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회사대표님과 대화 중 PD수첩에 나온 전세사기 편에 대해 듣게 되었다. 500채가 넘는 집을 보유한 전국 개인 임대 사업자 1위, 진 씨의 이야기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를 해서 모르려야 모를 수 없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낯설지가 않았다.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꿈의 신혼집에 입주를 했다. 6층짜리 아담한 빌라였지만 교통, 생활편의시설 등 모든 게 갖춰진 곳이었다. 1인가구부터 노인가구, 신혼부부까지 다양한 구성원들이 살고 있었다. 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던데 서로 살갑지는 못해도 폐는 끼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옥상에서 캠핑, 텃밭, 장독대, 운동 등 각자가 원하는 걸 했지만 서로의 영역을 따지거나 싸우는 일도 없었다.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 살아보니 거기서 누린 평화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입주하고 얼마 후, 현관문에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반상회를 가질 예정이니 010-XXXX-XXXX로 연락 주세요.] 갓 입주한 빌라다 보니 청소나 하자보수 등 결정할 것들이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의 주도로 반상회가 열렸다. 따로 만날 공간이 없어 주차장에 서서 간단하게 대화를 나눴다. 열다섯 가구가 모여사는 빌라였는데 절반도 참석을 안 했다. 과반수도 안 되는데 이대로 회의가 가능한지 의문이었다.
"제가 이 빌라에 집을 몇 채 갖고 있어서 과반수는 충분히 넘으니까 그냥 회의하시죠."
한 중년남성이 상황을 정리하며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포스트잇을 붙인 장본인이었다. 본인이 임대업을 해서 빌라청소나 하자보수쪽에 빠삭하다며, 다들 바쁠 테니 자신이 일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잘 모르는 영역이다 보니 모두가 이견 없이 동의를 했다. 결국 업체에 대한 설명이나 비교견적 등도 없이 중년남성이 추진한 곳들로 일이 시행되었다. 이 건들이 결정된 이후부터는 반상회도 사라졌고 중년남성도 자취를 감췄다. 월마다 내는 관리비가 왜 그렇게 책정된 건지도 모른 채 '다른 데랑 큰 차이는 없어 보이는데?' 정도의 생각으로 그냥 내면서 살았다. 그건 다른 이웃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일에는 회사를 가느라 집을 대부분 비웠으니 청소하는 분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다른 것보다 주차장과 분리수거장이 항상 더러웠다. 심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신기하게 치워져 있었다. 이 빌라에 거주하지 않는 중년남성이 주도했던 일들이라 연락도 잘 닿지 않고 소통이 어려웠다. 내 일상이 너무 바빠서 신경을 못 쓰기도 했다. 그 중년남성이 전세 사기범 진 씨라는 걸 알고 난 후에야 그때 과연 제대로 된 업체를 고용하긴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이 빌라에서 2년을 살고 이사를 나갔다. '지금이 아니면 이제 서울권 아파트는 못 들어간다'는 남편의 선견지명이었다. 1년반쯤 살았을 때 여유롭게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다. 등촌2동주민센터역이 생길 수도 있다는 호재와 함께 주변 빌라가격이 조금 올랐다. 2억 5천 5백에 샀던 빌라를 주변 시세에 맞춰 2억 8천에 내놓게 되었다. 6개월의 여유를 두고 이사 갈 아파트도 계약을 마쳤다. 돌이켜보면 정말 무모한 선택이었다. 거의 없긴 했지만 1팀씩, 1팀씩 꾸준히 집을 보러 왔다. 하지만 아무도 선뜻 빌라를 매매하려고 하지 않았다. 언제 집을 보러 올지 모르니 매주 대청소를 해야 했다.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났다. 이사 가기로 한 날이 2달도 채 남지 않았다. 우리부부는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집이 정말 안 팔린다면 계약파기로 아파트 매매금의 10%인 계약금을 날리게 되는 셈이었다. 그 돈은 이 빌라에 살면서 악착 같이 모은 전재산과 다름없었다. 그때부터 남편은 온갖 미신을 믿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집 현관에 가위를 걸어놓았다. 장사가 잘 되는 가게의 가위를 걸면 집이 잘 팔린다는 속설이었다. 회식 때마다 가는 고깃집 사장님께 부탁해 받아왔다고 했다. 나는 믿지 않는 척했지만 출근할 때마다 가위를 바라보며 집이 팔리길 기도했다. 한날은 남편이 소주병을 거꾸로 뒤집어놓았다. 이 또한 속설 중 하나라고 했다. 용한 곳에 점도 보러 갔지만그 무엇도 우리의 불안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집은 그 사이에 팔리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2억 4천으로 전세 세입자를 구했다. 완벽하게 해결된 건 아니었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계획이 꼬이면서 아파트 잔금을 치를 때까지 총체적 난국이었다. 난생처음 차용증도 작성해 보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렇게 반년이 더 흐른 뒤에야 매수자를 만날 수 있었다. 1년이란 시간 동안 정신적 고통이 상당했다. 내 꿈의 신혼집이자 행복의 빌라는 1년 사이 진저리 나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참고로, 집값을 내려도 살 사람이 없어서 그냥 다시 올렸는데 그때 마침 매수자를 만났다. 모든 것에는 제 주인이 따로 있다는 말이 맞았다. 드디어 애증의 빌라를 떠나보냈다.
[혹시 집은 어떻게 처분하고 나가셨나요?]
우리가 이사를 떠난 뒤, 서로 안면만 있던 이웃에게 연락을 받았다. 다급해 보이는 연락이라 전화통화까지 하게 되었다. 그때 진 씨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반상회를 주도하고, 업체를 고용하고, 관리비를 받아가던 진 씨의 실체였다. 대다수의 이웃이 전세로 이 빌라에 들어와 있었다. 2년이 지나고 하나둘씩 이사를 생각해보려고 할 때서야 진 씨의 술수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그 빌라에서 가장 빨리 이사를 나간 집이 우리였다. 우리도 당연히 전세일 거라 생각했던 이웃들이 해결방법을 찾았나 싶어 연락을 해온 거였다.
[진 씨가 줄 돈이 없다고 하네요. 여길 매매 해서 우리가 팔고 나가야 할 거 같아요.]
그게 이웃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입주하던 시기에는 모두 밝고 행복해 보였는데, 이사를 가는 시기에는 누구 하나 쉽게 떠난 이가 없다는 게 참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