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센치한 작가 Sep 24. 2024

가을. 복잡한 마음. 남자의 계절.

9월 24일을 기록하다.

맹위를 떨치던 더위. 이제는 꺾이는 무더움. 

추석까지만 하더라도 왜 이리 덥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더위. 올해 더위는 유난히 더웠다. 특별히 더 더웠다. 체감상 느껴졌다. 작년도 꽤나 더웠는데 올해는 더 더웠다. 더위로 인한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 그리고 뉴스를 올해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옛말에 추워 죽는 사람은 많지만 더위 죽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말이 있었는데 올해 무더위는 이 말이 통하지 않는 더위였다. 뙤약볕에 있다 보면 '아. 이러다가 쓰러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늘을 찾게 되고 쉬게 되었다. 


나는 더위를 먹는 그 느낌을 잘 안다. 2018년 내가 인천에서 근무를 할 때 여름에 에어컨이 없는 차를 타고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레토나라는 차량이었다. 그 차량은 에어컨이 없는 차가 많아서 도태되고 있는 시점이었고 나는 차가 없어서 그 차를 타고 출장을 갔었다. 그 차를 타고난 후 힘이 없었다. 기력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책상에 앉아마자 일을 할 수 없었고 축 늘어졌었다. 운전병이 그 장면을 보고 '더위를 드신 것 같다.'라고 얘기를 했다. 처음으로 그 기분을 느꼈다. 

더위를 먹으니까 몸이 이렇게 되는구나. 몸에 힘이 없어 움직일 수도 없고 축 늘어져있을 수밖에 없구나. 운전병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에 에너지음료를 줬었고 나는 그것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참 고마웠다. 그 여파는 하루가 더 갔다. 그다음 날도 몸이 상당히 힘들었었다. 이틀이 지나니까 좀 회복이 되었다. 

그 상태에서 뙤약볕에서 일을 조금 더 하거나 그 상태에 노출이 되어있다면 탈수로 쓰러지거나 일사병, 열사병에 걸릴 수도 있다. 사람이 그 상태, 그 지경까지 보통 갈 수 있다. 왜냐면 이 정도면 몸이 버티겠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더위로 인한 질환에는 많은 분들이 그 느낌을 잘 모를 수 있고 익숙지도 않다. 추위야 손이 시리거나 어디가 시리으면 몸이 아프기 때문에 그 상태가 되기 이전에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과정이 있지만 더위로 인한 질환은 그 단계를 느끼기가 정말 어렵다. 

'아. 좀 힘든데.' 하는 순간 넘어지고 쓰러지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변에서 이 상태에 있는 사람이 보이면 필히 경고를 해야 하고 관리자들은 그 지경이 되지 않도록 휴식을 과감히 취해줘야 한다. 그것이 사람을 보호하는 길이다. 진짜 추위도 조심해야 하지만 더위도 정말 조심해야 한다. 


이런 더위가 가고 나니 다시 한번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다. 그리고 오래전 선조 또는 옛날 사람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다. 해가 뜨면 지기 마련이고, 모든 영광은 영원할 수 없고 덧없이 지나간다. 

이 더위가 계속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가을이 찾아오듯 그리고 이 가을이 오면 겨울이 오고 너무 추워 덜덜 한참 몸을 떨고 있으면 봄을 기다리게 되고 어느새 살랑살랑한 바람이 부는 봄이 찾아온다. 


멈췄으면 하는 시간. 그리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욕심꾸러기. 

계절이 변하면서 그리고 나이는 한 살 더 먹게 된다. 

한해 한 해가 지날수록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 너무 힘들었다. 

첫째 딸이 태어났을 때도 힘들었지만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는 제곱으로 힘든 게 아니라 세제곱, 네제곱 갑절로 힘들었다. 나 역시 힘들었지만 아내가 더더욱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것을 잘 참고 잘 키워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진짜 아내는 그런 측면에서 볼 때는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나도 불, 아내도 불같아서 싸우면 폭발이 일어난다. 서로 ENFJ이고 B형이다. 

우리 가족이 웃긴 게 혈액형이 다 B형이다. 나도 B, 아내도 B, 딸도 B, 둘째도 B. 예전에 과학시간에 배웠듯이 나는 BO이고 아내도 BO이다. 그러면 한 명은 O이 나올법한 확률인데 다 B형이다. 

우리 가족이 다 B형이라서 그 특유의 B형의 특색이 나온다. 정말 신기하다. 둘째가 7살인데 그게 보이니 신기하다. 

나도 B, ENFJ, 아내도 B에 ENFJ다 보니 싸울 때 폭발적으로 싸웠다. 이제는 그 싸움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싸움이 점점 덜하다보고 서로를 이해하다 보면 다시 한번 예전의 불같이 사랑했던 기억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이혼'이 단어. 나는 그 느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나는 이혼할 뻔했다. 

하지만 나는 그 단계 그 코 앞에서 나 스스로 멈췄다. 아내는 아마 인정하지 않고 모를 있겠지만, 아니 어느 정도 것이다. 

