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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나무 Feb 16. 2024

고릴라의 선물, 못난이 진주 목걸이

난 아들이 둘이다. 모든 가정이 그렇겠지만 아이 둘을 연년생으로 키우다 보면 참 난처한 경우가 종종 있다. 핸드폰에 큰 아들 번호는 아들이라 저장하고, 둘째 아들은 아들 2로 저장하기 우스워 내 사랑으로 저장했더니 왜 동생은 내 사랑이고 나는 아들로 저장되어 있는 거냐고 항의하여 20년이 지나도록 공평하게 큰아들은 내자랑, 작은 아들은 내 사랑으로 저장되어 있다. 또한 별명도 형제가 아기 때부터 몸에 털이 많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눈썹이 짙어 사이좋게 형님은 고질라, 아우는 고릴라가 되었다.


   벽지에서 근무하던 시절 아들들이 시골에서 초등학교 다니던 때이다. 성향이 전혀 다른 형제가  약속이나 한 듯이  특성화 활동에 퀼트반이 개설되었는데 들어가 곰돌이 인형을 만들어 보기로 했단다. 당황스러웠다. 엄마가 정적인 취미를 좋아하다 보니 어려서부터 뜨개질이나 종이접기, 퀼트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라 친근하게 느껴졌나? 얼마 전만 해도 큰아들은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고 작은 아들은 퍼즐이나 레고 조립을 하며 놀던 아들들이 갑자기 소파에 나란히 앉아 바느질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이름이 퀼트이지 천조각을 맛대어 꿰맨 후 뒤집고 솜을 채운 후 솜 넣은 구멍을 바느질로 깔끔하게 꿰매고 몸의 구조에 맞게 이어줘야 하는 작업이었다. 막상 시작은 했으나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곰의 배 부분 아플리케를 하는 단계에선 엄마가 마주 앉아 만드는 과정을 도와주어야 했다. "곰인형 열쇠고리가 그렇게 갖고 싶었어?" 퀼트에 눈과 손을 고정한 체 시무룩한 얼굴로  "응"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퀼트를 하면서 엄마를 위한 작품만 만들었지 아들들을 위한 선물이 하나도 없었구나. 남자아이 들이라 이런 인형류를 좋아하리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하는 과정이라 두 달이 넘게 걸려 겨우 완성을 해냈다. 큰 아이는 자기가 만든 열쇠고리를 가방에 매달고 다녔다. 작은 아이는 마저 끝내지 못해 과정이 끝나고도 종종 퀼트 상자에서 곰 인형을 꺼내 혼자서 바느질을 하곤 했다.  


    겨울방학이 되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들의 생애 최초 중국 여행 날자가 다가왔다. 두 녀석이 함께 활동하던 독서클럽에서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과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세 달 동안 여러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며 했던 다양한 활동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계획된 여행이었다. 첫 해외여행을 축하하며 가족들이 잘 다녀오라며  조금씩 용돈을 주셨다. 여행 경비에 아이들의 간식까지 다 포함이 되어있어 중국에 가서 아무런 선물도 사 오지 말고 사 먹고 싶은 간식은 반드시 선생님께 사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고 허락받은 간식만 사 먹으라고 주의를 줬다. 받은 용돈은 저금해 놓자고 타일러 아이들 명의의 통장에 저금해 두고 한 아이당 만오천 원(이십 년 전)만 가져가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 날 저녁, 작은 아들이 작은 상자를 내민다. 이게 뭐냐고 묻자  "내가 여행 가고 없을 때 엄마 생일이잖아!  엄마 선물 만들어 주고 가려고 힘들었어, 엄마 생일 미리 축하해!" 하며 곰돌이 열쇠고리를 꺼내어 흔든다. 아들의 손에 그동안 학교에서 만든 삐뚤빼뚤 못생긴 곰돌이 열쇠고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엄마 주고 가려고  이 작은 손으로 익숙하지 않은 바느질 끙끙대며 하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자 울컥~ 가슴속 뜨뜻한 온기가 온몸을 휘돌아 감싼다. "오메~ 내 새끼, 고마워 "  그렇게 한참을 보듬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아이들이 중국에서 도착하자마자 큰 아들은 빨래더미부터 꺼내놓는데 작은 아들은  엄마 선물이라며 작은 비닐 지퍼백을 내민다. 궁금해하며 꺼내보니 아주 작고 심지어 군데군데 껍질까지 벗겨진 못난이 진주 목걸이다."가기 전에 엄마 생일 선물 주고 갔잖아, 그런데 또 무슨 선물이야?" 묻자  "중국 진주 공장에 갔는데  돈이 부족해서 제일 작은 걸로 샀어, 돈을 좀 더 가져갈 걸 그랬나 봐. 이 껍질 벗겨진 건 진짜 진주여서 그렇대, 가짜 진주들은 껍질 안 벗겨진대. 바다에서 잡은 진짜 진주라서 이렇게 울퉁불퉁하다네. 가짜 진주들은 사람이 만드니까 동글동글 한 거래!"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엄마를 아들은 이해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고마워 아들, 정말 진짜 진주여서 이렇게 노르스름한 빛을 띠나 봐 정말 예쁘네! 우리 아들이 선물한 거라고 자랑하면서 엄마가 열심히 하고 다닐게" 이야기해 주었다. 


