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잠들지 못한 채 천장을 바라본다. 내일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다가, 어느새 다음 달, 내년, 그리고 알 수 없는 먼 미래까지 생각이 닿는다. 그때 찾아오는 것은 구체적인 걱정이 아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도 명확하지도 않은, 그저 막연한 불안감이다.
이 불안감은 이상하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가슴 한편을 무겁게 누른다. 취업을 걱정하는 것도 아니고, 건강을 염려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표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계속 우린다. 마치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한다.
어릴 때는 미래가 선명했다. 스무 살이 되면,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하면,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각각의 단계마다 구체적인 모습이 있었고, 그 그림을 향해 달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예전만큼 확실한 것들이 없다. 평생직장도, 안정적인 미래도, 심지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흐릿하다.
뉴스를 보며 불안감은 더 커진다. 개인은 너무나 작아 보인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어진다. 어차피 예측할 수 없는 미래라면,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죄책감도 따라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당장 먹고살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건강에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이 불안감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
이 불안감이 특별히 작금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어느 시대든 사람들은 미래를 거정 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불안감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변화가 천천히 일어났다. 한 세대가 경험하는 변화의 폭도 지금보다는 작았다. 부모 세대의 경험이 자식 세대에게도 어느 정도 유효했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몇 년 전의 경험조차 지금과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조언을 구하기도 어렵다. 부모님께 미래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으면, "네가 열심히 하면 될 거야"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뭔가 부족하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들 투성이다. 부모님이 경험한 세상과 내가 살아갈 세상이 다르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불안감에 나는 더욱 외로워진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역설적이다.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다음 달을 위해 이번 달을 견딘다. 그러다 보면 정작 현재는 항상 준비 과정이 되어버린다. 언제 진짜 삶이 시작되는 걸까. 미래의 안정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미루는 것이 정말 옳은 걸까.
하지만 이 불안감을 완전히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어쩌면 이것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려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모른다. 불확실함 앞에서 느끼는 긴장감은 우리를 더욱 기민하게, 더욱 신중하게 만든다. 안주하지 않고 계속 질문하게 만든다. 지금의 불안감이 언젠가는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미래가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일이 오늘과 다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변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희망의 다른 얼굴이다.
불안감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미래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최선을 다하는 것. 확실하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도 의미를 찾아가는 것. 계획은 세우되 계획에 매이지 않는 것. 준비는 하되 준비만 하며 살지는 않는 것.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든다. 여전히 미래는 불확실하고, 불안감도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내가 느끼는 이 불안감이 비정상적인 것도 아니고, 나만 겪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불안감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침이 오면 또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갈 것이다.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희망적이며, 때로는 그냥 담담하게. 그렇게 우리는 모두 미래라는 미지의 영역을 향해 함께 걸어가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