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굴 만나든 적당히 잘 어울리고 둥글게 잘 지내려는 편이다. 그런데 가끔가다 나를 예리하게 본 사람들에게 '고집 있어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는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흠칫하는데, 실제로 나는 똥고집이 있다. 예를들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급발진을 할 때가 있다. 이러한 성격이 때론 양날의 검이 된다. 의로운 사람이 되기도 했다가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옛날에는 '고집'이란 단어를 부정적으로만 봤는데, 스스로를 인정하고 나니 그것또한 쿨하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파혼선언 후 남편이 자취방으로 달려왔다.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는 내가 나올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 둘 사이에는 문제가 없었으니 그의 입장에선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시댁과도 항상 남편이 부딪쳤고 나와는 아무 갈등도 없었다. 양가 부모님이 계시고 화목한 가정이면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온전한 가족끼리 하나가 된다는 게 더 어려운 거 같았다. 그날 남편과 긴 대화를 했다. 사실 대화보다 내 요구를 들어주는 것에 가까웠는데,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단 내 편을 들 것 이게 핵심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상견례가 진행되었다. 양가 가족이 마주 앉아있는 걸 보는데, 왠지 모르게 전의가 불타올랐다. 시아버지는 좋은 날이라며 조니워커 블루라벨을 가져왔다. 아빠는 막걸리파에다 양주를 제대로 마셔본 적도 없었다. 아빠와 시아버지의 나이차이는 10살이었다. 어색함 대신 술잔을 주고받다 보니 얼큰하게 취한 두 아버지 위주로 상견례가 돌아갔다. 시아버지는 평소에 조용하다가도 술만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편이었다. 대화 중 대부분이 본인에 대한 자랑이었다. 어쨌든 상견례는 생각보다 별게 없었다. 그러던 중 시아버지가 나를 향해 말했다.
"시집오거든 네 시엄마한테 많이 배워라"
순간, 내 입에서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이 튀어나갔다.
"저희 부모님한테 배울 만큼 배웠는데요?"
사실 저 말을 뱉은 후에도 뭘 잘못한지 몰랐다. 갑자기 장내가 싸늘해졌다. 부모님이 과장되게 웃으며 상황을 무마시켰다. 다행히 시아버지는 술에 취해 내 말을 한 귀로 흘려 들었다. 다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대화가 오갔고 상견례는 무사히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부모님한테 많이 혼났다. 그때서야 내가 얼마나 급발진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남편과는 그날에 대해 딱히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그렇게 조용히 넘어갔다. 그러다 결혼한 지5년 정도 지났을 무렵 그가 뜬금없이 그날 일을 꺼냈다. 이제는 오래 지나서 편하게 말한다며 한 마디를 했다.
"너 그때 진짜 돌아인 줄 알았다."
시부모님은 그날 내 발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거기서 누구든 한 마디라도 더 보탰다면 쌓인 게 많았던 나는 그 자리를 파국으로 이끌었으리라. 그런 점에서 역시 어른은 어른이구나 싶었다.
결혼식장에서 양가 어머니의 한복이 예쁘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대여샵에서 봤던 다른 한복들에 비해 색상도 파스텔톤이라 우아하고 예뻤다. 결혼식 내내 웃고 있다가 폐백실에서 나, 엄마, 시어머니가 통곡을 했다. 미우나 고우나 우린 이제 가족이 되었다. 평탄하지 못하면 어떠리 심심하지 않고 좋겠네! 라고 생각하며 내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