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와 다툰 적이 없을 만큼 평화주의자다. 부딪치는 걸 싫어하다 보니 애당초 친구를 사귈 때 가려서 사귀는 편이다. 내 친구들은 서로를 지적하거나 불필요한 기싸움을 하지 않는 해맑고 순둥한 성격에 가까웠다. 나는 나와 성격이 반대되는 친구가 다가오면 적당한 선을 두고 지낸다. 이건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갖게 된 나의 자기보호 방법 중 하나였다.
우리부부는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부딪친 적이 없었다. 둘 다 결혼식은 형식에 불과하다 생각했고, 그것보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웨딩박람회에서 스드메, 신혼여행, 결혼반지까지 모두 계약을 했다. 드레스투어를 1곳에서 3벌 입고 바로 결정했다면 말 다한 거 아닐까. 그래도 결혼식장을 고를 때 내가 주장한 게 딱 2가지가 있었는데, 기둥 없이 탁 트인 곳 & 깜짝 영상편지 띄우기였다. 남편도 동의해서 영상편지 작업을 해주는 스튜디오까지 예약을 했다.
그런데 결혼식장을 알아볼 새도 없이 농심호텔 연회장을 대관하게 되었다. 시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저렴하게 빌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서울에 있고 결혼식은 부산에서 진행되는 거라 식장을 보지도 못한 채 가계약을 하게 되었다. 본계약 및 세부조정을 하기 위해 내려가서야 식장을 볼 수 있었다. 기둥이 있고 정면에 스크린이 없는, 유일하게 바란 2가지가 없는 곳이었다. 남편이 시부모님과 언성을 높이며 부딪쳤지만 결국, 어차피 결혼식은 부모님을 위한 거라며 서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접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며 고부갈등도 아닌 남편과 시어머니의 다툼이 계속되었다. 한복도 맞춤제작과 대여를 두고 두 사람의 대립이 첨예했다. 시어머니는 원단만 가져와서 가방이나 옷, 액세서리를 만들 정도로 섬세한 분이다. 물건을 보는 감각이 좋은 편인데, 한복 또한 천연염색을 입혀 맞춤제작을 하자는 의견이었다. 남편은 가격도 부담스럽고 할 거면 양가 어머니만 맞추라는 의견이었다. 엄마는 본인도 한복은 대여하고 싶다고 했지만 두 사람이 부딪치는 걸 보며 그냥 맞춤제작을 하겠다고 했다. 부산 진시장에서 원단을 둘러보면서도 두 사람은 끝까지 싸웠다. 그 목소리에 눌려 우리모녀는 조용히 뒤꽁무니만 따라다녔다.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넋이 나간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이후 예물, 예단에 관한 대화를 하기 위해 양가 어머니가 따로 만남을 가졌다. 시어머니가 먼저 엄마에게 만남을 제안했다. 나는 아직도 그날 두 분의 대화를 알지 못한다. 애당초 남편과 예물, 예단은 하지 않기로 했는데 어떤 대화를 위해 만났을까? 그날 저녁, 휴대폰 너머로 엄마의 흐느끼는 목소리를 들었다.
"엄마가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해."
"네 성격과 다른 집안이라 우리 딸이 상처받을 일이 많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엄마의 눈물이 어디서 흘러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시부모님을 처음 만나며 느낀 감정을 엄마도 똑같이 느꼈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어릴 땐 아빠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커가면서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엄마를 닮아갔다. 특히, 친구를 사귀는 걸 보면 참 똑같았다. 엄마의 모임에서는 남편자랑, 자식자랑이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서로 형편도 다르거니와 불필요한 기싸움을 하지 않아 좋다고 했다. 그리고 덤벙거리는 것도, 유독 떡볶이를 맛없게 만드는 것도, 내향인이지만 인싸운동을 배우는 것도 같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결혼생활까지도 엄마를 참 많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