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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틀비와 함께 Oct 13. 2024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황제>와 타로

타로카드 4번 황제와 13번 죽음 

타로카드에서 4번 황제 카드의 키워드는 ‘리더십, 권위, 질서, 통제력, 보수의 가치, 책임감’ 등이다. 무엇보다 황제는 리더십을 통해 자신이 지키는 나라의 안정을 지켜야 한다. 국민과 자신이 지키려는 가치를 온전히 지킬 방법은 역시 강한 힘과 이성에 바탕을 둔 규율과 규칙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다. 나는 황제가 물리적 통제로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신뢰와 책임감을 보여주는 존경받을 만한 어른이었으면 좋겠다. 

4번 황제가 수비학적으로 연결되는 카드는 13번 죽음 카드이다. 죽음은 그림 자체가 주는 두려움이 있다. 인간은 삶의 끝, 종말, 소멸 등 무언가가 사라지고 없어지는 느낌에 대해 근본적으로 거부감을 보인다. 그러나 타로카드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변화, 변형, 갱신을 상징하며, 변화를 통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4번 황제와 13번 죽음을 연결한다면, 황제의 막강한 힘을 거부할 때 발생하는 죽음과 같은 처벌이기도 하지만, 황제의 규율이 변할 시점이 되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는 권력의 순환과 역사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새로운 리더십의 필요성을 나타낸다. 이미 소유하고 있는 권력과 권위를 포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많은 권력자의 삶을 통해 배워왔다. 그들의 열정은 곧 욕심과 비뚤어진 탐욕으로 변질되고, 정의는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결국 아첨과 충언을 구별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남는다. 자신의 시대가 끝나거나 완전히 변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나의 부족한 상상력에 영감을 주었다. 최근 이 곡을 다시 듣게 된 계기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임윤찬의 피아노 협주곡 5번 2악장이 추천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 선율에 사로잡혔고, 이후에는 곡의 제목에 흥미를 느꼈다. 무엇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배경음악으로 <황제>의 2악장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이 곡은 바로 닐이 아버지와 갈등하고 키팅 선생님 방에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희미하게 들린다.

 

베토벤이 <황제>를 작곡할 시기인 1809년은 나폴레옹이 빈을 두 번째로 침략했을 때이다. 개인적으로 베토벤은 청력을 거의 잃었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파괴된 순간 그는 <황제>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황제>는 총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약 40 여분의 길이로 연주된다. ‘황제’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직접 지은 것이 아니라, 그의 친구이자 출판업자인 요한 B 크라머(Johann B. Cramer)가 곡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황제와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나는 크라머가 이 곡의 주제를 정확하게 간파했다고 생각한다. 이 곡을 들으면서 나는 황제의 자리에서 승리를 축하하는 환희와 웅장함, 자신에 대한 성찰에 따른 고뇌와 고독,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변화하거나 새로운 리더에게 권력을 양도해야 하는 과정에서 황제가 느낄법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 평론가들은 베토벤의 작곡 스타일이나 음악적 재능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나는 이 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에게 타로카드 4번 황제와 13번 죽음의 상징을 바탕으로 서사를 부여하고 싶다. 바로 황제의 흥망성쇠 이야기이다.  


 <황제>의 제1장 알레그로는 황제의 열정과 정의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면서 펼쳐지는 황제의 영광을 느낄 수 있다. 1악장은 짧지만 강렬하고 위엄 있는 관현악이 시작한 뒤, 바로 피아노의 화려한 독주가 이어진다. 짧고 강렬한 오케스트라는 마치 커튼이 올라가고 황제의 등장을 알리는 듯하며, 피아노의 독주는 능력과 야망이 가득한 황제가 등장하여 자신의 권력을 선포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피아니스트는 카덴자(cadenza-독주자가 즉흥적인 연주)처럼 즉흥적이고 강렬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며, 오케스트라를 ‘내가 지휘한다’는 분위기를 만든다. 이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호응하며 웅장한 협연을 이루는 모습은 마치 황제가 국민 앞에서 연설할 때 국민이 환호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1악장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은 타로의 황제 카드가 보여주는 강력한 권위와 안정적 구조를 연상시키며, 황제가 자기 지배력에 대한 강한 믿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2악장으로 넘어가면서 황제는 타로의 죽음 카드에서 보여주는 정신적 변화와 고뇌를 겪는다. 2악장은 아다지오 운 포코 모소(adagio un poco mosso)로, 약간의 움직임을 가지고 매우 느린 빠르기로 진행된다. 그리고 베토벤은 피아노 솔로 시작을 “Dämmernd”(동터오르는, 어스름한)이라고 묘사하여 곡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설정했다. 어두운 호수나 바다 위에 햇살이 비추며 만들어내는 장면은 숭고하면서도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낸다. 황제는 자신이 찬란하게 빛나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나약하고 불안정한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자기 인식은 권력의 정점에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비례하는 슬픔을 동반한다. 황제는 외부의 안정감과 자신의 인식 사이의 불일치 속에서 고독을 느끼며, 타로카드 13번 죽음카드가 상징하는 변화, 혁신, 새로운 시작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막중한 기로에 서 있다. 


마지막 3악장 알레그로(12분)는 아주 밝고 리드미컬한 분위기이다. 2악장과 3악장을 아타카(attacca)로 연결해서 3장의 우렁찬 느낌을 격렬하게 표현한다. 아타카란 2악장의 마지막 음을 유지한 상태에서 3악장을 시작한다. 이런 기법은 두 악장의 정 반대 분위기를 극대화시킨다. 2악장의 마지막 음은 아마도 황제의 처연한 결단이며, 그 결단으로 인해 3악장의 우렁차고 밝은 미래를 맞이한다. 즉, 황제가 선택한 13번 죽음은 바로 변화와 새로운 시작이었다. 황제는 지혜와 성숙함을 통해 죽음과 탄생을 우아하게 이루고, 다시 생동감과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에 부응하듯, 오케스트라는 주제 선율이 반복되며 변주되는 론도 형식을 기본으로 힘찬 행진을 연상시키듯 연주한다. 3악장의 행진은 1장의 행진에서 발전 혹은 갱신한 것이다.   


나는 4번의 황제와 13번의 죽음 카드의 상징성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가 전달하는 의미를 연결해서 해석해 보았다. <황제> 속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에 캐릭터를 부여하고, 그 둘의 조응으로 만들어지는 서사를 인간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권력의 정립, 권력의 변화, 새로운 시작으로 보았다. 이런 서사는 황제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간사에서 매 순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황제’가 될 수 있지만, 진정한 성장을 위해서는 ‘죽음’의 순간, 즉 자기 성찰과 변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1장의 환희는 2장의 성찰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절대 3장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없다. 성찰은 꼭 나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쉬어가는 시간이며, 치유의 시간을 의미한다. 아마도 2장의 선율은 우리 각자가 필요한 변화, 쉼, 치유의 순간으로 다가올 것이다.        


2장만 듣고 싶은 분에게 추천 

https://www.youtube.com/watch?v=7HRxt3pQ8T4&t=878s

전체를 듣고 싶은 분에게 추천 

https://www.youtube.com/watch?v=qP9gE8Enxfo (조성진)

https://www.youtube.com/watch?v=uYcSSWraIxI (임윤찬)

https://www.youtube.com/watch?v=uj8w0Sm7l-M (Zimerman)

이외에도 굴다, 제르킨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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