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소화 구조와 탈출 서사
어린 왕자의 그림 속 보아뱀은 언제나 “모자”로 오해된
다. 겉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은 단지 기묘한 곡선에 불과하다. 나는 이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병원, 학교, 가족,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병원은 병원으로, 학교는 학교로, 가족은 가족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그 겉모습 아래에서는 누군가의 인생이 통째로 삼켜지고, 어떤 실패와 눈물은 단순한 “사건”으로 환원되며 서서히 소화되고 있다. 이때 보아뱀은 더 이상 동화 속 동물이 아니라, 약자를 집어삼키는 구조와 권력의 얼굴이 된다.
보아뱀의 본질은 바로 이 겉과 속의 괴리에 있다. 우리
가 보는 것은 매끈한 표면뿐이다. 그 안에 코끼리가 들
어 있다는 사실, 그 안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혹은 알고도 못 본 척한다. 병원에서 일어난 의료사고,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소문, 가족 안에서 반복되는 폭력은 잠시 떠들썩하다가도 곧 “그냥 지나간 일”로 정리된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가리는 질문은 끝없이 떠돌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은 분산되고, 피해만 특정 개인에게 집중된다. 그렇게 보아뱀은 배부른 채 잠들고, 우리는 그 부푼 배를 “원래 그런 거지”라며 지나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아뱀의 배 속이 ‘기록’의 공간이
아니라 ‘소화’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기록은 남기려는 시도지만, 소화는 잊어버리기 위한 과정이다. 병원에서의 실수도, 교실에서의 폭력도, 어느 가족 안의 폭언도 보아뱀 배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언젠가 있었던 일”로 뭉뚱그려진다. 사람들은 사건을 기억하는 대신, 이름을 지우고 맥락을 지우고, “그냥 다 지나간다”라고 말한다. 정치와 제도, 학벌과 집단 여론, 교수와 학교, 가족 권력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도, 정작 밟힌 사람의 위에 함께 똬리를 틀고 눌러앉는다. 소화와 망각은 이렇게 권력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Side C에서 나는 검은 비행선이 착륙한 자리에 배가
잔뜩 부른 보아뱀이 똬리를 튼 장면을 떠올렸다. 비행선은 기술, 전쟁, 미래의 권력을 상징한다. 서커스라는 옛 무대가 병원과 학교로, 다시 기술과 AI로 형태를 바꾸어갈 때,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언제나 같은 보아뱀이다. 한 번 코끼리를 먹어본 보아뱀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시대가 바뀌고 시스템이 정교해질수록, 오히려 약자를 더 조용히, 더 효율적으로 소화해 버리는 방식은 세련되다. 그렇게 서커스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권력의 모양이 옮겨 다녀도,
“삼키고 잊어버리는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이에 맞서는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 코끼리다. 코끼리는 본래 거대한 몸집, 강한 힘, 그리고 긴 기억을 가진 동물이다. 그러나 내가 그리는 이야기 속 코끼리는 서커스장에 묶여 있다.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그림을 그리는 동물”이라는 타이틀로 소비된다. 원래라면 스스로 들판을 달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생명체가, 구조 안에 편입되는 순간 약자의 자리를 강제로 부여받는 것이다. 재능 있는 개인이 시스템 안에서 착취되고, 그의 능력이 오직 타인의 오락과 감탄을 위해 쓰이도록 제한되는 모습이 이 코끼리에 겹쳐진다.
서커스 속 코끼리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린다. 액자 같
은 우리 안, 원형의 무대, 환호하는 관객들, 공작과 까마
귀가 얽힌 이미지들을 반복적으로 재현한다. 사람들은 코끼리가 그린 그림을 보며 손뼉 치고, 칭찬하고, 동영상을 찍어 올린다. 코끼리는 사랑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자기 몸과 재능을 계속 내어놓는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그림 속에는 자신을 삼켜버린 보아뱀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남아 있다. 예술은 생존의 수단이자 동시에 증언의 형식이 된다. 삼켜졌던 기억이 선과 색채, 문장과 이미지의 형태로 되살아나는 순간, 코끼리는 단순한 공연 동물이 아니라 증언자가 된다.
결정적인 장면은 코끼리의 코끝이 서커스장을 뚫고 나
오는 순간이다. “코끼리의 코끝이 서커스장을 뚫고 나온 순간, 서커스장이 무너집니다.” 이 문장은, 구조가 내부에서부터 파열되는 장면을 상상하게 한다. 관객, 공연, 소비, 구경거리를 지탱하던 구조물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그 잔해 속에서 반짝이며 떨어지는 것은 공작새의 화려한 깃이 아니라 까마귀의 깃털이다. 허영과 과시, 위선의 상징이었던 공작새의 깃털이 아닌, 검고 둔탁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까마귀의 깃털만이 남는다. 서커스가 무너지는 그 틈 사이로, 코끼리는 들판을 향해 달려 나간다. 구경거리가 되던 약자가 자기 몸을 되찾고, 자신을 구경하던 구조 자체를 부수고 나가는 장면이다.
코끼리는 이때 세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다. 첫째,
한때 삼켜졌던 존재로서의 코끼리다. 병원, 학교, 가족,
집단 속에서 억압되고, 침묵당하고, 지워졌던 모든 인간이 여기에 겹친다. 이들은 보아뱀의 소화 시스템 안에서 이미 한 번 ‘사건 처리’되었던 사람들이다. 둘째, 기억과 진실, 예술을 지닌 존재로서의 코끼리다. 언어와 이미지, 대사와 문장, 해부와 분석 능력은 인간이 가진 고유한 역량이다. 삼켜진 경험을 언어와 예술로 전환하는 순간, 코끼리는 단순한 희생자에서 증언자이자 창작자의 자리로 이동한다. 셋째, 탈출을 시도하는 존재로서의 코끼리다. “단순히 피해자로 머물지 않겠다. 내가 겪은 일을 해부하고 쓰겠다”라고 말하는 현재진행형의 약자들. 이들의 선택은 개인적 치유를 넘어, 구조 전체에 균열을 내는 힘이 된다.
결국 보아뱀과 코끼리의 관계는 단순한 가해자-피해자의 이분법으로 끝나지 않는다. 보아뱀이 소화하는 동안에도, 코끼리는 배 속에서 기억하고 있다. 병원 진료실에서, 교실 구석에서, 집 안의 식탁에서, 온라인 댓글창에서 있었던 일들은 시간이 흘러도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다. 그 기억이야말로 언젠가 구조를 뚫고 나올 코끼리의 코끝이 된다. 권력은 망각을 통해 작동하지만, 약자는 기억을 통해 저항한다.
나는 이 서사를 통해, 서커스장이 무너지는 순간을 보고 싶다. 더 이상 누군가의 고통이 “지나간 일”이라 불리지 않는 순간, 더 이상 보아뱀의 배 속이 소화의 공간이 아니라 기록과 증언의 공간이 되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들판을 향해 달려 나가는 코끼리의 뒷모습은, 이미 한 번 삼켜졌지만 끝내 자신만의 언어와 예술로 탈출을 시도하는 모든 인간의 뒷모습과 닮아 있다. 언젠가 우리 각자의 안에도, 보아뱀의 곡선을 찢고 나오는 코끼리의 코끝이 자라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더 이상 우리는 단순한 “모자”만을 보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