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역사를 좋아했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무튼 매우 어렸을 때 어머니가 사주신 '이야기 한국사', '이야기 세계사' 등을 반복해서 계속 읽었다. 그냥 재미있었다.
이후 이과 - 공대 테크트리를 탔지만, 역사에 대한 흥미는 잃지 않았다.
이미 회사에 다니고 있던 터라 아무 상관은 없었지만, 그냥 한 번 해보고 싶어서 한국사 능력, 세계사 능력 시험을 봤고 둘 다 1급을 취득했다.
관심을 가지고 역사를 접하다 보니까 이게 어떻게 변해 가는지 알겠다 싶었다.
내가 겪어온 길을 돌아보면, 일단 교과서에 나와 있는 정도의 내용이 머릿속에 다 들어 있다 싶으면 디테일로 파고든다.
남들은 모르는 디테일을 발견했다 싶으면 기쁨을 느낀다. 나도 오랜 시간 이 단계에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특이점이 찾아온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때 왜 그랬지?',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점이 온다.
나의 경우에는 삼국지를 콘텐츠로 활동하는 '손찬이형'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계기가 되었다.
사마의의 고평릉 사변에 대한 동영상에서 그가 말하길, "사마의 가문이 비밀리에 관리한 삼천의 결사대를 가지고 거사를 도모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어떻게 1년간 사병을 몰래 관리할 수가 있느냐. 이건 일부 대신들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무언가로 머리를 한 방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아들내미에게 "공부할 때 항상 생각을 해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아라." 이렇게 말하곤 했는데, 정작 나도 별생각 없이 '아,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고평릉 사변에 대한 '손찬이형'의 해석을 적용할 수 있는 유명한 역사적 사건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바로 1차 왕자의 난이다.
일반적인 1차 왕자의 난에 대한 설명은 조선 건국 후 많은 공에도 불구하고 세자로 책봉되지 못한 데 불만을 품은 이방원이 정적인 정도전 등을 급습, 처치하고 권력을 잡은 사건이라고 되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건의 당사자인 이방원과 정도전, 그리고 거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가 봤을 때 1차 왕자의 난에서 의문을 품을 수 있는 대표적 포인트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당시 기록에는 충청도관찰사였던 하륜이 군대를 이끌고 한양으로 왔다고 한다. 그리고 정도전은 군대가 한양 도성에 이를 때까지 이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외군이 수도까지 왔는데, 아무리 비밀리에 움직였다 한들 이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방원 측에게 포섭된 보고 라인상 인물들이 고의로 보고를 누락시켰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두 번째, 이방원의 처 민씨가 몰래 무기를 숨겨두었다가 병사들을 무장시켰다고 하는데 이것도 당연히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이 정도 양의 무기를 어디서 구하기도 힘들거니와, 이걸 집에 숨겨 두고 있는데 말이 새어 나가지 않는다? 이 역시 이방원 측에게 포섭된 인물들이 알고도 묵인했거나, 상부에는 모두 압수했다고 허위 보고를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고평릉 사변과 마찬가지로, 당시 조선 관료 사회에 정도전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이들이 각처에서 이방원의 거사에 협조하거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앞으로 '내 생각엔 말야 - 조선왕조실록 다시 읽기'라는 주제로 연재를 시작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것들에 대한 나의 의심, 생각,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연재의 시작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양대 존엄 중 한 명으로 정했다. 성웅 이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