그래서일까, 언제 들어갔는지, 언제 다시 나왔는지도 기억은 안 난다. 내가 나오니까 들어간 폰 케이스는 모서리가 다 까져있었다. 나도 좀 까졌는데 그 친구는 더 까졌더라. 이게 다 코로나 여파인가 싶다. 내가 까지기 시작한 때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그가 내 모서리로 누른 때부터다.


 엘리베이터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그가 10년 다닌 회사의 엘리베이터는 점자처럼 글자 모양대로 울퉁불퉁 솟아있다. 그러니 2년도 안된 나와 다른 친구들의 모서리는 남아나질 않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이나 폰이나 똑같이 세균이 많다. 사람 손을 타는 건 다 세균 덩어리인데 나름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한다는 게 내 모서리로 버튼을 누르는 것이었다. 자주 떨어뜨리기도 해서 우리의 희생이 없었으면 벌써 스마트폰은 다른 스마트폰으로 벌써 교체됐을 게 분명하다. 

 지금은 그가 스마트폰 욕심이라던가 폰 케이스 욕심이 없어졌다. 전에는 2년에 한 번씩 무조건 바꿨다. 어떻게 아냐고? 서랍 속에 옛날 폰이랑 폰 케이스가 아직도 있다. 추억이 깃든 건지, 아님 존재를 잊은 건지는 모르겠다. "잘 쓰고 있다면 아직까지 바꿀 이유는 없지"라며 스마트폰 화면을 빡빡 닦곤 하는데 이왕이면 우리 케이스들도 소중히 잘 다뤄줬으면 좋겠다. 나도 상처 없이 멋있고 싶다. 세월이 무르익어가며 우리도 무르익어가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존재다. 점점 낡고 상처가 많아지기만 한다. 모두 그렇게 스마트폰이 바뀌지 않는 이상 서랍 속을 들어갔다가 나오곤 하게 된다.


 그의 폰에 전화번호와 사진이 총무팀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급격하게 많아졌다. 새 폰을 사게 되면 요즘 5분도 안 돼서 쉽게 다 옮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폰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옮겨야 한다는 것 자체가 순전히 귀찮아서다. 그의 인생에서 폰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제일 중요하고 곧 30이 돼 가는 청춘의 젊어지기 위한 발악이 더 중요했다. 그러니 굳이 폰을 바꿀 이유를 못 찾고 여전히 나를 스마트폰의 동반자로 붙여 놓고 있다. 얼마나 더 붙어 있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까지가 내 수명일 것이다.

 

 오래 산다는 건 좋다. 누군가와 함께 늙어간다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런 진리를 다 깨닫고 경험하는 과정을 지나다 보니 적당히 멋있게 살다가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상처가 더 깊어지고 많아지기 전에 떠나도 충분히 만족하는 삶을 살아갔다고 기억할 수 있다. 


이제는 다음 내 역할을 감당할 이에게 축복을 빌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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