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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집은 내 집이 아님을

착각하지 않기

by 블루랜턴

또 재촉이다.


집에서 아침 10시에 나가기로 본인이 주도해서 정해놓고 20분 일찍 나가기로 본인이 또 바꾼다. 서로가 이미 정한 시각이 있는데 본인 마음대로 바꾸려면 약속은 왜 한단 말인가!

누구겠는가? 당연히 남편이다.


시내에 볼 일이 있어서 아들네와 함께 가기로 하고 픽업시간을 10시 30분으로 정했다. 남편 말대로 20분 일찍 나가면 아들네에서 30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남편의 의도는,

조금 일찍 도착해서 이사 간 아들네 집도 한 번 둘러보고 어떻게 꾸몄는지, 뭐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자는, 아빠로서의 순수한 마음이다. 집 앞에 도착해서 어떻게 집에도 안 들어가 보고 그냥 사람만 픽업하냐는 것이다.


반면에 나는,

분가해 나간 아들네 집은 남의 집이나 마찬가지인데 아무 때나 먼저 가서 내 집처럼 둘러보고, 냉장고를 열어보고 하는 것은 실례이며, 어떻게 꾸미고 살든 이제는 저들이 알아서 살 일이니 쓸데없는 관심을 거두자는 것이다. 픽업한다고 했으니 픽업만 하는 것은 당연하며, 괜히 미리 가면 외출준비하느라 바쁜 그들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으니 시간을 지키자고 하는 것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맞고, 나는 나대로 맞다.

남편은 부모의 입장을, 나는 아들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른 관점에서 각자 맞는 주장으로 자주 다툰다.




아직 아들이 태어나기 전, 연년생 두 딸을 데리고 시댁 가까이 살고 있을 때였다. 남편은 지방 출장으로 며칠 째 집을 비우고 있었고, 나는 남편이 없다는 이유로 어른 반찬에 별로 신경 쓰지 않은 상태로 저녁을 맞고 있었다.


갑자기 시아버지께서 현관 벨을 눌렀다.

"저녁 좀 먹으러 왔다."


이렇게 불쑥?

아마도 시아버지는 며느리 밥상을 받고 싶으셨던 것 같다.


냉장고를 열고 닫으며 있는 재료를 다 꺼내서 한참 만에 저녁상을 차렸지만, 밥상은 턱없이 조촐했다. 아무런 말씀 없이 한 공기를 다 드신 후 ‘잘 먹었다.'를 남기고 시아버지는 가셨다.


전화를 미리 주셨으면 퇴근길에 장이라도 봐왔을 텐데, 찬 없는 밥상을 대접하는 며느리의 불편하고 죄송한 마음을 짐작이나 하셨을까?


서너 살배기 어린 딸들이 놀다가 혹시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음식을 준비하느라 손 따로 눈 따로 머리 따로, 며느리의 몸뚱이와 마음이 제각각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하셨을까?


느닷없는 시아버지의 방문은 친밀함보다는 오히려 죄송스러움만 남겨 주었다.




분가해 나간 아들집은 나의 집이 아니다. 딸네 집도 마찬가지다. 모두 남의 집이다. 내 자식들 집이 곧 내 집이라는 착각은 금지다.


집은 사적인 공간이며, 그들에게는 프라이버시가 있고, 그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남의 집을 방문할 때는 나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의 호기심을 채우거나 나의 편리를 위해 그들의 집을 내 맘대로 드나드는 것은 냉정하게 말하면 무단침입이다.


"난 집 안에 안 들어가, 그냥 차 안에 있을래요."


아들네 집에 도착한 후에도 일부러 차에서 내리지 않았더니 남편도 쭈뼛거리며 그대로 앉아있다.


잠시 후 외출 준비를 끝낸 아들 부부가 문 밖으로 나왔고, 그들을 다만 픽업해서 차는 다시 시내를 향해 출발했다.


오늘도 내가 이겼다.





대문사진: Pixabay로부터 입수된 Paolo Trabattoni 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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