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by 로라

마이크 타이슨이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맞는 말이나 너무도 저급하면서도 직관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나도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퇴직을 맞이했다. 촘촘히 짜인 그물처럼 해야 할 일, 못해 본 일 중 시도할 일, 정서적 만족감을 위해서 해야 할 일, 소소한 돈벌이를 위해서 할 일 등을 제법 그물처럼 짜 두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퇴직을 35년 만에 끝낸 나는 마이크 타이슨이 한 말 그대로 아니 더 심하게 처맞았다. 심하게 맞은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잽 하나에 정말 나자빠진 것이다.


한 가지 일을 35년 하고 퇴직한 나는 허허벌판에서 쌩바람을 맞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 난파된 것 같이 숨을 쉬기도 힘이 들었다. 이런 주제에 무슨 퇴직을 준비하고 이것저것 계획을 짰단 말인가?

그럴싸한 계획을 실행해 보기도 전에 나는 "침몰"그 자체였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내가 직장에서 허우적거릴 시간에 우아하게 나도 햇볕을 받으면서 공원을 커피 한잔 들고 걷고

동네 아줌마들이랑 브런치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상상도 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돈을 쓸 것이며

나의 몸을 잘 돌볼 것이고

친구들이랑 놀러도 자주 가리라고 생각을 하고 살았다.


퇴직이라는 링에 올라보라.

퇴직이라는 사각링에 올라서 발걸음도 한 번 떼어보지 못하고 침몰한 나는 더 이상 아무 존재가치도 못 느끼는 쭈글 퇴린이가 되어 있었다.

한동안은 아침에 일어나질 못했다. 점점 풀떼죽처럼 늘어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무엇인가? 젊은 날 자살해 버리는 연예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고

몸에는 살이 없으나 배만 늘어난 할머니들이 34인치 고무줄 바지를 입는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부스스하게 산발한 머리로 아무런 불편 없이 편의점에 불쑥 들어가는 사람들도 이해가 되었고

성형외과를 중독처럼 순례하는 젊음을 잃지 않고 싶어 발악하는 여자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은 가족들은 나에게 말했다.

그동안 치열하게 살았으니 하고 싶은데로 "푹 쉬어라~ 푹 쉬어라~ 매일 푹 쉬어라~"라는 소리를 달고 살았다.

젊은 시절 엄마에게 맨날 가만히 있어라~ 쉬어라~한 나 자신의 모습이 클로즈 업되어서 견딜 수 없고 또 슬퍼서 점점 감정을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일도 생겼다.

퇴직하면 밥도 안 해 먹을 거야~ 나 혼자 우아하게 브런치 가야지.

그런 맹세는 한마디로 개맹세가 되었다. 점점 입맛을 잃고 집에서 남아있는 나물을 먹어치워야 했고

나랑 눈 마주치고 이야기해 줄 상대도 없었다. 직장은 떠나니 그것으로 관계는 끝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정성껏 준비해서 보내드렸던 선배님들이 생각이 나고

나는 열심히 보내드렸지만 쌩하게 인사만 하고 나온 나는 약간의 서운함이 솔직히 너무 많이 들었다.

저녁에 가족이 오면 그때서야 말을 막 쏟아붓는 시간이 많아졌다.

맛있던 배달 음식도 외식음식도 맛을 잃어갔다.


어느새 젊은 날 엄마의 모습으로 내가 투영되기 시작했다.

엄마가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꽃분홍 옷을 사 입는 것을 보고 이해를 못 했고

나이가 75세일 때 김치냉장고를 사고 싶어 할 때 "나는 이 나이에도 뭐가 사고 싶지 않은데 엄마는 그 나이에 뭐가 사고 싶어?"라고 한 망언이 자꾸 머릿속을 떠다니면서 미칠 것 같았다.

난 엄마는 고기 대가리만 좋아하는 줄 알았고

엄마가 노래 부르면 어색하고 어찌 보면 점잖치 못하고 주책맞게 느껴지기도 했던 시절을 보냈다. 엄마는 그저 맛있는 밥 차려주고 싼 것 찾아서 헤매고 우리가 직장 다녀오면 어느새 빨래해 주고 챙겨주고 오직 나밖에 모르는 줄 알았다.

엄마도 소녀출신이고 소녀감성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 엄마가 세상을 달리 한 후 난 엄마처럼 살지 않기가 나의 목표가 되었다.

엄마를 안타까워하고 고생만 한 불쌍한 엄마로 기억되지않을 거라고 목표를 정하고 아이들과 남편에게도 공표를 했다. 다들 그러라고 했다. 엄마는 잘할 것 같다고도 했다.

심지어 남편은 나에게 "이기적으로 쉬어보라고"격려 아닌 격려를 해주었다.


아뿔싸~

퇴린이가 되고 나니 내 모습은 스스로 우리에 기어들어가는 고양이처럼 자꾸 좁은 우리로 내가 기어들어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프다고 했는데 다 건성으로 "그래? 병원 가봐~" 이 말 외에는 아무 말도 없는 가족들이 살짝 섭섭했으나 나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보면 이해가 되었다.

엄마는 그때 오십견으로 그리 아팠을 때 갱년기로 고독했을 때도 젊은 나는 진짜 몰랐고 모른 척했다.


눈을 떴다.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이런 다고 젊은 날이 되돌아오지도 않고

스스로 자기 스케줄로 인생을 살아가는 가족들이 나는 매일 달래주고 이야기해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벌떡 일어서자. 그리고 잘 늙어가자. 인생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젊은 날 경제적인 이유로, 육아와 직장문제로, 사회적 관념으로 어떤 이유에서든 해보지 못하고

참고 살아왔던 나의 얽힌 로망들을 실타래처럼 살살 풀어가보자고 생각했다.


이제 "사각 링" 위에 다시 섰다.

너무 처맞아서 허우적거렸지만, 링가이드에 등을 대고 팔을 벌리고 씩씩 거리면서 숨을 고르고 다시 시작하는 권투선수처럼 숨을 고르고 다시 글로브를 가볍게 탁탁 튕기면서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이 계획은 원대하지도 않고 미미하며

거창하지도 않고 소소하며

끝까지 해내야 하는 결심이 아닌 단발성이며

시작은 미미하나 끝도 미미할 것이며

누구의 눈치와 제약 없이 오직 내 마음이라는 길을 따를 것이며

그냥 우당탕탕 놀아보듯이 살아보기로 했다.


생물학적 나이는 많으나 퇴직은 처음이니 나는 쌩초보 퇴린이일뿐이다.

그 와중에도 경제적인 것을 조절해 가면서 가족들 눈치도 살짝 봐가면서 칼자루를 다시 움켜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