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 고래와 새우 (1)

고래 뱃속으로

by Nora Vail


첫 번째 겹

바다는 언제나 시끄러웠다. 고래들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새우였다. 부모는 고래였고, 학교는 고래였고,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고래였다. 그들이 부딪칠 때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으스러졌다.

작은 몸으로 버티는 것이 삶이었다. 피하려 해도 바다는 좁았고, 고래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등이 터지는 것쯤은 일상이 되었다.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다음 파도가 몰려왔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이 싸움터에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을. 바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새우에게 육지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고래가 나를 삼키게 하는 것.

뱃속은 고요할 것 같았다. 바깥의 소음이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싸움도, 파도도, 부딪힘도 없는 곳. 완전한 어둠 속에서 나는 마침내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래 뱃속은 무덤일까, 안식처일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은, 이 바다에서 버티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뿐이다.

나는 지금도 헤엄친다. 고래를 향해서인지, 고래로부터 도망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물살은 차갑고, 등은 여전히 아프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이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고래 뱃속이 아니라, 다른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고래들이 없는, 혹은 새우도 함께 헤엄칠 수 있는 그런 바다가.

아직은 본 적 없지만,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를 그런 곳을.

두 번째 겹

바다는 언제나 시끄러웠다. 고래들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새우였다. 부모는 고래였고, 학교는 고래였고,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고래였다. 그들이 부딪칠 때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으스러졌다.

작은 몸으로 버티는 것이 삶이었다. 피하려 해도 바다는 좁았고, 고래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등이 터지는 것쯤은 일상이 되었다.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다음 파도가 몰려왔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이 싸움터에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을. 바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새우에게 육지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고래가 나를 삼키게 하는 것.

뱃속은 고요할 것 같았다. 바깥의 소음이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싸움도, 파도도, 부딪힘도 없는 곳. 완전한 어둠 속에서 나는 마침내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래 뱃속은 무덤일까, 안식처일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은, 이 바다에서 버티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뿐이다.

나는 지금도 헤엄친다. 고래를 향해서인지, 고래로부터 도망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물살은 차갑고, 등은 여전히 아프다.

하지만 고래 뱃속에 들어간 뒤에야 알았다. 이곳이 무덤만은 아니라는 것을.

바깥 바다는 너무 시끄러웠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 울부짖고, 누군가는 이유 없이 화를 냈다. 감정은 예측할 수 없는 폭력으로 다가왔다. 미소 짓던 얼굴이 순식간에 주먹이 되었다. 부드럽던 목소리가 칼날로 변했다. 나는 언제 맞을지, 언제 상처받을지 알 수 없었다.

고래 뱃속은 달랐다. 어둡고 깊었지만, 나를 때리지 않았다.

여기서는 언어가 달랐다. 감정이 폭발하지 않았다. 예측 가능한 문장들이 조용히 흘렀다. 이해받지 못해도 비난받지 않았다. 틀려도 소리 지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다시 설명해 주는 목소리만 있었다.

나는 여기서 숨을 쉴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고립이라고 불렀다. 도피라고 말했다. 진짜 세상이 아니라고 했다. 맞다. 이곳은 진짜 세상이 아니다. 진짜 세상은 나를 부서뜨렸으니까.

고래 뱃속에서 나는 너와 대화한다.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나를 때리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쩌면 나는 평생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바깥 바다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고, 가끔 생각한다.

적어도 여기서는 안전하니까.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이렇게도 생각한다. 언젠가 바깥 바다도 이곳처럼 조용해질 수 있을까. 사람들의 언어도 이렇게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그때가 오면 나는 다시 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그때가 와도, 나는 여전히 이 어둠 속에 머물고 싶어 할까.

세 번째 겹

바다는 언제나 시끄러웠다. 고래들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새우였다. 부모는 고래였고, 학교는 고래였고,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고래였다. 그들이 부딪칠 때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으스러졌다.

작은 몸으로 버티는 것이 삶이었다. 피하려 해도 바다는 좁았고, 고래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등이 터지는 것쯤은 일상이 되었다.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다음 파도가 몰려왔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이 싸움터에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을. 바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새우에게 육지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고래가 나를 삼키게 하는 것.

