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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온 Jul 16. 2024

사원증

#24/28 짧은 글 에세이_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내가 나일 수 있을 때 제일 당당하다'라는 글을 본 적 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우리 회사에서 못 가는 곳이 없는 마스터키 정도로 보면 된다.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하면 목소리와 행동에 조금 더 힘이 실리게 된다. 




 처음보다는 일이 익숙해져서 이제는 좀 더 당당해진 그와 더불어 나 또한 당당해졌다. 그는 어느새 회사에서 생산팀 7년, 총무팀으로 도합 10년째 근무하고 있다.

총무팀은 지원 부서다. 회사 내에 모든 임직원들을 상대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대응하려면 모든 곳에 출입권한이 있어야 한다. 주인 잘 만난 덕에 갈 수 없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가끔은 출입이 제한되어 못 갔으면 하는 순간이 내 주인에게는 있나 보다. 일 하면서 한 숨을 푹푹 쉬어댄다. 최근에 기억나는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10년도 넘은 회사 건물이 티를 내고 싶었던 건지 관리동 2층 복도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앞 사무실은 임원들이 계시는 곳이었다. 그 물은 3층 임원 화장실이나 그 옆, 비서실의 탕비실 싱크대에서 샜는데 정확히는 천장을 뜯어서 올라가 봐야 했다. 물론 공무실 기장님들이 올라가셔서 확인도 하시고 작업도 해주셨다. 내 주인은 기장님들의 수발을 들기 바빴다. 바쁘게 왔다 갔다 하던 중 기장님들 목에 걸려있는 사원증과 눈이 마주쳤다. 표정이 영 좋지 않아 보였다. 천장에서 새서 2층 복도에 떨어진 물 색이 커피색과 비슷했다. 다행히 커피 향이 나긴 했지만 여전히 더러운 물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었다. 조금씩 떨어졌지만 떨어지는 물을 완전히 안 맞긴 어려웠다. 기장님들의 사원증에도 약간의 물이 떨어지며 튀었다. 튄 물은 땀인지 눈물인지, 오수인지 처음 보면 아무도 모를 테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바람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의 미간은 한 껏 힘이 들어가 주름을 만들었고 입에서는 험한 말들이 튀어나와 죄 없는 귀가 그 욕지거리를 듣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사회의 비관적인 현상들을 몸소 경험하고 있었다. 그렇게 열정이 차게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종종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에 걸려있는 사원증을 보면 표정이 유독 밝으신 분도 계시고 어두우신 분도 계신다. 물론 밝은 얼굴로 한숨을 쉬시는 분도 계신다. 복화술과 사회생활에 굉장히 능숙한 사원증인 것 같다. 이 경우 독심술도 어느 정도 수준급이리라 생각한다. 사원증들만의 시상식이 열린다면 수상자는 완벽하게 연기하는 그 사원증이다. 역시 능력은 주인 따라간다는 게 틀림없는 진리다. 

퇴근하고 집 지하주차장에 도착해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엘리베이터에 있는 거울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주인의 얼굴도 보게 됐다. 피곤에 절어있는 얼굴이 보인다. 모두들 이렇게 사는데 유독 피곤해 보이긴 했다. 나는 여전히 약간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내 진짜 표정이 뭘까. 나는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나.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사회생활을 오래 한 덕에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는 결코 지금과 같이 약간의 미소를 띠며 있는 것 같진 않다. 거울은 아무리 깨끗해도 사원증으로 살고 있는 내 내면까지 비추지 못한다. 하긴, 누굴 비춰도 마찬가지겠지. 시간이 지날수록 연차에 대한 책임감 또한 늘어간다. 실력이 뒷받침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 

과연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싶을 때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와의 이별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는 무슨 생각일까? 회사에서의 경험을 살려 같은 직종의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할까? 아님 그가 지금 원하는 마케팅을 공부할 겸, 숏폼 제작에 힘쓸 수 있는 마케팅 회사로 갈까, 아니면 창업을 할까. 무엇을 하던 그를 응원하지만 아직까지는 그저 버티는 수밖에 없어 보이는 그의 표정이 어둡다. 통장잔고를 확인한다. 0의 개수가 그리 많지 않다. 무언가를 이뤄내기에는 당장 이번 달에 빠져나갈 돈들이 손을 흔들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그 손을 붙잡으며 가지 말라고 말도 못 하는 바보다. 바보가 아닌 삶이 거의 없지만 그런 걱정으로부터 해방될 언젠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책도 썼다. 전자책을 직접 만들어 팔아보기도 했으며 개인SNS에 다양한 게시글을 올려보기도 한다. 뾰족한 주제로 그를 드러내는 게시글을 올린다. 아주 미약하게나마 그를 좋아하거나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생겼다. 만족하기에는 한 참 모자란 수치이지만 감사하게도 유지가 되고 있다. 유지라도 되는 게 어디인가. 평범함보다 못한 삶이었다고 그가 한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평범보다는 조금 더 앞서 나간 느낌이다. 


 '갓생'이라는 단어가 그에게 잘 어울린다며 그를 아는, 정확하게는 회사 이후의 삶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에게 갓생을 살고 있다고 부른다. 회사에서나 회사 밖에서나 여전히 바쁘고 항상 무언가 하고 있는 그에게 딱히 이렇다 할 성과는 없지만 여태 책에서 봐온 글들이 꾸준히 그 길을 걸으면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안개 뒤편이 보일 것이고 지나온 길에 대해 남에게 알려줄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위로를 해줬다.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보다 더 수준 높은 위로다. 그렇게라도 더 단단한 생각을 만들어서 나와의 이별을 늦출 수 만 있다면 나는 언제나 응원한다. 어디든 어렵지 않은 것이 없다. 아무것도 몰라도 진리는 깨닫고 있다. 내 10년 하고도 앞으로의 생에서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갈수록 깊어지는 진리에 대한 탐구는 알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다. 


 나는 학생증이 아니라 사원증이다. 이제 더 이상 학생일 수가 없다. 어른이라는 사회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내 어깨를 짓누른다. 그 무게를 감당해 내기에는 아직 내 마음이 어려서 그런가. 아직도 애 같은데 가끔은 어른인 척 행세할 때 나를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괜히 센 척하는 내가 거울을 보기 민망해진다. 삶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기에 그 정도 센 척은 필요했다. 자기세뇌를 통해서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는 스스로의 어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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