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학 시간에 가장 외우기 힘들었던 것은 약물학 교과서 맨 뒤쪽에 있는 약물상호작용 부록표였다. 교수님의 아량으로 애매한 상호작용들은 빼고 '가장 강력히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에 대해서만 외우도록 지시를 받았지만 그래도 원리나 내용이 들어갈 틈 없이 얘랑 쟤랑은 만나면 안 된다 라는 단순한 구조를 머릿속에 구겨 넣었던, 아주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약물상호작용이란 것은 Drug Drug Interaction을 번역한 것으로서 약어로 DDI라고도 한다. 실무에서 DDI라는 표현은 잘 사용하진 않지만 Drug Drug Interation이라는 말에 그 내용이 모두 담겨있다. 즉 어떠한 약물과 또 다른 약물(들) 간에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어떠한 약물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약물이 흡수되고 우리 몸에 퍼지고 그것이 적절한 효과를 보이다가 사라지는 과정, 그 사이에 약물이 온갖 화학반응을 겪으며 제 모양새를 잃거나 알을 까고 나와 훨씬 더 강한 약물로 변모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독성물질로도 변할 수 있다. 이러한 제약회사는 임상시험을 통해 이러한 약물의 일대기적 특성을 자세히 기록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것은 단 하나의 약물에 한정된다는 사실이다.
간단한 감기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여러 물질을 한꺼번에 복용한다. 으레 이런저런 조합을 써도 크게 문제없을 거라 판단되는, 진료의의 경험에 의한 포뮬러가 있기 마련이지만 엄연히 그 안에서도 약물 간의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다만 약의 개수가 세 가지, 네 가지, 그 이상으로 늘어나다 보면 약물상호작용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삼체문제(Three body problem)와 같다. 그래서 환자에게 아주 중대한 부작용을 끼칠 가능성이 없고,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감내 가능하며, 치료역이 넓어 약물상호작용에 의한 약효 저하가 환자에게 필요한 효능 이상으로 나타나기만 한다면(진료의의 판단하에) 여러 가지 약물을 함께 쓸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게놈프로젝트를 통해 인체에 대한 설계도를 손에 넣었지만 그 설계도에는 그저 '인간은 이러이러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라는 수준의 정보만 있을 뿐이다. 설계도의 각 구성 요소들이 생명체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다른 요소들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는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발견되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인체는 기계 이상의 매우 복잡한 유기체다. 이러한 유기체에 작용하는 약물들이 각기 어떤 역할을 하고 특히 약물들이 동시에 투여되었을 때엔 어떤 특징을 보이는지 속을 들여다보지 않는 한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결국 약물상호작용이라는 것도 인간이라는 거대한 우주 안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각각의 약물들이 혈관을 타고 흘러 다니며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주치고, 때로는 서로의 힘을 배가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를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마치 우리 삶에서 만나는 타인들처럼 말이다.
그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의 세계에서 의료진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환자라는 소우주 안에서 약물들이 조화롭게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균형을 맞춰나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치료의 예술이자, 인간을 향한 숭고한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