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냄새보다 더 강력한 음식 냄새
집을 내놓고 나면 냄새에 민감해진다.
화장실 냄새, 쓰레기 냄새.... 담배냄새도 유쾌하지 않지만 끼니때마다 풍겨야 하는 음식냄새는 더욱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더구나 여기는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산다는 캐나다 아닌가! 어느 나라 어느 인종이 집을 보러 올지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해먹을지의 결정은 매우 신중해야 하는 사안이다.
우리 부부는 한국 사람이며, 한국 음식은 고추장, 간장, 김치.... 하다못해 라면까지, 대부분 냄새를 풍기는 양념과 조리법이 필요하다.
밥을 안 먹을 수도 없고, 매일 서브웨이만 사다 먹을 수도 없고, 누구처럼 아예 호텔로 들어가 살 수도 없는데, 집은 안 팔리고 어느새 내놓은 지 3주째 들어섰다. 곧 크리스마스가 이어질 것이고, 여차하면 해를 넘길 수도 있기에 이제는 집값을 잘 받겠다는 생각도 없어지고 그저 빨리 팔리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집을 보여주는 방문(쇼잉) 일정이 있는 날은 냄새나는 요리를 해 먹을 수 없고, 그럴 때마다 근처 맥도널드에 가서 햄버거와 푸틴으로 끼니를 대신했더니 몸 구석구석에서 부실한 기운이 올라오고, 먹고 나서도 먹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래서 집밥이 중요하다. 특히 60대 노년층 나이에는 한 끼의 알찬 식사가 좀 부풀려서, 일주일의 활력을 좌우할 정도다.
방문시간 전에 미리 집단장 해놓고, 방문 중인 1시간 동안은 동네 패스트푸드점으로 피신한 다음, 방문이 끝났을 즈음 집으로 돌아와 일상용품들을 원위치로 돌려놓는 이런 생활을 2주 넘게 하다 보니, 무너지는 몸과 함께 정신력도 맛이 갔는지 저녁 방문 예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심결에 닭볶음탕을 휘리릭 만들었다. 이제 3시간 후면 집을 보러 올 것이다.
닭볶음탕에 들어가는 고추장과 국간장의 콜라보는 온 집안을 꼬랑꼬랑한 냄새로 채웠고, 그까짓 것이라 여겼던 음식냄새에 압도당한 건 순식간이었다. 그나마 맛이라도 좋았으면 냄새 좀 나기로 억울하지는 않으련만, 휘리릭 한 탓인지 맛도 야트막했다.
부리나케 창문과 현관문에 화장실 문까지, 온갖 문이란 문을 다 열어놓고 냄새를 빼낸 다음, 쇼잉 30분 전에 아예 닭볶음탕이 담겨있는 국솥을 통째로 차에 싣고 근처 맥도널드로 피신 간다.
저녁시간에 맥도널드에 왔으니 커피만 마시고 있을 수 없다. 에라! 온 김에 요기나 하자, 하여 햄버거와 푸틴을 시켜 먹고 쇼잉이 끝날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어쨌거나 이미 맥 디너를 먹었으니 닭볶음탕은 열어보지도 않고 그날의 식사를 마감한다.
다음날 아침에는 늘 하던 대로 빵과 야채, 과일을 먹는 바람에 닭볶음탕은 또 생략이다. 오전 11시에 쇼잉예약이 잡혀서 닭볶음탕 솥을 다시 차에 싣고 이번에는 딸네로 피신한다. 냉장고에 넣어두는 방법도 있겠지만, 냉장고는 집과 함께 팔리는 물건이므로 당연히 열어볼 것이다. 냉장고를 열었을 때 보이는 솥단지는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고, 혹시라도 냄새가 날지 몰라 그냥 들고 튀기로 한다.
평상시 먹을 만한 것이 없던 딸네 집은 오늘따라 양념불고기에 육개장까지 준비되어 있다. 닭볶음탕을 그대로 차에 두고 내린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 두고 내렸던 닭볶음탕이 혹시 상하기라도 할까 싶어 한소끔 끓여 놓는다. 다시 냄새가 집안을 집어삼킨다.
다음날 아침도 빵과 야채 과일을 먹고, 점심쯤에는 코스트코에 가서 장을 본 다음 핫도그와 감자튀김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손자들을 봐주러 딸네로 가야 하니 오늘도 닭볶음탕은 한 수저도 뜨지 않은 채 그대로 남겨질 것이다.
아, 나는 닭볶음탕을 왜 했을까?
에필로그
결국 닭볶음탕은 제물이 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솥단지를 들고 다니는 며칠 사이에 집을 사겠다는 오퍼가 들어왔고, 주말에는 인스펙션(집에 하자가 있는지 검사하는 과정)을 마쳤다. 드디어 지난주 수요일, 집을 내놓고 3주 만에 매매가 확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담배냄새 때문에 집이 안 팔린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담배냄새보다 더 강력한 음식냄새를 물리치고 마침내 집이 팔렸다. 이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