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통하는 환장의 미아리 고개
2019년 9월 11일, 비행기 안에서 보는 마드리드는 아직 새벽이다. 드디어 착륙!
설렘보다는 이토록 넓은 공항에서 터미널 4를 찾고, 관광객 티 내지 않으며 아토차 기차역까지 늦지 않게 가야 할 텐데 하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몸이 가늘게 떨렸다. 이제부터가 여행의 본격 시작이었다. 오늘 목적지는 코르도바였고, 아토차에서 코르도바까지 이어지는 기차표를 예매해 둔 상태였기 때문에 혹시라도 길을 잃고 지체하면 다음 여정까지 꼬일 것이었다.
마드리드 바하라스 공항터미널 4에서 써카니아 C1을 타고 아토차 렌페역으로 향했다.
거의 다 왔는지 출근하는 많은 사람들이 출입문 쪽으로 몰렸다.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활력과 피로가 동시에 느껴진다. 나도 한때는 저들처럼 9 to 5의 쳇바퀴를 돌렸었지. 오래 버티지 못하고 튕겨져 나오고, 다시 들어갔다가 튕겨져 나오고... 내게는 피로감만 있었던 시절이다.
'헬로~ Is here 아토차?'
아토차역이 맞는지 불안해서 사람들을 향해 물었으나, 어째 아무도 못 알아듣는 눈치다. 더 불안해진 내가 손가락으로 창 밖을 가리키며 다시 'Atocha?' 했다. 그때 누군가 '씨!' 한다. 이번엔 내가 못 알아듣는다.
'Ci'는 'Yes'와 같은 뜻.
스페인어 '예스, 노'도 안 배우고 무작정 비행기표만 샀으니, 한심하구나!
영어 안내판은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영어를 말하지 않았다. 여행하면서 알았지만,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는 스페인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할 줄 모른다. 물론 유명 관광지에는 영어 가능한 안내원이 항시 근무하지만, 그래도 여행 전 간단한 스페인어 회화를 준비해 두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을 따라 길을 건너 아토차 기차역으로 갔다.
스페인의 아토차역은 한국의 서울역과 같은 곳으로, 마드리드 수도권을 잇는 근교 노선의 터미널 역할을 한다. 서울 기차역과 서울 지하철역이 있는 것처럼 아토차 기차역과 아토차 렌페역이 있다.
역사 내에 식물원이 있고, 플랫폼도 15개나 되는 큰 규모이니 안 그래도 시골영감 서울구경이 될 것이 뻔했다. 기차표를 꼼꼼히 챙겨 읽고 눈치껏 안내판의 사인과 대조해 가며 기차 출발 지점에 닿고서야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코르도바행 기차 플랫폼은 아토차의 넓은 역청사를 돌고 돌아 안쪽 구석진 곳에 있었다.
아, 휴대폰!
유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심카드를 사야 하는데 공항은 넓고, 관광객처럼 두리번거리기는 싫고, 기차 시간은 다가오고.... 에이! 조용한 시골 동네에 가면 금방 찾을 수 있겠지 하며, 때로 대책 없이 느긋하고 치밀하지 못한 나의 성격이 인터넷의 소중함을 가볍게 넘겨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나중에 험난한 고생과 더 큰 금액으로 다가올 줄 그때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 써카니아 Cercanias : 마드리드 도심과 주변 근교지역을 연결하는 기차선
대문사진 출처: Alev Taki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