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가을, 우리부부의 주선으로 내 대학동기와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이 결혼을 했다. 사정이 생겨 나 혼자 그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 시어머니도 엄마들끼리 계모임을 하는 사이라며 결혼식에 참석을 했다. 나는 오랜만에 대학동기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있었다. 일행이 따로 있으니 시어머니와도 인사만 나누고 헤어질 요량이었다. 신부대기실에서 동기들과 한창 사진을 찍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다가왔다. 나는 동기들에게 시어머니를 소개했다. 소개라고 해봤자 '우리 시어머니셔'가 끝이었지만 말이다. 인사도 했으니 오늘 만남은 끝이구나 생각했다. 갑자기 시어머니가 내 손을 이끌고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던 중이라 퍽 당황스러웠다. 그때 홀 안에 앉아있는 아주머니들 무리가 보였다. 시어머니가 나를 소개했다.
"아, 여기 우리 며느리. 결혼식 때보다 살이 좀 쪘지? 사회생활이 힘들어서 그래."
"인사하게 마스크 좀 내리고"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시어머니가 자문자답을 했다. 나는 마스크를 벗고 인사를 했다. 마스크를 중간에 벗으려니참 민망했다. 마기꾼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아주머니들이 나를 위아래로 스캔했다.
"뭐 보기 좋구먼"
"그래도 예쁘기만 하네!"
대부분 나를 옹호하는 말이었다. 그래도 꼭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거 같은 기분이었다. 시어머니의 저 말이 가벼운 농담처럼 들렸다면 좋았겠지만 실제로 내 사회생활은 힘들었고 살도 꽤 많이 쪘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어냈다.
"인사 다 했으면 친구들한테 가보렴"
시어머니는 내게 볼일이 끝났다는 듯 가보라고 했다. 내가 맺어준 커플이 결혼까지 하게 되는 일이 평생 또 있을까? 그만큼 이 결혼식은 나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시어머니의 무리가 신경 쓰였고, 결혼식 내용은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른 이 자리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오늘날까지도 종종 시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한다. 어떤 돈이냐면, 시어머니가 사라고 해서 산 물건들에 대한 값이다. 시작은 비싸서 안 하겠다고 한 맞춤제작 한복이었다. 다음으로 칼은 좋은 걸 사야 한다고 해서 컷코에서 칼세트를 샀고, 침대도 좋은 걸 써야 한다고 해서 템퍼를 구매했다. 그 당시 내 눈은 [오늘의집]이 최고였는데 시어머니의 기준으로는 거기서 아무것도 살 수가 없었다. 그때는 잘 몰라서 고분고분 말을 들었지만 나는 앞으로도 컷코보다 비싼 칼을, 템퍼보다 비싼 침대를 살 생각이 없다.
그 당시 신혼집을 떠올려보면 곳곳이 시어머니의 취향으로 가득했다. 포트메리온 그릇과 시계, 소파패드, 쿠션커버, 옷, 화장품 등 끝없이 물건을 주셨다. 초반에는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감사했기에 곧잘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도 취향이라는 게 생겼고, 시어머니의 물건을 거절하는 일도 늘어갔다. 그때마다 '이게 얼마나 좋은 건데 갖기 싫으면 말아라'하는 시어머니의 말투에 절로 눈치가 보였다. 결국, 거절한 물건도 언젠가는 우리집에 오게 되었다. 그렇게 거절을 거절당하며 물건이 쌓여갔다.
시어머니는 요리를 잘했고 그걸 남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좋아했다. 남편은 결혼 전 자취방에 시어머니 음식을 들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랬던 시어머니가 결혼 후부터 신혼집으로 꾸준히 반찬을 보내왔다. 택배상자 안에는 테트리스한 것처럼 반찬이 빼곡했다. 어쩌다 공간이 남으면 마트에서 싸서 샀다는 식재료나 생필품 같은 게 들어있기도 했다. 초반에는 최대한 챙겨 먹으려 노력했는데, 잦은 야근으로 그것마저 힘에 부쳤다. 심지어 남편은 그때그때 요리를 해 먹는 걸 좋아해서 반찬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이스박스 한가득 채워온 반찬을 정리하는 일도, 상한 반찬을 처리하는 일도 항상 내 몫이었다. 그걸로 내가 남편에게 화를 내는 날이면, 남편은 그 화를 시어머니에게 풀었다. 그럼 시어머니는 속상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했다.
"우리아들이 원래 저렇진 않았는데···."
"먹다가 상하면 버리면 되는데 뭐가 문제니?"
이런 일이 반복되어도 한순간뿐이었다. 사이가 다시 좋아지면 시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또 반찬을 보내왔다. 특히 남편이 좋아했다며 우엉조림을 자주 보내주셨는데, 놀랍게도 남편은 그 반찬을 좋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이 또한 남편이 화를 내며 얘기하고서야 받지 않게 되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은 반찬전쟁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초반보다는 빈도수가 줄었지만 말이다.
그날 친구의 결혼식에 나는 시어머니가 만들어준 옷을 입고 갔다. 내 스타일은 아니라 평소에 잘 못 입지만 적어도 시어머니를 만날 때는 입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내 마음을 그녀는 알까? 이제는 아무래도 괜찮다. 그간 나는 강해졌고 더는 상처받지않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