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찾았다. 배를 깔고 바닥에 한참 엎드린 보람이 있었다. 가로로 길게 놓인 수납장에 구겨 넣었던 어깨를 꺼내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오른쪽 소매를 당겨 플라스틱 표면을 닦았다. 그러자 ‘아카데미 3개 부문을 수상한 1999년 최고의 감동!’이라고 적힌 글자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주인공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이 영화는 나의 인생 영화 중 하나다. 그래서 극장에서 보고나오면서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 시절에 큰맘 먹고 VCD를 샀었다. 워낙 오래전이라 버린 줄 알았는데, 수용소에서 숨바꼭질하던 꼬마처럼 어둡고 깊숙한 곳에 고요히 남아있었다. 과연 25년 된 영상이 제대로 나올지 궁금했다. 집에 CD 플레이어가 없어 확인할 수 없었는데 교실 컴퓨터에 DVD 플레이어가 있었다.
알라딘이 지니를 부르는 마음으로 은빛 면에 입김을 불어 천으로 조심스레 닦았다. 그리고 영화 CD를 넣었다. 위잉하고 빠르게 회전하는 소리가 나더니 화면이 떠올랐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화질은 실망스러웠다. 점묘화 같은 영상은 요즘 TV 화면과 배율도 달라 양 끝이 비어 있었다. 가뜩이나 무거운 내용이라 아이들 취향이 아닐 텐데, 해상도까지 낮으니, 반응이 시들할 것 같았다.
요즘 사회 시간에 일제강점기를 공부하고 있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 통치로 고통받던 시절에, 독일로부터 유대인들도 비슷한 처지였으니 말이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고 운을 띄우니, 아이들은 모두 나를 쳐다봤다. 뚜껑이 깨진 낡은 VCD를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그게 뭐냐고 했다. 옛날에는 OTT 서비스가 없어서, 비디오테이프나 CD로 영화를 봤었다고 설명했다. 몇몇은 할머니 댁에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이 영화는 오래되기도 했지만, 수준이 높아서 너희에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이야.” 그러자 아이들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선생님,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 수준을 모르세요? 어서 보여주세요!”
예상했던 반응에 나는 못 이긴 척 CD를 넣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과 히틀러, 유대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후, 다 같이 영화를 감상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틀어주니 거친 화질과 낯선 이탈리아어에 아이들은 놀랐다. 하지만 이 자체가 역사 체험이라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불법 음반과 비디오를 추방하자는 공익광고도 건너뛰지 말라며 꼼꼼히 시청했다.
아이들은 불을 끄고 블라인드를 내리더니, 점차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려고 내 책상 주위로 모여들었다. 의자를 끌어 친구와 무릎 담요를 같이 덮기도 하고,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에게 기대기도 했다. 저마다 시선의 각도는 달랐지만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영화를 보고, 나는 그런 아이들을 바라봤다. 오래전에 내가 웃었던 그 장면에서 아이들도 웃었다. 남자 주인공인 로베르토 베니니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며 아이들은 천재라고 했다. 나도 예전에 똑같이 생각했었다. 그가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감독도 했다는 나의 말에 “저 아저씨, 진짜 천재가 맞네”라고 입을 모았다. 반쯤 봤을 때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영화를 멈추고, 모두 아쉬워하며 가방을 쌌다.
아이들은 등교하자마자 어서 뒷부분을 보여달라고 했다. 내가 수학 진도부터 나가야 한다고 하자, 내일 수학을 2시간 해도 좋으니 오늘 꼭 보여달라고 했다(이럴 땐 한통속이 된다. 물론 다음 날 한마음으로 후회했다). 우리는 다시 어제처럼 모여 영화를 봤다. 주인공이 독일군을 피해 수용소 곳곳을 숨어 다니는 장면에서는 모두 숨죽여 지켜봤다. 그러다 적막 속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질 땐 함께 허탈한 한숨을 지었다. 어린 아들이 무사히 살아남아 엄마를 만나자, 아이들은 안심했다. 영화가 끝나자, 훌쩍이는 아이들도 있었다.이렇게 슬픈데 제목이 왜 ‘인생은 아름다워’인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아이들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2024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은 이런 수상 소감을 남겼다.
“제가 여덟 살이던 날을 기억합니다. 오후 주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리자 20여 명의 아이들이 건물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처마 밑에 또 다른 군중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제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이 모든 사람들,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나’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요. 저와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 이 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에 촉촉이 젖은 비를 그들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일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함박눈이 내린 날, 교과서를 펼쳐둔 채 우리는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었다. 쌓인 눈을 함께 밟으며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개를 뒤로 젖혀 눈 내리는 하늘을 함께 올려다보기만 해도 그저 좋았다. 한참을 놀고 난 후, 현관에서 친구의 머리와 등에 쌓인 눈을 털어주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일인칭인 ‘나’가 되어주었다. 그 속에는 어릴 적 ‘나’도 있었다. 영화를 보는 아이들 틈에도 살을 맞댄 채 앉아있는 오래 전의 내가 보였다. 세월을 거슬러 존재하는 수많은 일인칭 시점을 아이들과 때때로 경험한다.
서로 다른 파장을 가진 각자가 어느 순간 동시에 교차하는 순간이 있다. 그 찰나에 우리는 서로에게 이롭다. 그리고 경이롭다. 인생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