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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맹 Sep 05. 2024

스칸디아모스의 뿌리

배우자 선택의 기준 - 화목한 가정 (2)

남편을 만나기 전 몇 명의 사람을 만났지만 신기하게도 '부모님의 사이가 좋은 가정'을 보기가 힘들었다. 연애 때 그게 뭐가 문제인가 싶겠지만, 가족중심적인 나에게는 중요했다. '가족'이란 주제 앞에서 서로 벽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종교문제로 부딪치는 연인들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족과의 시간이 1순위가 될 때가 많았다. 언젠가 상대방도 그 속에 녹아들 수 있길 바랐다. 본인의 가정이 불안하다면 우리가족을 통해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얼마나 오지랖 넓은 생각이었는지 결혼을 하면서 깨달았다.




남편은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맞다 아니다가 확실하며, 자기자랑을 당당하게  그런 사람이었다. 나와 반대되는 성향이라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몇 번의 거절과 구애가 오가던 중 우연히 남편의 카카오스토리에서 한 여자의 흔적을 보게 되었다. 그 문체에 이끌려 그녀가 쓴 글을 정독했다. 일상 이야기를 시처럼 쓰는 재주가 있었다. 나는 글을 통해 글쓴이가 가진 삶의 태도를 볼 수 있다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냄새 물씬 나는 그 글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과 사귀기 전, 시어머니에게 먼저 반했었다.


남편은 엄마와 자주 통화를 했는데 툴툴거려도 살가운 아들에 가까웠다. 건설업을 하는 아버지와 교육자의 길을 걷다 주부로 오랜 시간을 보낸 어머니, 유학을 떠난 11살 차이 나는 여동생까지. 연애를 하면서 그의 가족이 더욱 궁금해졌다. 남편에게 전해 듣는 말만으로도 그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내 나이 25살, 만난 지 1년이 되어갈 무렵 결혼을 결심했다. 드디어 기대하던 그의 부모님을 만나는 순간이 찾아왔다.


남편을 통해 시어머니가 백합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난생처음 꽃을 사보는 터라 가게에 백합이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빈손으로 갈 수는 없어 그 당시 막 유행하기 시작한 스칸디아모스를 추천받아 구매했다. 스칸디아모스는 북유럽에서 온 천연이끼인데 공기정화 기능도 있고 색도 다채롭고 예뻐서 인기가 많았다. 가격도 웬만한 꽃다발만큼 비쌌다.


시어머니가 추천한 카페도 유럽풍의 엔틱한 곳이었다. 먼저 도착해서 화분을 어디 둘지 우왕좌왕, 긴장해서 화장실도 마렵고, 자리는 어디로 앉아야 할지 정신이 혼미해졌다. 가게 입구의 풍경소리가 짤랑 울리고 시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남편은 덩치가 있는 편인데, 시아버지가 왜소해서 놀랐다. 시어머니는 보통의 체격이었는데 두 분이 서있으니 시어머니의 존재감이 너무 커보였다.


시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아버지로 말수도 없고 표정변화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시어머니가 이 자리를 주도했는데, 글에서 느낀 친근감보다는 여장부의 포스가 느껴졌다. 어색한 분위기에 선물만큼 좋은 것도 없다던데, 나는 바닥에 두었던 화분을 쭈뼛거리며 전달했다. 시어머니가 화분을 요리조리 보더니 탁자 위에 올렸다. 그리고 이끼를 움켜쥐고 벌컥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탁자 위에 모래가 우수수 떨어졌다. 남편이 "엄마!!" 하며 소리를 쳤다. 드라마에서 뺨 때리기, 물 뿌리기, 봉투 던지기 등 결혼을 반대하는 다양한 장면을 봤는데 이것도 일종의 그런 의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식물이라 뿌리가 있는 건지 궁금해서."


시어머니가 멋쩍게 말했다. 시아버지는 이 상황이 낯설지 않은 듯 가만히 있었다. 상황수습이 끝나고 호구조사가 이어졌다. 대부분 부모님에 대한 질문이었다. 본관, 출생지, 띠, 학력, 직업, 형제자매 등 생각보다 구체적이라 놀랐다. 초등학교 시절, 설문지에 주거형태나 자동차 소유 유무 같은 걸 채워 넣던 그때 그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창의적인 대답이 필요한  아니었지만 식은땀이 계속 났다. 질문이 끝난  남편 집안의 소개가 이어졌다. 두 분 다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과 경북 예천에 집성촌이 있다는 것, 남편이 학창시절 대단했다는 것까지. 두 분의 얼굴에 뿌듯함이 보였다.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지만 헤어질 시간은 찾아왔다.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침묵을 유지했다. 남편도 내 눈치를 보며 조용했고 한참을 말없이 고속도로를 달렸다. 가족마다 스타일이 다른 거라고 생각하면 오늘 만남이 문제 될 건 없었다. 문제는 결혼 후였다. 내가 과연 그들과 섞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엄마가 가서 예쁘게 보이라며 원피스를 사줬는데 그 마음이 고맙고 미안하고, 그냥 우리가족이 너무 보고 싶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결혼준비가 시작되었다.


**스칸디아모스는 꽤 오래 시부모님댁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며 존재감을 뽐냈다.

2016, 시부모님댁으로 간 스칸디아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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