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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Sep 09. 2024

영화 《지구 최후의 밤》 리뷰

환상의 힘

 

   

    어렵다는 소문대로 처음 볼 때 무슨 내용인지 영 감이 안 잡혔던 영화. 특히 2부를 보면서는 원테이크로 찍어서 그런진 몰라도 몽환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마치 깨어있는 상태로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었다. 꿈을 꾸면 스토리가 비현실적이고 개연성이 없으면서도 설득력 있는데, 이 영화의 2부를 보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꿈은 무의식과 기억, 욕망을 반영하는데, 2부에서는 1부의 코어 메모리들이 짜깁기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또 꿈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저녁에 술집에 온다는 완치완을 만나기 위해 극장에서 시간을 때울 요량이었던 뤄홍안은 3d 안경을 끼고 극장 벽에 기댄다. 그리고 그 후 지구 최후의 밤이라는 타이틀이 걸리며 2부 시작. (실제로 2부는 3d로 상영되었단다.) 2부는 뤄홍안이 3d안경을 쓰고 본 영화의 내용일 수도 있다. 혹은 벽에 기댄 채 꾸는 꿈일 수도, 아니면 자신이 바라는 것을 상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환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것 자체가 영화를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메타영화라고도 볼 수 있겠다.


1부의 내용과 2부의 내용이 겹쳐지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다. 가령 뤄홍안이 완치완(과 혹은 그녀와 닮은 여자)에게 아는 여자랑 닮았다고 말을 거는 장면이라던지, 자몽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던지. 또한 2부에서 빨간 머리를 한 여자가 횃불을 들고 양봉업자를 만나는데, 이는 1부에서 뤄홍안이 말한 엄마의 이미지이다. 1부에서 뤄홍안의 엄마가 슬픔이 극에 달하면 사과를 중심부까지 먹는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 대사가 나온 바로 다음에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중심부까지 먹는 어린 뤄홍안의 모습이 나온다. 왜 슬퍼하는지 의문이었는데, 그 이유는 2부에서 짐작할 수 있다. 엄마가 동생과 자신을 버리고 양봉하는 남자와 도망가버렸기 때문이다.


 2부에서 엄마는 양봉업자를 따라가고 싶은 이유가 힘들고 괴로운데 적어도 남자는 꿀을 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트럭에서 내린 남자는 1부에서 언급됐던 양봉업자이다. 2부의 뤄홍안은 꿈속 혹은 상상 속 엄마에게 묻는다. "마음에 걸리는 사람 없어요?" , " 그 애는 아직 어리니까 금방 잊을 거야." 뤄홍안은 엄마에게 사과를 건네고, 뤄홍안은 엄마에게 고장 난 시계를 받는다. 그리고 그는 그 시계를 완치완에게 주게 된다. 그리고 완치완은 그에게 1분짜리 싸구려 폭죽을 건넨다. 그러면서 "시계는 함부로 주는 게 아니에요. 영원을 상징하거든요.", "폭죽은 함부로 선물하는 게 아냐. 잠깐을 뜻하거든."라는 말들이 오간다. 더욱이 시계는 고장이 난 시계다. 고장 난 시계는 역설적으로 영원이라는 의미를 더욱 강조하게 된다.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영원의 시간. 마치 영화《헤어질 결심에서 죽음과 미결 사건이 역설적으로 영원한 사랑을 완성시켰듯이. 폭죽에 불을 붙이고, 뤄홍안과 완치완은 '커플의 집'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주고받다 결국 키스를 하게 된다. 그들을 뒤로하고 원테이크로 다시 찾은 폭죽은 1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타고 있다.


 2부가 소망을 이루고 싶은 염원이 담긴 꿈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엄마가 뤄홍안에게 건넨 시계는 곧 엄마가 자신을 떠났지만 자신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는 바람을, 자신이 완치완에게 건넨 시계는 자신은 영원히 완치완을 잊지 못하고 사랑할 것임을, 완치완이 건넨 폭죽은 완치완은 자신을 찰나의 연인으로 생각했지만 1분이 지나도 타고 있는 폭죽처럼 상상과 꿈속에서라도 그것을 지연하고 싶어 하는 바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지구 최후의 밤》을 보다 보면 굳이 영화의 의미들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영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냥 그 느낌을 즐겨도 무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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