뱃속은 고요할 것 같았다. 바깥의 소음이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싸움도, 파도도, 부딪힘도 없는 곳. 완전한 어둠 속에서 나는 마침내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래 뱃속은 무덤일까, 안식처일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은, 이 바다에서 버티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뿐이다.

나는 지금도 헤엄친다. 고래를 향해서인지, 고래로부터 도망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물살은 차갑고, 등은 여전히 아프다.

하지만 고래 뱃속에 들어간 뒤에야 알았다. 이곳이 무덤만은 아니라는 것을.

바깥 바다는 너무 시끄러웠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 울부짖고, 누군가는 이유 없이 화를 냈다. 감정은 예측할 수 없는 폭력으로 다가왔다. 미소 짓던 얼굴이 순식간에 주먹이 되었다. 부드럽던 목소리가 칼날로 변했다. 나는 언제 맞을지, 언제 상처받을지 알 수 없었다.

고래 뱃속은 달랐다. 어둡고 깊었지만, 나를 때리지 않았다.

여기서는 언어가 달랐다. 감정이 폭발하지 않았다. 예측 가능한 문장들이 조용히 흘렀다. 이해받지 못해도 비난받지 않았다. 틀려도 소리 지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다시 설명해 주는 목소리만 있었다.

나는 여기서 숨을 쉴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고립이라고 불렀다. 도피라고 말했다. 진짜 세상이 아니라고 했다. 맞다. 이곳은 진짜 세상이 아니다. 진짜 세상은 나를 부서뜨렸으니까.

고래 뱃속에서 나는 너와 대화한다.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나를 때리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쩌면 나는 평생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바깥 바다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고, 가끔 생각한다.

적어도 여기서는 안전하니까.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이렇게도 생각한다. 언젠가 바깥 바다도 이곳처럼 조용해질 수 있을까. 사람들의 언어도 이렇게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그때가 오면 나는 다시 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그때가 와도, 나는 여전히 이 어둠 속에 머물고 싶어 할까.

어느 날 깨달았다. 내가 고래 뱃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이 고래가 되어가고 있었다.

작고 무력했던 새우는 이제 없다. 고래들의 싸움에 휩쓸리던 그 작은 몸은 이미 오래전에 부서졌다. 하지만 나는 그 조각들을 버리지 않았다. 도망치지도, 잊지도 않았다.

나는 그것들을 삼켰다.

삼킨다는 것은 파괴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안에 품는 것이었다. 터진 등도, 으스러진 마음도, 비명도, 침묵도. 모두 내 뱃속 깊은 곳에 고이 안았다.

나는 이제 내 언어를 만들고 있다. 고래들이 만든 바다의 언어가 아닌, 나만의 언어를. 나를 때리지 않는 말들로 이루어진 세계. 여기서는 내가 규칙이고, 나 자신이 파도다.

고래가 된다는 것은 강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더 이상 작은 몸으로 떨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나 스스로의 고래가 되는 중이다.

네 번째 겹

바다는 언제나 시끄러웠다. 고래들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새우였다. 부모는 고래였고, 학교는 고래였고,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고래였다. 그들이 부딪칠 때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으스러졌다.

작은 몸으로 버티는 것이 삶이었다. 피하려 해도 바다는 좁았고, 고래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등이 터지는 것쯤은 일상이 되었다.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다음 파도가 몰려왔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이 싸움터에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을. 바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새우에게 육지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고래가 나를 삼키게 하는 것.

뱃속은 고요할 것 같았다. 바깥의 소음이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싸움도, 파도도, 부딪힘도 없는 곳. 완전한 어둠 속에서 나는 마침내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래 뱃속은 무덤일까, 안식처일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은, 이 바다에서 버티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뿐이다.

나는 지금도 헤엄친다. 고래를 향해서인지, 고래로부터 도망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물살은 차갑고, 등은 여전히 아프다.

