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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윱맹 Sep 14. 2024

생일 알림을 삭제하다

결혼하고 맞이한 시어머니의 첫 생신 (1)

나는 SNS는 물론 카카오톡에도 생일 알림을 꺼놨다. 이번 생일에도 뒤늦은 축하를 몇 명에게 받았다. 그들의 잘못이 아닌데 생일을 잊어서 미안하다며 연락이 왔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생일이 부담스러웠다. 돌아가면서 생일을 챙기는 또래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갖고 싶은 게 없는데 뭐라도 꼭 알려줘야 했고 반대로 마음이나 정성 없이 의무적인 선물을 돌려주는 문화가 싫었다. 정확히는 그런 과정에서 서로에게 섭섭해하던 친구들 사이의 불화가 보기 불편했다. 성인이 되고부터 이런 감정에서 조금씩 해방되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내 생일을 부모님께 감사인사를 드리는 날로 정했다.




결혼 후 사회생활도 잘 풀리기 시작했다. 영화업계는 기혼자도 드물지만 20대 유부녀는 볼 수조차 없었다. 그러다 보니 미팅을 나가면 관심과 응원을 한 몸에 받았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새벽야근도 밥 먹듯 하던 시기였다. 그래도 힘든 것보다 뿌듯하고 재밌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나의 사회생활 황금기였다.


8월부터 시아버지 생신, 9월 친정아빠 생신, 10월 시어머니 생신, 11월 친정엄마 생신이 쭉 이어졌다.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이벤트라 긴장이 되었다. 시아버지 생신 때는 일정이 맞아 부산에 내려가서 축하도 하고 용돈도 드렸다. 그리고 친정아빠 생신은 남편이 택배로 선물을 보내고 전화로 축하를 전했다. 그다음 시어머니 차례가 되었다.


그맘때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아 단독으로 맡은 업무도 생겼다. 마침 시어머니 생신날이 그간 해온 업무의 유종의 미를 거두는 날이었다. 정말 하루가 일로 시작해서 일로 끝나던 나날들이었다.


"내일 엄마 생신이니까 아침에 전화 한 통만 부탁할게"


남편이 그런 내 상태를 파악하고 생신 전날 알림을 넣어주었다. 퇴근을 제시간에 못하니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것보다 카톡으로 대화를 하는 게 일상이었다. 남편은 그 시기를, 마치 주말부부 같았다고 표현했다.


아침부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아 출근길부터 업무를 붙들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점심시간이 되었고, 나는 화장실도 밥도 거른 채 일만 몰두했다. 그때 남편이 또 시어머니 생신을 챙겨달라 카톡을 보내왔다. '이 일만 끝내고 해야지'란 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책상 위에 엎어두었다. 어느새 저녁시간이 되었고 오늘 있는 폐막식만 끝내면 정말 업무종료였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강남에서 광화문으로 서둘러 이동을 했다. 그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한숨소리가 길게 들렸다.


"아직도 엄마한테 연락 안 드린 거야?"


머리를 망치로 맞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저녁 7시가 지나서야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리게 되었다. 신호음이 가다가 뚝 끊겼다. 전화가 잘못되었나 싶어 다시 걸어도 똑같이 뚝 끊겼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남편에게 도움을 구해봤지만 본인도 이젠 모르겠으니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이동하는 지하철에서 장문으로 카톡을 써 내려갔다. 생신인 걸 알고 있었는데 오늘 중요한 업무가 있어 이제야 시간이 생겼다고 죄송하다고 카톡을 보냈다. '1'이 사라졌지만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그때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폐막식은 서로 얼굴을 보며 고생했다고 토닥이는 자리임과 동시에 다음 일을 따낼 수도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팀장님도 같이 갔지만 실무를 나 혼자 했다 보니 내가 얼굴을 비추는 게 중요했다. 하루종일 굶다가 드디어 음식을 한입 먹었는데 체할 것처럼 속이 안 좋았다. 내 표정이 계속 좋지 않자 결국 상황을 알게 된 팀장님이 날 밖으로 내보냈다. 부재중 전화만 쌓여가던 찰나 드디어 시어머니에게 카톡답장이 왔다.


[요약] 다른 것도 아니고 결혼 후 첫 생일인데 그 전화 한 통을 못 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제는 축하받고 싶지 않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누군가가 나에게 일방적으로 화가 난 것도 낯설었고, 어른과 부딪치는 상황도 부모님 외에는 처음이었다. 사과를 안 받아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전화로 해결하고 싶었지만 끝내 통화연결이 되지 않았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팀장님의 얼굴도 아른거렸다. 어른이면 정도는 이해해줘야 하는 아니야? 나도 마음이 점점 옹졸해졌다.


[요약]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제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다 설명드렸잖아요.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이렇게 얘기하시니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네가 잘못한 건 맞지 않냐며 시어머니 편만 드는 남편과도 크게 싸웠다. 폐막식은 즐기지도 못하고 밤 11시까지 멍하니 있다가 퇴근을 했다. 개인사로 회사에도 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더 괴로웠다. 남편과 싸우면서 오늘 안 들어가겠다고 말해버려서 갈 곳도 없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반성도 했다가 분노도 찼다가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결국 자정이 지난 시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을 잃은 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 계속 -

2019, 시어머니 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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