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반응 속도론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는 아레니우스 식은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온도. 높은 온도에서는 입자 간의 화학반응이 보다 쉽게 일어난다. 그리고 활성화 에너지.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위한 에너지 문턱이 낮은 반응은 쉽게 일어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빈도인자. 이는 입자의 배향과 모양새 등이 화학반응이 잘 일어나는지, 혹은 잘 일어나지 않는지를 알려준다.
처음 화학을 공부했을 때 나는 아레니우스 식이 마냥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이는 사랑의 형태, 사랑의 메커니즘을 너무나도 잘 설명했기 때문이다.
1. 높은 온도(T)
입자들이 높은 온도에서는 움직임이 빨라진다. 행동반경이 커지고 운동량도 커지게 되며 충돌 시 강렬한 에너지가 발산된다. 사람도 그렇다. 아침에 통화를 하고, 점심에 같이 밥을 먹고, 저녁에 산책을 하고, 손도 잡고 영화도 같이 보고 그러다가 영화의 주인공이 되다 보면 어느새 사랑이 무르익는다.
2. 활성화 에너지(Ea)
오래 만나야 조금씩 마음이 열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사랑이 활성화되기까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활성화 에너지가 큰 것이다. 한편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소위 금사빠들은 첫눈에도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사랑에 대한 활성화 에너지가 작다.
3. 빈도인자(A)
아무래도 연애에 유리한 것은 수려한 외모다. 연애에 적합한 외모를 가진 것은 연애로 향하는 올바른 방향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아레니우스 식의 '올바른 방향으로' 얼마나 충돌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인자는 빈도인자로 설명할 수 있다.
요약해 보자면 잘생긴 사람이 금사빠인 데다가 나만 좋다고 맨날 졸졸 따라다니면 연애는 너무 쉽게 이루어진다. (슬프게도 어설프게 생긴 사람이 이리저리 재면서 고민하고 따지며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둥 마는 둥 하면 사랑은 어려워진다.)
좁은 공간에서 남녀가 모인다면 아무래도 미묘한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화학반응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누군가가 연구해 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근거 없이 관찰한 내 생각으로는 단연 높은 온도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인사를 하고 어제 무엇을 했는지 안부를 묻고, 오늘 일에 대해서 살짝 푸념을 늘어놓는다. 정신없이 일 하다가 상대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내가 불리기도 하고 업무를 끝내고 밥을 먹으면서 오늘의 식단에 대한 평가를 하고 남은 점심시간 동안 필사적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쏟아내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일터로 향한다. 집중력이 흐트러질 오후 늦은 시각이 되면 오늘 하루의 일을 평하고 오늘 저녁 일정을 공유하며 내일을 약속하고 헤어진다. 화학반응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충돌'이 수십 번이 이루어진다. 활성화에너지와 빈도인자가 조금 거들어준다면 사랑은 생각보다 쉽게 시작된다.
이러한 일터에서의 사랑과 연애가 마냥 좋다고 할 수 없다. 당사자들을 둘러싼 투명한 막이 집단에서의 예외 상황을 계속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특히나 모종의 이유로 사랑이 종료되었다고 하면 그 투명한 막은 당자 사들을 고치처럼 둘둘 말아 올려 혹여나 그들이 한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공유할까 봐 주변사람들은 전전긍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다. 자주 만나야 사랑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