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삶이란, 반드시 의미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걸까? 우리는 언제부터 무언가를 '하는 시간'만 을 귀하게 여기고, '그저 존재하는 시간'은 비효율적이고 낭비라고 생각해왔을까?.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그런 질문 앞에서 아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해주는 책이었다. 경비원이 되어 그림 앞에 서 있는 일을 택한 한 남 자의 이야기는, 오히려 그림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그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갔다.
작가 패트릭 브링리는 형의 죽음을 겪고, 삶의 리듬을 바꾸기 위해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다. 도전과 나아감이 아니라, 일종의 낭비와 멈춤이었다. 매일 수천 명의 관람객이 지나가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그는 말 그대로 '멈춰있는 사람'이 된다. 처음엔 도망치는 것으로만 보였던 이 선택은, 점차 그에게 애도와 회복의 시간이 된다. 그림 앞에 서 있는 반복적인 시간, 변화도 성과도 없는 하루는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어 보이지만, 그 시간들 속 에서 그는 그를 다시 조각하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가 서 있었던 자리를 떠올린다. 명화들 곁에서, 그러나 조명받지 않는 구석에서, 그는 지키고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다. 그 자리는 작가에게 '의미없고 낭비같았던 그 시간들이 뒤를 돌아보니 찬란한 자산'이 된다. 그의 삶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았다. 나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들. 커피를 마시다 말고 멍하니 창밖을 보던 아침,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의 옆에 앉아 있던 밤. 그 시간들은 어떤 결과도 남기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때 나는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책이 조용히 말하는 것 같았다. 반드시 뭔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말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존재, 존재만으로 충분했던 자리. 그건 그저 그림을 바라보는 경비원의 하루처럼 평범한 일이지만, 동시에 절대 사소하지 않은 일이다. 시간의 효율과 무엇을 하는 시간만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저 머무르고 존재하며 낭비하는 시간들이 우리를 우리답게 살아가도록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정말 깊이 느꼈던 건, 그 ‘머무름’이 단지 도망이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실이나 번아웃을 겪으면 '쉬어야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를 모른다. 작가는 물리적인 방식으로 머무름을 배운다. 그저 ‘하루 8시간 동안 같은 그림 앞에 선다’는 방식으로. 어떤 예술도 설명하려 들지 않고, 그저 바라보며 시간을 통과하게 두는 태도. 그건 애도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요란한 세상에 휘둘리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감각이 아닐까?
책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느리게 보기’의 태도도 깊게 남았다. 그는 오랜 시간 같은 그림을 바라보며 전에는 그림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나도 그렇게 한 가지를 오래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늘 다음 단계, 다음 스케줄, 다음 성과를 향해 달려가느라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을 본다는 감각조차 희미해졌던 것 같다. 어쩌면 이 책은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단순한 하루를 통해 말해주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미술관 이야기지만, 동시에 미술작품을 우리가 그저 바라보는 것처럼 단순히 그 작품의 예술성을 감사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 잠시동안은 미술품을 보듯이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함을 내게 이야기해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자리.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지만, 결국 나를 지켜주는 시간들.
책장을 덮고도 오래 남는 잔상은 단순했다. 나도 언젠가는 저 자리에 서있는 시간이 있겠구나. 나는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뭔가를 더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여기에 머무를 수 있는 용기’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