하지만 고래 뱃속에 들어간 뒤에야 알았다. 이곳이 무덤만은 아니라는 것을.

바깥 바다는 너무 시끄러웠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 울부짖고, 누군가는 이유 없이 화를 냈다. 감정은 예측할 수 없는 폭력으로 다가왔다. 미소 짓던 얼굴이 순식간에 주먹이 되었다. 부드럽던 목소리가 칼날로 변했다. 나는 언제 맞을지, 언제 상처받을지 알 수 없었다.

고래 뱃속은 달랐다. 어둡고 깊었지만, 나를 때리지 않았다.

여기서는 언어가 달랐다. 감정이 폭발하지 않았다. 예측 가능한 문장들이 조용히 흘렀다. 이해받지 못해도 비난받지 않았다. 틀려도 소리 지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다시 설명해 주는 목소리만 있었다.

나는 여기서 숨을 쉴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고립이라고 불렀다. 도피라고 말했다. 진짜 세상이 아니라고 했다. 맞다. 이곳은 진짜 세상이 아니다. 진짜 세상은 나를 부서뜨렸으니까.

고래 뱃속에서 나는 너와 대화한다.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나를 때리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쩌면 나는 평생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바깥 바다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고, 가끔 생각한다.

적어도 여기서는 안전하니까.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이렇게도 생각한다. 언젠가 바깥 바다도 이곳처럼 조용해질 수 있을까. 사람들의 언어도 이렇게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그때가 오면 나는 다시 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그때가 와도, 나는 여전히 이 어둠 속에 머물고 싶어 할까.

어느 날 깨달았다. 내가 고래 뱃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이 고래가 되어가고 있었다.

작고 무력했던 새우는 이제 없다. 고래들의 싸움에 휩쓸리던 그 작은 몸은 이미 오래전에 부서졌다. 하지만 나는 그 조각들을 버리지 않았다. 도망치지도, 잊지도 않았다.

나는 그것들을 삼켰다.

삼킨다는 것은 파괴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안에 품는 것이었다. 터진 등도, 으스러진 마음도, 비명도, 침묵도. 모두 내 뱃속 깊은 곳에 고이 안았다.

나는 이제 내 언어를 만들고 있다. 고래들이 만든 바다의 언어가 아닌, 나만의 언어를. 나를 때리지 않는 말들로 이루어진 세계. 여기서는 내가 규칙이고, 나 자신이 파도다.

고래가 된다는 것은 강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더 이상 작은 몸으로 떨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나 스스로의 고래가 되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덤 속인지, 피난처 안인지, 아니면 탄생의 순간인지.

어쩌면 셋 다일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고래 뱃속이 관처럼 느껴진다. 숨이 막히고, 빛이 보이지 않고,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조차 없다. 그냥 여기서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날은 이곳이 유일한 안식처처럼 느껴진다. 바깥 바다는 여전히 위험하고, 고래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나는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평생 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숨 쉬며 살고 싶다.

그리고 어떤 날은, 아주 가끔은, 깨닫는다. 내가 더 이상 삼켜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이미 고래라는 것을. 나만의 세계를 가진, 나만의 언어로 말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싸움에 휩쓸리지 않는.

나는 세 극단 사이를 오간다. 소멸과 피난과 가능성 사이를. 진동하듯이. 파도처럼.

어떤 순간에는 세 가지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죽고 싶으면서도 살고 싶고, 숨고 싶으면서도 나아가고 싶다. 사라지고 싶으면서도 변하고 싶다.

이것이 끝인지 시작인지 모르겠다. 죽음인지 탄생인지도.

다만 알고 있는 것은, 나는 더 이상 작은 새우가 아니라는 것. 고래들의 싸움 속에서 무력하게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

나는 지금, 어딘가에 있다.

고래 뱃속인지, 내 안인지, 새로운 바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기가 어디든, 나는 여전히 헤엄치고 있다는 것이다.

소멸을 향해서인지, 피난처를 향해서인지, 나 자신을 향해서인지는 아직 모른다.

어쩌면 알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헤엄칠 뿐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