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대구에 갈 일이 있었다. 아침 일찍 첫차를 타러 동서울터미널역으로 향했고 자리에 앉자마자 잠을 청했다. 그런데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이유는 내 뒷자리에 앉은 승객이 신발을 벗었기 때문이었다.
역할 정도로 발냄새가 심했다. 창문이 없어 차량 자체 환기 시스템에 의존해야 했다. 내 주변을 둘러싼 공기가 쉽게 순환되지 않았다. 그래서 냄새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승객한테 말할까 하다가 세 시간 내내 뒤에서 눈총을 받는 게 싫어서 관두자 하고 자세를 고쳐 앉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이미 머릿속에서는 발냄새가 떠나지 않았고 자는 것을 포기하고 휴대폰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발냄새의 원인은?
무좀균은 의외로 발냄새를 생성하지 않는다고 한다. 되려 세균이 각질층을 먹고 나서 발생하는 이소발레르 산(Isovaleric acid)이라고 하는 성분이 발냄새를 유발한다고 한다. 정말 이 상황을 벗어나기에는 하등의 쓸모없는 정보였다. 그 고린내처럼 스멀스멀 올라오는 나의 짜증도 뒷자리에 앉은 승객으로 향했을 뿐 승객의 발가락 사이사이에서 열심히 각질을 갉아먹는 그 이름 모를 세균에게 향하진 않았다. 그 세균들이 놀고먹게끔 방치한(아저씨라 생각되는) 승객이 너무나도 미웠다.
또 이소발레르산은 공중으로 떠다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단순하게 생긴 화학 물질이 허공을 떠다니다가 내 코의 점막에 닿고 일부는 폐 깊숙이까지 들어간다 생각하니 안나는 멀미도 날 것 같은 불쾌감이 들었다. 신선하고 깔끔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사람들은 산과 계곡 바다를 찾아 나선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가 마시는 공기가 청결하길 바란다. 아무도 미세먼지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좋아라 하진 않는다. 그런데 내가 그때 마셨던 발냄새가 섞인 공기는 미세먼지 따위가 비빌 수 없는 수준이었다.
기사님한테 말씀드려 볼까 생각했다. 그럴 거면 내가 직접 하는 게 낫지 않나? 기사님이 뒤의 승객한테 '저 발냄새가 심하니 신발 좀 신어 주십시오'라고 하면 그 승객은 당연히 내가 말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을까? 역시 손 안 대고 코 풀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끝까지 참든 빨리 말하든.
남에게 안 좋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라 결국 그냥 조금 참아보자 생각했다. 휴게소에 도착했을 땐 과호흡이 올 정도로 숨을 빨리 쉬었다. 내 몸에 있는 이소발레르산을 뱉어내기 위해. 신선한 산소가 내 몸에 가득 찼을 거라 생각하고 다시 버스를 탔다.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단 5초 만에 아저씨의 발고린내가 폐를 푹 찔렀다. 내 폐와 피와 심장을 거쳐 온몸을 돌고 돈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이윽고 세 시간이 지나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나는 내리자마자 이번에도 과호흡이 올 정도로 숨을 빨리 내쉬었다. 드디어 그 발고린내에서 해방이다. 자유다.라고 생각했다. 내 폐가, 내 피가, 내 심장이 정상 기능을 되찾는 것 같았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동대구역 앞을 걷는데 문득 뒤를 돌아봤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 사이로 그 아저씨도 보였다.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마 본인은 끝까지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내가 세 시간 동안 그의 발과 함께 동행했다는 사실을.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앞으로 걸었다. 대구의 공기가 유난히 맑게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그냥 보통의 공기였는데 내가 오버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적어도 버스를 탈출한 그 순간만큼은 천국처럼 느껴졌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