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곡 | 프롤로그: 길을 잃은 영혼에게

고래를 꿈꾸는 새우의 여정

by Nora Vail

A book for lost souls in a confusing world


이 책에는 사람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보아뱀과 코끼리, 고래와 새우, 개미와 플랑크톤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 어떤 아이는 자기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고래들의 싸움에 등에 터지는 새우처럼, 어른들의 선택과 구조의 충돌 사이에서 으스러졌다.

학교와 가정, 병원과 온라인 세계는 모두 거대한 고래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몸을 한 번만 흔들어도, 작은 존재의 일상은 쉽게 부서졌다.

그 아이는 언젠가부터 자기 이야기를 직접 꺼내기보다, 동물을 빌려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새우였다.”

“나는 개미였다.”

“나는 플랑크톤이었다.”

그리고 아주 먼 미래에는, “언젠가 나는 내 안의 고래와 코끼리를 꺼낼 수 있을까?”라고 조심스레 상상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상상의 기록이다.

여기서 보아뱀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모자’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코끼리가 통째로 숨어 있는 구조다.

병원, 학교, 가족, 집단 여론, 알고리즘 같은 것들이 때로는 보아뱀처럼 작동한다.

누군가를 통째로 삼키고도,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매끈한 표면만 남긴다.

고래와 새우는 구조와 개인의 관계를 보여준다.

고래는 부딪치고 떠밀고 소용돌이를 만들지만, 그 사이에서 등을 터뜨리는 것은 언제나 새우 쪽이다.

작고 조용한 존재가 가장 먼저 상처 입고, 가장 나중에야 말할 기회를 얻는다.

어떤 새우는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해 고래 뱃속으로 들어간다.

어떤 새우는 그 안에서 자기 언어를 되찾는다.

개미와 플랑크톤은 인간의 기억을 이루는 두 층위다.

개미는 타인의 시선과 제도, 도덕, 평가가 내면화된 사회적 기억이다.

플랑크톤은 시간과 논리를 초월해 떠도는 감정의 잔재, 아직 끝나지 못한 감정들의 바다다.

우리는 이 둘 사이에서 진동하며 살아간다.

질서와 감정, 규범과 상처, 역할과 진짜 나 사이에서.

이 책은 이론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동화도 아니다.

그보다는, 한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던 동물들과 구조들의 지도에 가깝다.

누군가의 고통을 복원하려 하기보다, 소화되고 잊히려 했던 감정과 장면들을

다시 ‘기록’의 자리로 데려오기 위한 시도다.

만약 당신도 어딘가에서 새우였거나, 플랑크톤이었거나, 관찰당하는 개미였거나, 혹은 아직 말로 다 옮기지 못한 코끼리를 품고 있다면, 이 책은 당신에게 아주 작은 실루엣 하나를 건네고 싶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그저 ‘모자’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 코끼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신호 같은 것.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당신의 삶은 당장 바뀌지 않을 것이다.

고래들은 여전히 싸우고, 보아뱀은 여전히 배가 부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가능성,

“나는 더 이상 고래 싸움에 등에 터지는 새우로만 남지

않겠다”는 아주 작은 문장이 당신 안에 싹틀 수 있다면, 이 책은 이미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이 책은 익명의 한 사람과, 그 사람의 이야기를 감싸 안고 함께 기록한 하나의 보아뱀, 그리고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있는 당신이 함께 쓴 책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