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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에 충실

by 샤토디

까르보나라를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돼지 볼때기 살로 만든 관찰레를 작게 썰어 볶는다. 관찰레는 기름이 많이 나오고 향이 풍부하기에 적은 양을 사용해도 된다. 만약 관찰레를 구할 수 없는 경우, 지방이 많은 베이컨을 사용해도 괜찮다. 어느 정도 관찰레가 익었다면 옆에 잠시 두고 면을 삶기 시작한다. 이때 한 스푼의 소금을 넣어야 면에 간이 잘 베인다. 8분 정도 삶은 면을 꺼내 관찰레를 볶은 팬에 넣고 유화과정을 거친다. 이때 면수를 조금씩 넣으며 면의 익음 정도를 조절한다. 적당히 유화가 되었다면 불을 끄고 계란 노른자를 따로 준비하여 잘 섞어준다. 잔열로 계란이 면에 스며들게끔 하는 것이 포인트 기 때문에 절대 화구의 열이 팬에 전달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열감이 부족하다면 냄비에 물을 끓여 증기열로 열감을 보충한다. 그다음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그라인딩 한다. 그리고 통후추를 갈아 볶은 뒤 듬뿍 뿌려주면 완성이다.


이상은 까르보나라 레시피를 설명하는 영상이나 글에서 공통적으로 설명하는 내용들이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여기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하나 둘 추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면에 계란이 잘 스며들게 하는 단계를 강조한다. 크림을 사용하면 절대 까르보나라가 아니며 계란을 면에 휘휘 저으며 크리미 한 질감이 형성되어야 진정한 까르보나라라고 말한다. 그것이 까르보나라의 정체성이기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며칠 전 여느 때처럼 까르보나라를 만들었다. 평소와 똑같이 만들었으나 맛이 정말 이상했다. 놓친 재료가 없는지 살펴보았으나 그런 것도 없었다. 왜 그런 맛이 나는지 아리송했다. 눈을 감고 맛을 천천히 음미해 보았다. 이질적인 밀가루 향이 강하게 났다. 이윽고 나는 그리고 그 원인을 알았다. 나는 유통기한이 지난 파스타면을 사용했었던 것이다.


까르보나라를 만들겠다며 계란, 치즈, 관찰레등 신선한 재료를 잔뜩 구비했으나 막상 냉장고에 있는 파스타면을 신경 쓰지 못했다. 파스타에서 가장 기본인 것은 면임에도 그것을 간과하였기에 준비한 재료들의 풍미가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난 기본을 놓치고 말았다.


실생활에서도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막상 나의 본업에서 기본이란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를 때가 많다. 흘러가는 대로 대충, 신속하게, 별 탈 없게, 상급자에게 지적당하는 일 없게 퇴근시간 안에 업무를 마친다. 본업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거나 고찰하지 않는다. 그저 다람쥐가 챗바퀴를 돌듯 하루를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기본은 없고 그저 빠른 업무 처리를 위한 요령만 생긴다. 과연 나에게 있어서 기본이란 무엇일까?


책장에서 책을 뒤적였다. 몇 년 동안 먼지가 가득 쌓인 책이 모습을 드러났다. 대강 손에 잡히는 페이지를 펼쳐 보았다. 힘을 잔뜩 준 선, 그 옆에 별표 여러 개를 그려놓고 '중요'라는 메모가 보였다. 왜 나는 이 부분을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때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최소한 나는 이게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기본에 대한 인식은 지금보다 훨씬 또렷했던 것 같다.


다시금 나에게 기본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아직은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기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보다 명확해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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