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취업을 위해 연고도 없는 서울로 왔다. 둘 다 예체능 계열이라 지방에서는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남편은 2011년에 1,600만 원의 연봉을 받고 방송업계 생활을 시작했고, 나는 2015년에 1,700만 원의 연봉을 받고 영화업계에 취업을 했다. 일하는 시간을 따져보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사회생활을 했다. 돈을 버는 족족 월세와 생활비로 나갔다. 이대로 가다간 돈 한 푼 못 모으고 계속 월세를 전전하며 살아갈 거 같았다. 그때 선택한 결혼은 나에게 있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2017년 결혼준비 당시, 남편과 내 연봉은 둘이 합쳐서 6,000만 원 정도였다. 남편에게는 3,000만 원 남짓한 적금이 있었지만 나는 겨우 긴급용 비상금만 갖고 있었다. 양가 부모님의 경제사정도좋지 않던 시기였다. 누구도 부추기지 않은 결혼이었기에 눈치가 보였다. 그때 양가 부모님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다. 결국 각자 부모님이 해주셨던 자취방의 보증금을 합친 7,500만 원을 지원받게 되었다. 그렇게 1억 조금 넘는 현금자산이 생겼다. 이 금액으로 결혼식 준비부터 신혼집, 그리고 그곳을 채울 가전, 가구까지 모두 마련해야 했다. 다른 것보다 서울에서 집을 구하는 게 참 어려웠다.
둘 다 아파트 생활이 익숙하다 보니 처음에는 멋모르고 아파트 매매를 고민했었다. 부천에 있는 연식이 꽤 된 30평대 아파트를 봤는데, 매매가가 3억 원이었다. 대단지에다 위치도 서울과 가까웠다. 남편이 저 집을 참 마음에 들어 했었다. 견적을 내봤는데 목 끝까지 대출을 받으면 매매도 가능했다. 다만 리모델링을 할 돈이 없었다. 최소 도배, 장판과 화장실 정도는 하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여유가 되지 않았다. 체리몰딩과 무늬벽지가 있는 그 집에서 신혼생활을 할 의욕이 안 생겼다. 그때 놓친 그 집은 3년 사이에 2억이나 더 올랐다. 남편이 가끔 이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죄인의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결국 내 고집에 맞춰 신축빌라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맘때 서울 양천구 19평 빌라전세가 2억 중반에 형성되어 있었다. 부동산 어플을 통해 집을 탐색했다. 그렇게 찾아간 부동산에서 젊은 여실장님을 만났다. 그분의 주도로 까치산역 주변인 강서구부터 양천구까지 몇몇 빌라를 돌았다. 초반에는 유흥가 근처나 집에 햇볕이 잘 안 들어오는 그런 집들을 봤다. '아, 진짜 서울에서는 이런 집 밖에 살 수가 없구나' 체념하려던 찰나 운명의 빌라를 만나게 되었다. 살짝 골목 안이지만 유흥가와 거리가 멀고 갓 입주를 시작한 빌라였다.
"생각하셨던 금액보다 살짝 더 비싸긴 한데 여기 계약한 사람들 만족도가 너무 높아서 모셔 와봤어요."
여실장님이 우리를 빌라 안에 마련된 분양사무소로 안내했다. 그곳의 직원과 여실장님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직원이 여기가 분양이 잘 돼서 다른 집은 다 나가고 딱 두 호실이 남아있다고 했다. 옥상을 편하게 쓸 수 있는 6층 꼭대기 집과 분양 사무소로 운영되고 있는 4층 집이 남아있었다. 비교해 보니 6층이 높아서 해도 더 잘 들어오고 앞도 덜 막혀있었다. 특히 탁 트인 옥상뷰는 높은 건물이 빼곡한 서울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이 집이다 싶었다.
이 빌라는 건물주와 건축주가 같았다. 건물주가 본인도 투자하려고 지은 건물이라 건축을 꼼꼼하게 잘했다고 했다. 어차피 안 팔리면 남은 집은 건물주가 가질 거라며, 우린 아쉬울 거 없어 뉘앙스로 말을 했다.
"그래도 분양 사무소를 빨리 닫을수록 우리는 인건비를 줄여서 좋고, 신혼부부는 첫출발을 좋은 곳에서 하면 좋으니까 금액 잘 조율해 줄게요. 어차피 마지막 집이라 크게 남겨먹을 생각도 없어요."
"전세로 할지 매매로 할지는 정했어요?"
우리는 전세랑 매매 둘 다 열려있다고 말했다. 직원이 그걸 듣더니 갑자기 속사포랩으로 줄 수 있는 혜택에 대해 줄줄이 나열했다. 원래 저 집은 19평에 전세 2억 5천 5백, 매매 2억 6천 5백인 곳이었다.
"이왕 살 거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매매해서 살아요. 여긴 입지도 좋아서 갖고 있으면 나쁠 것도 없어요. 오늘 바로 계약하면 매매가를 전세가랑 똑같이 맞춰줄게요. 필요하면 여기 분양 사무소에 있는 한샘 화장대도 새건데 가져가요."
그래도 매매라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아, 그래그래! 두 분 결혼 축하선물로 입주하고 나면 에어컨도 하나 넣어줄게요. 진짜 남는 거 없이 다 해줬다!"
6층이 탑층이라 천장을 건드릴 수가 없어서 전자동 빨래건조대가 빠져 있었다. 결혼 축하선물 겸 건조대를 대신해서 더 비싼 에어컨을 주겠다고 했다. '얼마나 인건비가 비싸면 이만큼이나 혜택을 주면서까지 팔려고 할까.' 그땐 이런 순수한 생각만 들었다.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라 정말 혹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이전에 보여준 빌라들보다 여러 면에서 우세했다. 동네분위기, 남향, 옥상까지 생각한 조건에 딱 맞는 곳이었다. 오늘 계약을 안 하면 이 조건으로 해주기는 어렵다고 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진행했다.그렇게 우리부부에게 자가 집이 생겼다. 작지만 방도 3개나 되는 아늑한 보금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