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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가 흥분한 이유는?

by 샤토디

몇 달 전 봄이 오기 전 추운 겨울 어느 날 대구의 달성공원을 방문했다. 이곳에 동물원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동물들은 대부분 추위를 피해 실내로 이동했거나, 적절한 생육 환경이 조성된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날씨가 따뜻하면 돌아올 거라는 낭랑한 말투의 표지판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간혹 밖에서 햇빛을 받고 있는 동물이 보이면 부디 알아봐 주길 바라며 입을 모아 '츄츄'하는 소리를 내 보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사진 어플을 실행시킨 후 최대한 줌을 당겨 보았지만 동물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앙상해 보이는 동물들이 많았기에 관리가 되고 있나 생각되기도 하였지만 사람도 마른 사람이 있고 뚱뚱한 사람이 있듯 동물들 사이에서도 개체마다 그런 차이가 있겠거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음 동물을 구경하러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그러다가 우당탕탕 소리가 한번 들리더니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곳은 원숭이 무리가 사는 대형 원기둥 모양이 원숭이 우리였다. 흥분한 원숭이들이 우리를 뛰어다니며 앞에 있던 여성에서 위협을 가했던 것이었다. 물론 튼튼한 철장이 원숭이와 관람객을 분리시켜 놓았지만 원숭이들의 큰 울음소리, 누가 보더라도 화난 듯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충분히 비명을 지르고 남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마음에 원숭이 우리 앞으로 다가가 그들의 행동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들은 유독 여성 관람객들 앞에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또 한 놈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다른 놈들도 덩달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왜 원숭이들은 흥분했을까? 원숭이들이 같은 유인원의 이성을 보고 흥분했을 수도 있다. 원숭이 정도의 지능과 동물적인 본능이라면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관람객과 사진을 찍도록 훈련받은 침팬지가 여성과 포즈를 취할 때면 여성의 몸을 더듬는 등 음흉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정말 인간의 이성을 동족의 이성과 비슷한 선상에서 보고 있다는 것일까?


그런데 인간은 일반적으로 생식기를 확인하지 않는 이상 원숭이의 성별을 확인할 수 없다. 즉, 내가 암컷 원숭이를 골라 흥분한다든지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같은 유인원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원숭이의 세계에서 이성(異性)의 범주는 인간보다 훨씬 넓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유인원 까지는 이성이 흥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한 이유로 흥분한 게 맞다면 매우 흥미롭지만 크게 대단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저 인간과 아주 가까운 동물의 본능적인 행동이므로. 그런데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어떨까?


이미 원숭이들의 지능이 인간에 필적할 정도로 진화했을 수도 있다. 사회를 이루고, 서열과 계급을 이루고, 그들의 의사소통 체계 안에서 인간이 알아차리지 못할 문화를 만들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의사를 인간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 이 우리에서 꺼내달라는 지속적인 신호를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것이라면 상황은 엄청 끔찍해진다. 사람들이 자유를 갈망하듯 그들도 똑같이 매번 자유를 갈망하고 외치지만 사육사는 그저 배가 고파서 저러겠거니라고 생각하며 사육장 안에 먹이를 채워 넣을 뿐이라면 그것 나름대로 비극인 것 같다. 동물권의 보장을 외치는 동물해방운동가들의 생각도 이와 뿌리가 같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달성공원 원숭이 사육장 앞에서 오래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느 원숭이와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시종일관 흥분하며 소리 질러대는 것이 꺼내달라는 외침이었다면 나를 붙들고 '저기 양반 내 이야기 좀 들어보소'라고 눈빛으로 말을 걸지 않았을까?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몸에 묻은 분변을 공중으로 흩날리며 소리를 지르는 원숭이들은 어떤 연유로 흥분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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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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