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구내식당의 점심은 한 끼에 1500원이다. 직장에서 식대를 일부 보전해 주기에 가능한 가격이지만 어떨 땐 정말 딱 1500원 정도의 느낌의 식단이 나오기도 한다. 식판에 올려진 1500원짜리 식사는 기실 1500원이 아님에도 나에게 1500원짜리 취급을 받는다. 1500원짜리 식사를 먹을 수밖에 없음에도 나는 식판에 올려진 음식을 평가한다. 맛이 없다와 그저 그렇다로. 식판에 음식을 올려주시는 여사님들이 맛있게 먹으라고 한 마디씩 건네주신다. 나는 잘 먹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지만 여사님들도 아시리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식판에 올라간 음식의 일부는 잔반통으로 향한다는 것을.
맛이 없다고 평가한 점심을 먹은 날에는 오후 근무가 매우 고되고 머릿속에서 밥생각이 간절하다. 정신없게 일하다 보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목이 말라서 꼬르륵한 건지 배가 고파서 꼬르륵한 건지 구분이 안 갈 때도 있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도 꼬르륵 소리가 가시지 않을 땐 진짜 배가 고프다는 것을 실감한다. 뭐든 입에 넣으면 잘 들어갈 것 같다. 달달한 아이스크림과 과자가 생각나고 국물이 쫄아붙어 짠내만 남은 어묵과 국물이 생각난다. 하지만 생각나는 대로 먹을 순 없다. 나에겐 처리해야 하는 식재료가 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엔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떠올리면서 대충 이렇게 저렇게 먹으면 되겠거니 생각한다. 그저 식재료를 썩히지 않기 위해, 그리고 생존을 위한 식단일 뿐이며 건강과 즐거움은 접어둔 지 오래되었다. 혼자 살면 이것저것 맛있게 해 먹을 것 같은 로망이 있었지만 실상 식단을 결정하는 것은 식재료의 유통기한이란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냉장고가 만능은 아니다. 돼지고기는 2~3일이 지나면 불쾌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채소도 마찬가지다. 끝부분부터 말라비틀어지는 놈이 있는가 하면 한쪽이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하여 옆에 있는 놈에게 전염시키는 놈도 있다. 어쩜 사람과 똑같은지. 혼자 살다 보니 식재료를 집어 들어 장 바구니에 담을 때 앞으로 며칠간은 이것만 먹어야 한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집어 든 식재료는 다시 제자리에 둔다.
하지만 이따금 냉장고를 열었을 때 정체를 알 수 없는 식재료들이 냉장고에서 나를 맞이한다. 부모님이 다녀가신 게 틀림없다. 난 오늘 3일 전에 산 돼지고기를 털어 먹어야 하는데 부모님이 넣어둔 식재료가 그 돼지고기와 경쟁을 해야 한다면 살짝 현기증이 난다. 빠르게 우선순위를 다시 배치하여 그날 조합할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해 낸다. 그다음 날 밖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먹지 못한다. 치고 들어온 식재료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그럴 때면 그 식재료들을 냅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잘게 썰어서 음식물쓰레기통에 투척을 하든 변기통에 넣고 물을 내리든. 갑자기 우리 집에 들어와서 나를 욕보이게 만든다. 내가 지금 처리를 안 하면 곧 쓰레기가 될 이 녀석들 때문이다. 기대했던 저녁 식사가 어그러지면 근무 후 피곤함이 같이 몰려와 불쾌감은 한층 더 올라간다. 제발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지 말라고 말씀드려도 부모님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식이 행여 굶을까 봐.
그만큼 혼자 사는 나에겐 식재료의 관리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식재료를 구매하는 것도 관리요, 먹기 싫어도 꾸역꾸역 입에 넣는 것도 관리다. 내가 동물인 이상 음식을 꼭 먹어야 하고 살림이 넉넉지 않은 이상 음식을 꼭 해 먹어야 한다. 부실한 재료로 조금이라도 맛있게 먹고자 조미료란 조미료를 과할 정도로 듬뿍 넣어 조리를 하다 보면 한 입 넣었을 때 머리가 핑 돌고, 스멀스멀 두통이 몰려온다. 이게 그 중식당 증후군인가 보다. 타이레놀 한 알을 꺼내 물과 함께 삼킨다. 조금씩 두통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면 그제야 오늘 하루가 끝났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것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