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코믹스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캐릭터를 선택하라면 어떤 인물이 떠오르시나요? MCU의 간판으로 활약했던 아이언맨이나 캡틴아메리카를 꼽을 수도 있겠지만, 이에 앞서 언급해야 할 캐릭터가 하나 있습니다. 오늘은 마블 스타일의 정수이자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으로 불리는 영웅,'스파이더맨'의 영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스파이더맨은 전설적인 만화가이자 '마블 코믹스의 아버지'인 스탠리(1922~2018)에 의해 탄생한 캐릭터입니다. 그는 벽에 붙은 파리를 보고 영감을 얻은 뒤에 '거미의 힘'을 얻게 된 10대의 주인공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회사는 그의 독특한 아이디어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나, 스탠리는 고집스럽게 마블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비로소 스파이더맨은 폐간 직전의 잡지를 통해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고 향후 수십 년 동안 엄청난 인기를 누려왔습니다.
스파이더맨이 마블의 스타일을 대표하는 이유는, 그가 이후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핵심 서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스파이더맨의 서사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이렇습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마블 코믹스의 영웅들은 특별한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저 평안하거나 행복한 삶을 추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특별함을 선물 받았기에 반드시 선(善)을 실천해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여 후회하거나 막중한 책임감으로 고뇌하고, 때로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마블의 캐릭터들은 팬들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가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1. 클리셰를 부수다.
힙합을 듣는 혼혈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은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이지만, 더 이상의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이미 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다양한 장르 속 여러 창작물을 통해 널리 소비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영화 장르만 놓고 보더라도 3명의 주연배우에 의해 두 차례나 리부트 되었고, MCU의 스파이더맨(토비 맥과이어 주연) 시리즈에서만 4번째 작품의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오프닝에서부터 이러한 '선입견'을 간단히 깨부숩니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관객들에게 익숙한 주인공인 '피터 파커'의 나레이션이 등장합니다. 그는 1~2분 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옛날 스파이더맨'의 뻔한 이야기들을 요약하여 소개하고, 이를 대수롭지 않다는듯 넘겨버립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피터 파커의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제 관객들은 전혀 새로운 모습의 주인공을 만나게 됩니다.
<뉴 유니버스>의 주인공인 마일스 모랄레스는 헤드폰을 쓰고 포스트 말론의 힙합음악 <Sunflower>을 감상하며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흑인-히스패닉 혼혈의 가정에 살고 있으며 구릿빛 피부에 곱슬머리의 외모를 하고 있습니다. 빨강 에어조던 운동화를 신고 후드티를 즐겨 입는 마일스의 모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파이더맨의 모습과 매우 다릅니다. 단순히 외모 뿐 아니라, 가정환경과 성격 및 교우관계에 대한 설정들 역시 기존의 스파이더맨과는 '차별화' 됩니다. 이렇듯 <뉴 유니버스>는 기존의 클리셰를 탈피하는 데 성공하였고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2. 애니메이션의 뉴 패러다임
다양한 장면에 활용되는 '코믹스 기반'의 연출
영화계 '애니메이션' 장르의 제작과 유통은 디즈니(산하 픽사 스튜디오)라는 하나의 '헤게모니'에 의해 독점되고 있습니다. 과거 픽사 스튜디오가 개발한 3D 애니메이팅 기법은 '실사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의 완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디즈니-픽사는 기술적 진보를 통해 캐릭터의 머리카락 단 한올까지도 실제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이와 같은 흐름은 드림웍스를 포함한 다른 제작사들에도 큰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21세기의 애니메이션 장르가 추구해 온 방향은 '현실에 가까운 묘사'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위와 같은 거대한 흐름을 의도적으로 역행합니다. CG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실사의 묘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프레임을 드랍시키고 여러 장면에 작화를 섞어내어 마치 '만화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주인공의 대사와 액션의 효과음들은 만화책 속 폰트와 말풍선의 형태로 연출됩니다. '코믹스 기반의 연출 기법'은 특히 액션 시퀀스에서 대단한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효과음 자막과 날카로운 펜터치는 액션에 역동감을 부여하고, 코믹스 지면의 '다중 컷' 배분은 스크린을 하나의 정교한 무대처럼 보이게 합니다.
<뉴 유니버스>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철학은 실사의 추구가 아닌 '애니메이션 장르 자체의 고유성'에 주목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영화계에서는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은 2019년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의 쾌거를 이루었고 현재 많은 작품들에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3. 유니버스(Spider-Verse) 시리즈는 진행형
2023년에 개봉한 후속작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뉴 유니버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웬은 차원의 틈을 통해 마일스에게 말을 겁니다. 또한 이어서 진행되는 쿠키영상에서는 미겔 오하라, 별칭 '스파이더맨 2099'가 차원이동 장치를 발명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관객들은 이를 통해 후속작에서 어떤 인물과 설정이 등장할지 충분히 예상했을겁니다. 마일스 모랄레스의 <유니버스: Spider-Verse> 시리즈는 이전 영화들의 클리셰를 벗어나 독자적인 작품관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한 1편에서 이미 시각효과와 비주얼라이징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또 한번, 이 작품의 후속작은 팬들의 기대를 충족하는 작품으로 찾아오게 됩니다. 다음 리뷰는 전작에 뒤지지 않았던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2023>에 대한 이야기가 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