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내가 살면서 만난 사람들 중 E(외향형)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MBTI 검사를 하면 E, 99%가 나올 정도였다. 그는 현재 두 동짜리 작은 아파트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할 사람이 없어서 맡은 것치고 아주 즐거워 보인다. 이번 명절에는 아파트 근무자분들 외에도 몇 번 대화를 나눈 이웃에게까지 선물을 돌리고 왔다. 그리고 그는 직장도 단순한 일터가 아닌 사람들과 어울리는 장소로 생각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면 신상과자를 장바구니에 항상담는데, 그걸로 점심시간에 회사후배들과 과자 품평회를 한다고 했다. 참고로 그는 과자회사가 아닌 케이블 방송국에서 9년째 근무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는 내 친구의 남편에게 연락해 만나러 나갔다. 이제는 내 친구들도 나보다 내 남편과 연락을 더 자주 한다. 그는 본인의 기준에 좋은 사람이면 뭐든 도와주고 뭐든 내어주는 사람이다. 부부로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그의 성격을 몹시 부러워했을 거다.
2015년 크리스마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다. 그가 캠핑을 제안했다. 그의 직장동료들 그리고 그 동료의 가족들과 함께 하는 캠핑이었다. 심지어 그가 그곳에서 막내였기에 그의 상사들을 모시고 가는 캠핑이나 다름없었다. 부담스럽다고 말하자 그가 당일치기라도 같이 가면 안 되냐며 간절히 부탁했다. 나는 마지못해 수락을 했다. 거기서 나는 하루종일 그들의 자녀들과 카드놀이를 했다. 그때 내가 24살이었으니 10대인 자녀들과는 10살 차이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10살 이상 차이나는 그의 상사들을 대하기가 더 어려웠다. 나는 참 불편했는데 그는 내가 함께 해줬다는 사실에 그렇게나 행복해했다. 아마 그때부터 남편에게 제대로 코가 꿰였던 거 같다. 나는 내 친구를 볼 시간이 부족할 만큼 그의 지인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이번에는 1년에 2번 있다는 그의 고등학교 동창모임이 열렸다. 1박 2일 전주여행이라 당일치기도 불가했다. 이번에도 주저하는 나에게 그가 커플모임이라는 걸 어필했다. 저번처럼 직장상사도 가족단위도 아니니 편할 거라고 했다. 나는 또 그 말에 설득되어 전주로 내려가고 있었다.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모두 건실해 보였고 친절했다. 다만, 내가 낯을 가려서 어울리기가 힘들었다. 이미 주기적으로 만나는 관계들이라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친했다.
다 같이 관광을 하고 펜션에 돌아와 뒤풀이를 했다. 남편은 타고나기를 양반다리가 어려운 신체였다. 좌식 테이블에 모두 둘러앉아 있는데 남편만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앉은 위치가 다르다 보니 원활한 대화가 되지 않았다. 나는 어색하게 술잔을 주고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졸기 시작했다. 다들 익숙한 듯 관심도 안 두고 본인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가뜩이나 친해지는 게 어려운데 남편까지 자고 있으니 할 말이 더 없어졌다. 그날 남편은 뒤풀이 1시간 만에 잠들더니 아침에서야 눈을 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제 1박 2일 모임 같은 건 안 오겠다고 말했다. 남편이 다시는 먼저 두고 자지 않겠다며 약속 또 약속을 했다.
하지만 다음, 그다음 모임에서도 남편은 해만 지면 꾸벅꾸벅 졸았다. 단순히 피곤해서 조는 게 아니라 잠이 남편을 지배하는 거 같았다. 낮에는 누구보다 말도 많고 궂은일도 도맡아 하는 사람이었다. 가끔 사람을 안 만나는 날이 오면 하루종일 잠만 자기도 했다. 연애 때 그 문제로 나는 남편을 많이 혼냈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 내가 항상 함께 하길 바랐다. 결혼식 피로연 때도 마지막으로 그의 대학교 동창들이 모인 술자리에 들렸는데, 남편이 가자마자 바로 졸기 시작해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색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취한 채 잠이 든 그를 호텔방까지 옮겨서 재웠다. 그게 나의 결혼 첫날밤이었다.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남편의 이유 없는 졸음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젊으니까 건강하겠지, 생각하고 넘겼던 안일함이 훗날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힐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