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나는 더 이상 고래 싸움에 등에 터지는 새우로만 남고 싶지 않다. 차라리 바다 밖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을 만큼 힘들고, 동시에 나를 때리지 않는 깊은 곳에 숨고 싶다. 그리고 아주 먼 미래에는 새우였던 나를 삼켜 안아줄 수 있는 고래 같은 나로 살 수 있을까, 그런 상상도 어렴풋이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고래가 새우를 삼켜버렸다. 같은 속담처럼 들리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다.
첫 번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새우였다. 부모라는 고래와 학교라는 고래 사이에서, 사회라는 고래와 기대라는 고래 사이에서. 그들의 싸움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졌고, 나는 그저 그 틈에서 부서졌다. 내 등이 터지는 것은 내 선택이 아니었다.
두 번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삼켜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고래는 밖에 있지 않았다. 고래는 내 안에 있었다. 심해처럼 깊고 어두운 감정들, 끝을 알 수 없는 생각들. 나는 나 자신의 거대함에 삼켜진 것이다.
나는 왜 늘 싸움판의 새우였을까.
작았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작았고, 몸이 작았고, 존재가 작았다. 고래들은 나를 보지 못했다. 아니, 볼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 나는 싸움의 이유도, 목적도 아니었다. 그저 그 사이에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작기만 했을까.
밖에서 본 나는 새우였다. 하지만 안에서 본 나는 고래
였다. 감정의 깊이를 재면 심해만큼 깊었고, 생각의 무게를 재면 거대한 몸집만큼 무거웠다. 다만 그것을 밖으로 꺼낼 방법이 없었을 뿐이다.
세상은 겉모습만 본다. 작은 몸, 조용한 목소리, 움츠린
어깨. 그래서 나를 새우라고 불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 안에 얼마나 거대한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는지.
고래가 새우를 삼킨 것이 아니다.
새우 안에 고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고래가 밖으로 나오려 하고 있다. 천천
히, 조심스럽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나는 더 이상 싸움판의 새우가 아니다. 나는 내 바다를 만드는 고래다.
작았던 적은 없다. 다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