아내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말이 통하지 않아서 헤어지고 싶어 했고 제발 헤어져달라고 얘기를 했다. 나는 그것을 단칼에 거절했다. 아마 너는 나 아니면 이 정도의 느낌, 나와 헤어지면 더 삶이 고달프고 괴로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나만큼 너를 잘 알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그녀에게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속적으로 했다. 나는 정말 자신한다. 나만큼 내 아내를 아는 사람은 없다. 정말 진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이혼을 하거나 헤어진다면 너는 더 불행질 것이라고 그녀 입장에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자신 있게 말했다. 

이혼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 것은 99% 이상 '돈' 때문이다. 보통 남편이 돈을 벌어오기 때문에 합의금 또는 위자료를 40~50% 정도 줘야 한다. 최소 30% 이상은 아내에게 줘야 한다. 같이 지낸 날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퍼센티지는 늘어난다. 나는 솔직히 그 이상 줄 자신은 있었다. 그래서 변호사와 상담을 한 경험이 있었다. 

그 변호사가 나에게 하는 말이 '그렇다면 곧바로 이혼하세요.'라고 했고 나는 그 말에 충격을 받고 이혼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이혼이 쉽다고????' 나는 정신을 다시 차렸다. 


나와 헤어지고 나서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이며 돈은 어떻게 더 벌 것이며 그 가정은 누가 지킨단 말인가. 솔직히 내가 근무를 하거나 훈련을 나가거나 자리에 없으면 문도 2중으로 잠그고 바스락 소리에 나면 깨는 그녀가 나 없이 수많은 밤을 혼자 있을 수 있다고? 나는 그녀를 잘 안다. 그녀의 습관, 아내의 행동. 나는 사람을 꽤나 잘 관찰하고 잘 기억하는 편이다. 사람을 몇 번 관찰하면 스캔하듯 기억이 벤다. 그녀는 나 없이 이미 살 수 없을 만큼 적응되었을 것이다. 나는 아내를 불같이 사랑하지만 아내는 나를 그 정도로 사랑하지 않는다. 아내도 최근에 나에게 실토했다. 그저 좋은 아빠로만 있어달라고 말이다. 솔직히 실망했지만 절망에 빠질 수 없다. 그런 상황도 아니다. 어떻게든 개선시켜야만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좀 더 노력하기로 했다. 그녀가 했던 것을 떠올렸다. 두 아이가 이렇게 건강하게 있는 것 그 자체가 이 두 아이는 오로지 우리 둘만의 힘으로 키웠다. 단 하루도 조부모에게 맡긴 적이 없었다. 그런 상황이어서 그랬지만 그런 상황이 되었더라도 맡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것 자체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같이 감정적이고 딴따라 같은 사람과 같이 사는 게 얼마나 힘들까. 더 이해하기로 했다. 

그녀는 힘들겠지만 나는 행복하다. 물론 마냥 행복한 게 아니라 억지로 행복한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계속 떠올리고 웃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그 시간만큼 행복해지는 것이고 그 시간은 점점 늘어난다. 아이들도 서로 웃는 날이 많다. 

40이 지나도 여전히 예쁘고 매력적인 아내, 물론 나를 그리 사랑하지는 않지만, 밝고 눈웃음 있고 행복한 시간이 많아보는 딸, 그리고 감정적이지만 매력적인 아들까지. 그리고 나는 잠깐 실직자였지만 돈을 벌고 있고 그 돈으로 같이 지내고 있으니 행복한 것이다. 

그리고 막힘없이 숨 쉴 수 있고, 물 마실 수 있고 배고프면 뭐 사서 먹을 수 있고, 피곤하면 잘 수 있는 이런 집이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그리고 희망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부자', '성공'이라는 단어를 완벽히 이해하고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벌써 이런 흐름이 40번이 넘게 지났다. 문득문득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잘 살아왔던 아니던, 이제 과거는 과거이다. 예전에 내가 했던 잘못들은 어딘가 아니면 브런치에 기록을 해서 반성을 하고 잘못을 다시 했다면 또다시 반성을 해서 고치도록 노력하려 한다. 


이기적인 것인지 아닌지 고민하게 되는 부분인데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려고 했다. 솔직히 이렇게 사니까 후회는 별로 없다. 이 군인이라는 직업은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간은 내가 선택한 것이니 예전에는 후회했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후회할 수 없는 것은 '아내'라는 이유이다. 내가 군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없었을 것이고 그 자리에 없었다면 아내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후회가 없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얻었기 때문에 이 애증에 직업 대해서는 후회 안 하고 나중에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다른 일을 평생 할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아내를 내가 선택했다. 그냥 불같이 밀어붙였다. 나는 밀당이라는 단어가 없다. 내 인생에서 밀거나 당기기, 2개였다. 그래서 아내는 나와 사는 것을 가끔 후회한다. 그것은 별로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 당시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내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 열망은 마찬가지다. 아이도 2명 있고 싶었다. 그래서 둘째도 내가 과감히 결정해서 추진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들이 나왔다. 여태껏 많은 부분 양보한 부분도 많지만 결정적인 결정은 내가 했었다. 

나는 그 책임을 져야만 한다. 


한 주제로 기록을 하려다 너무나도 많이 적은 느낌이다. 정리가 되질 않는다. 가끔 내가 이런 행동을 한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이 시간이 정말 소중히 여기면서 뭔가 가치 있는 일을 생각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에 기록을 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뉴진스 라이브(240911). 알수록 충격적인 사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