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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랄 Nov 12. 2024

소화불량 일기-6

Day 5. 제발 창피한 줄 좀 알아라!

본 교무실엔 학부모들이 자주 와서 상담한다.  오늘도 가운데 상담 테이블 너머 머리 위쪽만 간신히 보이는 젊은 여교사가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네에…. 형철 어머니, 형철이가 학교에서 문제가 좀 있어서… 네… 그게… 오늘 또 민혁이를 때렸다네요… 심지어 책까지 던져서 민혁이가 눈 옆이 찢어졌어요… 지금 오셔야 할 것 같아요…”    


그 형철이란 아이. 엄마가 학교운영회장을 맡고 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엄마가 학부모회장이면 담임도 맥을 못 추는 건가? 아니지. 교장이 계속 신경을 쓰니까 담임도 저렇게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지는 거겠지.


 전화를 끊고 나서 그 여교사, 옆에 있는 좀 나이 든 교사에게 한탄을 한다.    


“글쎄요… 형철이 어머니가 처음 몇 번은 죄송하다고 하시더니 이제는 화가 나서, ‘그런 사소한 일로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냐 ‘ 고 하시는 거 있죠?


게다가 '학교 측에선 도대체 애를 어떻게 관리하는 거냐’면서 도리어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뭐, '치료비가 얼마냐, 치료하고 말하면 다 부쳐 주겠다'면서… 그래서 그래도 민혁이 어머니가 속상하실 테니 직접 오시는 게 좋겠다고 했죠.


허 참, 겨우 온다고 하긴 했는데, 이런 분이 어떻게 학부모회장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저렇게 자기 자식이 학교폭력의 가해자인데도 대놓고 뻔뻔한 사람들이 있다.


형철이 엄마는 약속 시각을 30분 어겨서 우리가 막 점심 먹으러 급식실로 가기 일보 직전인 12시에 도착했다.

막상 학교에 온 형철 엄마는 교무실 분위기를 보고 태도를 바꾸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지 살살 웃으며 담임교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도 알다시피 제가 좀 바쁘잖아요… 호호호… 아까 손님이 좀 많아서 제 말투가 좀 기분 나쁘게 들렸을 수도 있겠네요…

민혁이는 보건실 들렀다가 병원에 갔다고요? 네… 그럼 지금 제가 당장 거기로 갈게요… 아. 그리고 여기 이거… 김영란 법 안 걸리는 롤케이크니까 걱정 마시고 나눠 드세요…”     


 민혁 엄마는 빨간색과 노란색이 섞인 스카프를 허리까지 내려오도록 나풀대면서 타이트한 스커트 엉덩이를 흔들거리며 교무실을 빠져나간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복도 끝에서 계단을 내려가기 직전. 그녀가 친구와 통화하는 내용이 하이힐 소리보다 더 쩌렁쩌렁하게 들린다.      


 “아니… 나 지금 거기 아니야… 여기 애 다니는 학교… 아들이 또 누구를 때렸지 뭐야~ 걔는 누굴 닮아서 그런지 몰라~ 애 아빠가 유도선수여서 그런가? 호호호호호… 내가 학교 불려 다니느라고 정말 힘들다니까? 그래, 그래, 언제 점심 한 번 먹어 언니~”     


 저게 웃으면서 친구와 통화할 내용인가? 가해자의 부모는 자식의 폭력성을 자랑처럼 말할 때가 있다. 그것이 마치 자식의 신체적, 사회적 능력의 탁월성과 부모들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입증하기라도 하는 듯…

 언제부터 폭력성이 자랑거리가 되었는가? 그거야말로 수치 중의 수치로 생각해야 할 일이 아닌가?


거꾸로, 자기 자식이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 상황일 때는 정말 참고 참았다가, 가족이나 정말 절친한 친구에게만 이야기한다. 울분에 가득 찬 채…


가해자를 대상으로 “이 때려죽일 새끼” 하고 혼잣말을 하지만, 혹시나 자식이 더한 보복을 받거나 주변에 무시당하거나 오히려 친구들과 교사에게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맞을만하니까 맞았지'라는 말이 당연시되어버린, 가해가 자랑거리가 되고 피해가 오히려 부끄러워하며 감추어야만 할 ’ 무엇‘이 되어버린 이 더러운 사회.       


 오늘 점심은 컵라면이다. 맵고 뜨거운 국물을 먹어야 속이 풀릴 것 같다. 그나저나 이놈의 소화불량은 언제쯤 해결될까? 그냥 가만히 있다간 장가도 가기 전에 확 죽어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소화불량 일기>를 쓴다. 언젠가 속이 시원해지도록 내 소화불량의 원인 제공자들을 혼내주는 꿈을 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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