   후일에 들은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는 선생님끼리만  들르려고 진주 목걸이 판매장에 잠시 내려서 너네들은 따라오지 말고 버스에 그냥 있어라 이야기했는데 어느새 둘째가 선생님 곁에 와서 구경을 하더란다. 만원이라는 말에 만 오천 원을 가져간 둘째는 살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진주목걸이를 사더니 무척 행복해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다른 아이들은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과일도 사 먹는데 둘째는 오천 원을 비상금으로 남겨놓기 위해 간식도 사 먹지 않고 형이 사 먹는 간식을 나눠 먹었단다.  


   동료들은 아들의 선물 이야기에 감동하면서도 큭큭 거리며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너네들은 이런 진주 목걸이 없지? 훈장 같은 진주 목걸이를 옷과 어울림 상관없이 하고 다녔다. 누가 못난이 진주에 대해 아들에게 이야기해 준 걸까  깜빡 잊고 이 삼 일 안 하고 다녔더니"엄마 내가 사준 진주 목걸이가 창피해? 왜 요즘 안 하고 다녀?" 묻는다. 유심히 봐 왔나 보다."무슨 그런 말이 있어?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묻는 내게 "형들이 이야기해 줬어.  값어치 없는 못난이 진주라고, 진짜 진주는 엄청 비싸다고, 그거 진짜 바다진주라서 그렇게 생긴 거라고 아저씨가 그랬는데..." 아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어떤 영혼 없는 녀석인지 은혜롭지 못한 입을 꿰매주고 싶어졌다.  " 못난이 진주면 어떻고 가짜 진주면 어때,  울 아들이 엄마 생각하며 외국 나가서 사다 준 진주 목걸이인데 다른 엄마들은  아무도 못 받았잖아, 울 아들만 사온 세상에서 딱 하나뿐인 진주 목걸이잖아" 그걸 어떻게 가격을 매겨! 그건 정말 귀한 거야 너에게 그런 말을 한 형들은 자기 엄마에게 진주 목걸이 선물하려고 생각도 안 했을걸? 이 세상천지에 우리 아들만 한 아들 있음 나와보라 그래! " 말하며 안아주었다.  아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평소 가족들의 생일을 챙겨주던 다정다감하던 아들이 올해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바쁜가? 무슨 일 있나? 하루를 기다리다가  다음날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둘째 아들에게 '아들 무슨 일 없지? 어제가 엄마 생일이었는데 축하한다고 문자 한 통 보내주지 엄마 걱정 되잖아!"라는 카톡에 "너무 바빠 깜빡해버렸네, 미안! 엄마,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한 줄짜리 답장이 왔다.  하~ 요 녀석 봐라~! 이 녀석 군기를 어떻게 잡아야 하지? 고민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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