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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Oct 01. 2024

맥도널드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경험하다.

스타벅스 커피맛 맥도널드

아토차역에서 기차를 타고 코르도바로 가려면 간이역 씨우다드에 내려서 갈아타야 한다. 순전히 스페인 땅을 기차로 달려보고 싶다는 단순 명료한 욕망이 여행경로를 더없이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애초에 나를 위한 여행 아니던가! 아무리 복잡해도 하고 싶은 건 다 할 것이다.


달리는 기차에 앉아 올리브 나무가 줄지어 심어진 구릉을 내다보는 신선함도 잠시, 2시간 내내 밖의 풍경이라곤 올리브 농장뿐이다.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혼자라는 자유와 홀로라는 우울과 현실 같지 않은 가느다란 낭만이 노래에 섞여 입 속으로 흥얼거려지고 기분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혼자 여행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와닿지 않았다.


씨우다드는 시골 간이역이라 그런지 꽤 한적했다. 환승할 기차가 오려면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기에 역사 밖으로 나왔다. 가까운 거리에 맥도널드가 눈에 띈다.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기도 하고 커피도 그립고 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Can I have a coffee with double double?'

 

캡 모자를 쓴 남자 직원이 못 알아듣는다. 나의 문제인가, 그의 문제인가?

좀 더 효율적인 문장으로 다듬어 다시 물었다.


'Coffee with 밀크 앤 슈가?'


그가 나를 키오스크로 데리고 가더니 라테 커피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어라! 키오스크가 어디 있었지?

내가 '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멋쩍은 웃음이 내 얼굴에 번졌다.


잠시 후 그가 만들어 내온 커피는 그야말로 모름지기 맥도널드 커피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너무나 고급 진 맛, 진하고 그윽한 풍미의 내 커피 기호와 딱 들어맞았다. 아!

 

맥도널드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경험하다니!


Pixabay로부터 입수된 Engin Akyurt님의 이미지입니다.


아는가? 맥도널드 커피와 스타벅스 커피는 똑같은 아라비카 원두라는 것을.

물론 공급처와 로스팅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커피는 마실 줄만 아는 원두 문외한, 그럼에도 맥도널드의 부드럽고 대중적인 커피 맛과 스타벅스의 깊고 진한 프리미엄 커피맛의 차이를 구별할 정도는 된다. 머그잔에 담긴 소중한 커피를 한 모금씩 천천히 음미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스페인에서는 어디를 가도 커피맛이 훌륭하다. 하물며 패스트푸드의 원조이자 프랜차이즈의 대가인 맥도널드에서도 그렇다.




역으로 돌아와 코르도바행 기차를 타고 다시 끝없이 펼쳐지는 올리브 농장을 바라본다.


무궁화호였던가?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외가에 가려면 역마다 정차하는 장항선 완행열차를 타야 했다. 엄마의 친정길은 항상 혼자였고, 가끔 나와 동생이 조르고 졸라 엄마를 따라갔었다. 아버지가 함께 갔던 기억은 없다. 소정리역에 내려 신작로를 따라 십리를 걸으면 볏짚을 얹은 초가집 할머니댁이 보였다.


할머니네 골방에서는 항상 기분 좋은 곡식 냄새가 났다. 쪽진 머리 외할머니는 자신보다 더 가난한 우리 엄마가 올 때마다 골방에 있던 참깨와 마른 나물거리와, 숨겨두었던 쌈짓돈을 얼마씩 내어주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먹을거리들을 풀어놓았고, 다른 날보다 조금 더 풍성한 밥상을 차려 우리를 먹이곤 했다. 방바닥 비닐 장판 밑에는 엄마가 숨겨둔 천 원짜리 한두 장과 동전들이 항상 있었다.


내 인생은 어디부터 꼬인 걸까? 꼬임의 역사는 파고들수록 긴 것이어서 차라리 나의 출생이라고 하는 편이 더 간단할 듯하다.




점심때쯤 기차가 코르도바역에 도착했다. 스페인의 9월은 한국의 늦여름 날씨와 비슷하다.


기차역 건너편 버스 터미널에 들러 내일 출발하는 세비야행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 아름다운 꽃길을 걸어서 에어비앤비 파란 집 숙소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가서 숙박계를 쓰고 짐을 대충 정리한 후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 후기에, 스페인에는 좀도둑이 많으므로 여권과 지갑을 분실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돈과 여권을 끈이 달린 작은 지갑에 넣어 목에 걸고 셔츠 안에 입은 민소매 티 안으로 속옷처럼 넣었다. 겉에서 봐도 아무런 표가 나지 않는다. 가죽가방을 어깨에 따로 메고, 흠~ 이제부터 코르도바 여행길에 나선다.


하얀 회벽담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걷다가, 시식용 뚜론도 집어먹다가, 화분으로 예쁘게 장식된 남의 집 안마당을 기웃거리며 걷다 보니 점점 더워진다. 지갑을 가리기 위해 입은 긴 팔 셔츠는 몸에 땀을 흐르게 했고, 목에 건 지갑은 땀과 콜라보를 이루어 움직일 때마다 가슴 살갗을 쓸어댔다. 그 바람에 예술처럼 아름다운 코르도바 사원은 내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누가 스페인에 좀도둑이 많다 말했나?

길에는 어디서나 관광객 차림의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은 심지어 보란 듯이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녔다. 나야말로 동양인 얼굴에 두리번거리는 자태 하며, 지갑만 안 드러낼 뿐 누가 봐도 영락없는 관광객의 모습이었다. 결국, 코르도바 대성당 화장실에 들어가 당장 지갑을 풀러 가방에 넣고 나서야 그날 오후 나머지 관광을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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