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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틀비와 함께 Oct 20. 2024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찾은 별: 베토벤의 별과 사랑

타로카드 8번 힘과 17번 별

타로카드 8번 '힘'은 강압이나 물리적인 힘이 아닌, 내면의 힘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상징한다. 이 카드가 지닌 에너지는 마치 사자를 부드럽게 다루는 여인처럼, 강한 감정이나 충동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자제력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힘형 인간의 가장 큰 장점은 내면의 두려움이나 약점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노력하는 근성이 있다. 모든 것에 균형과 끈기를 보여주는 힘형 인간은 대인관계에서도 실리보다는 진정성 있는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며, 성숙한 에너지를 교환한다. 

8번 힘 카드와 수비학적으로 연결된 카드는 17번 ‘별’ 카드이다. 별은 동방박사가 베들레헴의 별을 따라 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에 도착하듯이, 길 잃은 사람들에게 빛을 밝혀줘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종류의 빛이 필요하다. 어떤 이에게는 집으로 돌아갈 길 위에, 반짝이는 영감으로, 혹은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에 대한 경종으로 빛이 필요하다.      


8번 힘과 17번 별이 수비학적으로 연결될 때, 이는 내면의 힘이 영감과 희망으로 승화되는 순간을 상징한다. 힘 카드가 보여주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내적 통제력은 때로는 감정의 깊은 심연과 마주해야 한다. 이때 별 카드는 마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등대처럼, 우리의 내면에서 발견하는 근심과 고통의 원인을 창조적 영감과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꿔준다. 이는 마치 격정적인 감정과 혼돈의 영감을 작품으로 만드는 예술가들의 작업과 비슷하다.        


 8번 힘 카드에서 17번 별 카드로 향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 인물은 바로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이다. 그의 생일은 1770년 12월 17일생(당시 실제 생일은 16일이고 세례 받은 날이 17일이라는 설도 있음)으로 영혼의 숫자는 8번 힘이다. 베토벤은 <운명>과 <합창> 교향곡 이외에도 주옥같은 클래식을 작곡한 명실상부 위대한 마에스트로(Maestro)이다. 동시에 그는 청력을 잃었지만, 이런 한계에 굴복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인물을 상징한다.      


영화 <불멸의 연인>(1994)에서 베토벤은 그의 비서에게 왈츠 곡에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장송곡에 슬퍼하는 것은 작곡가의 의도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곡 속에도 자신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 그리고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의 음악 속에 담긴 풍경과 인물은 어떠한가? 나는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려고 격렬하게 투쟁하고 몸부림치는 외로운 인간을 발견한다. 그가 겪는 고통은 청력을 잃으면서 어렵게 된 인간관계와 음악가로서의 천직을 잃게 되는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베토벤은 청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깊은 좌절과 슬픔 속에서 일상을 보낸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Heiligenstadt Testament)는 1802년 10월 6일, 32세인 베토벤이 동생들에게 쓴 유서이다. 그는 의사의 권유로 빈 근교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요양을 하지만, 차도가 없자 유서를 남긴다. 그의 유서에서 우리는 타로카드 8번의 힘이 상징하는 강한 충동과 내면의 고통을 계속 다스리려는 자제력과 인내심을 확인할 수 있다.     


나에게 부과된 것을 창조하기까지는 어찌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바로 그 때문에 이 비참한··· 정말로 비참한 삶을, 그리고 아주 사소한 변화조차 나를 최상의 상태에서 최악의 상태로 전락시키는 예민한 육체를 지탱해 왔다. 인내!!라고, 흔히 말하지만 이제 나도 그것을 지침으로 삼아야겠다. 그렇다. 그리하여 운명의 여신이 내 삶의 밧줄을 끊을 때까지는 저항하려는 결심을 간직하자. 내 상태가 호전되든 안 되든 각오는 서 있다. 예술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 유서는 동생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그가 간직했다. 이 유서를 적으면서 그는 죽음을 생각할 만큼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보다 훨씬 음악을 사랑하는 자신의 열정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귀가 아니라 그의 영혼으로 죽을 때까지 음악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는 한 예술가의 영혼이 극한의 시련을 극복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을 기록한 중요한 문서가 되었다. 베토벤에게 타로카드의 17번 별은 바로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길에 주저앉지 않고, 별을 따라 달려온 그는 <걸작의 숲>이라고 알려진 전성기를 맞이한다. <걸작의 숲> 시기에 베토벤은 <영웅> 교향곡, 열정 소나타, 피아노 협주곡 4번,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 4번. 오페라 <피델리오>, <운명> 교향곡 등 과감한 음악 세계를 펼친다.      

타로카드 8번 힘과 17번 별의 상징을 드러내는 <걸작의 숲>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열정소나타>(Appassionata 피아노 소나타 23번 op 57 -1806년 작곡, 1807년 출판)을 소개하려고 한다. <열정>이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아니라 출판업자인 크란츠가 붙였다고 한다. 그 누구도 크란츠의 작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열정> 소나타의 1악장은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는 <운명> 교향곡의 모티프가 곳곳에 나온다. 1악장 속에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 한 인간이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발견하고 격정에 휩싸이다가, 그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장엄하게 싸우고 있다. 그는 매우 힘들어 보이지만 품격이 있다. 각자 싸우는 대상은 모두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사랑을 위해,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돈을 위해 혹은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싸울 것이다. 베토벤은 <열정> 소나타에서 자신이 무엇을 위해 미친 듯이 싸우고 있는지를 고백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너 혼자 싸우고 있지 않다고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베토벤의 삶은 인간이 육체와 정신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절망, 극복, 환희의 여정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그는 청력을 잃었다는 좌절 속에서도 음악이라는 내면의 별빛을 놓지 않았다. 그의 불굴의 의지는 단순한 저항이 아닌,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승화되었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 담긴 절망적 고백이 <걸작의 숲>이라는 찬란한 예술의 꽃으로 피어난 것처럼, 우리도 내면에서 마주하는 고통 역시 새로운 영감과 창조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믿어보는 것은 어떨까?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우리는 대부분 ‘힘’ 카드처럼 내면의 폭풍을 다스려야 하는 시기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별 카드처럼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희망이 바로 내 옆에 있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베토벤이 자신의 운명을 창조적 영감으로 승화시켰듯이, 우리도 각자의 삶에서 마주하는 시련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가능성 혹은 휴식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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