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 있는 모 중학교에 교무 보조로 취업했다. 내가 그 많은 지원자를 이기고 선발된 이유에 대해서 다른 교사들은 매우 궁금해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오기 전 한 달 동안 이력서만 삼십 통이 왔으며, 그중 석사 과정을 이수한 대학원 출신만 다섯 명, 일본과 중국의 대학교 등에서 수학했다는 해외 유학파만 세 명이었기 때문이다.
아. 내게 장점이 있다면 그건 현재 경기도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계시는 아버님이 있다는 출신성분(?) 정도다. 하긴. 나는 군대도 일명 ‘신의 아들’이라는 ‘공익’ 출신이다. 아버지가 이 학교로 전화를 넣으셨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 이력서의 스펙은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 졸업, 군대 다녀왔음. 외모 빠지지 않음. 남들 다 가는 어학연수도 다녀왔고 토익점수가 900 넘는 것도 사실이다.
"… 저는 한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신 아버님의 엄한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로 시작되는 나의 자기소개서를 읽던 앞머리가 하얗게 센 교감선생님은 처음 한 두 줄에 동공이 커졌다가, 중간 이후의 내용에는 아예 휙, 지나치더니 곧바로 바로 나를 친근감이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감샘님'은 안경을 고쳐 쓰시더니 내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래요… 교무 보조로 일하실 건데… 내일부터 나올 수 있으신가요?”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마치 군대에 있는 장병처럼 대답했다.
“넵! 필요한 서류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1월은 학교의 방학이다. 하지만 나 같은 교무 보조에게 방학이 있을 리 없다. 돌아가며 근무조를 서는 교사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나가서 점심을 먹지만, 나처럼 매일 나오는 행정직들은 매번 점심 고민을 하기 싫어 도시락을 싸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자들은 삼삼오오 '별실'에 모여서 도시락을 먹는다던데… 처음 한두 번은 내 점심을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 또는 근무조 조장 샘이 사 주셨다. 하지만 곧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즈음 매일 출근하는 복지교사 샘, 사서 샘, 그리고 상담 샘이 나에게 도시락 같이 먹자고 살짝 귀띔을 해 주었다.
그래서 싸 오기 시작한 점심 도시락. 혼자 살아서 평소에 밥도 거의 안 해 먹는데 도시락이라니... 그래도 '남자니까 특혜(?)로 밥만 싸 오라'고 해서, 어찌어찌 도시락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막상 도시락 메뉴들을 보니, 여교사들이 먹는 도시락이란 대체로 비슷해서… 건강과 다이어트에 좋다는 오만 음식들은 다 있는 것 같았다. 달걀, 요구르트, 고구마, 김치, 현미밥이나 오곡밥이다. 가끔 라면도 끓여 먹기는 한다. 며칠은 재미도 있었다. 남자가 나 혼자긴 하지만 여선생님들의 수다에 끼지는 못해도 한참 이야기 저 얘기하는 걸 들으면 시간은 잘 간다. 대부분이 결혼하고 아이도 있는 나이 지긋한 아줌마들이다 보니 항상 시작은 학교 이야기에서 마무리는 자식 자랑으로 끝난다.
아들이나 딸이 미국의 유명 주립대학 유학파라거나 서울대 또는 연고대를 다닌다거나 대기업 사원, 공무원, 공사에 취직했거나 어디 과학조사기관 연구원이라거나…. 세상의 모든 엄친아나 엄친딸은 다 교사들 아들딸인 것 같다. 그런 이야기야 워낙 수없이 많이 들어봐서 낯설지도 않은데, 잘 나가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질투가 나는지 자랑할 거리가 별로 없는 중고등학생 엄마 교사들 중 한 명이 뭔가 이상한 이야기까지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이 중 2인데 말이야, 워낙 잘 생기고 인기가 많아서 반장을 놓쳐 본 적이 없지…”
화장발 두꺼운 국어교사 A가 갑자기 자식 자랑을 한다.
“어머 그래요? 공부도 당연히 잘했겠네요?”
옆에 앉은 젊은 시간제 영어전문강사 B가 추임새를 넣었다.
공부 이야기가 나오자 A가 약간 얼버무리다 화제를 돌린다.
“… 뭐 10등 안에는 항상 들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남자는 뭣보다 인기가 좋아야 해. 그래서 초등 때부터 생일 파티는 항상 반 전체 애들을 다 초대해서 체육관을 빌려서 해 줬다니까…”
그러자, 옆자리 수학교사 C가 약간 의아한 듯 묻는다.
“그거, 요즘엔 초등학교에서 하지 말라던데…”
“어머~! 샘~! 그 말을 듣는 순진한 사람도 여기 있었네? 호호호… 이 사람 선물도 한번 안 했겠네…“
A의 황당한 '저격'에 초등생 아이들 둔 교사 C, 순간 표정이 약간 썩는다.
나는 김치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으며 생각했다. 아. 이 A 교사 아줌마 김치 꽤 시네. 이빨이 시릴 만큼.
그러다 그다음에 이어진 A의 말을 듣다 나는 순간 푸! 하고 씹던 밥을 그대로 내뿜을 뻔했다.
“…근데 전번에 애 아빠가 콘돔 한 세트를 애한테 선물로 사줬지 뭐야~“.
컥. 고춧가루가 코에 들어갔다. 나는 물을 마시러 얼른 정수기로 달려갔다. 그 말을 들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인 상담 샘 D도 나처럼 놀랐나 보다.
“에? 콘돔요?”
“응~ 남편한테 잘했다고 말해줬어~ 난 아직 할머니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말이야. 호호호호호…”
A의 어이없는 이야기에 나는 정수기 물을 컵에 받아 벌컥벌컥 마시면서 생각했다.
할머니가 되고 안 되고 가 문제가 아니고. 만약 자기 딸이 중2라도 콘돔 따위를 세트로 사줬을까? 그리고 그 말을 자랑이라고 점심 먹으면서 떠들고 있을까? 여기 학교 교무실 맞아? 코안에 낀 고춧가루가 고추냉이처럼 매웠다.
내가 물 마시러 간 사이 주변 선생님들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보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 아줌마 A는 계속 수다를 떨어댔다.
“…그래서 내가, 집을 바로 옆 아파트로 옮겼잖아… 우리 아들내미 다니는 학교 운동장이 쪽창으로 바로 보여~ 너무 좋아~”
헬리콥터 맘이 따로 없네. 근데 아들 성적과 학교생활은 그렇게 신경 쓰면서 여자 친구를 진지하게 사귀는 ‘성적’ 자유는 정말 일찍 허용하네. 그 어린 아들과 그렇게 어린 나이에 관계를 가질 수도 있는 여학생들은 생각 안 하는 건가?
그다음부터 난 그 아줌마의 신 김치 먹기 싫어서 도시락 안 싸가지고 다닌다.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이랑 컵라면을 혼자 먹고 오는 게 훨씬 덜 얹힐 것 같다.
아줌마들은 뒤에서 수군거리겠지. 도시락 싸는 게 여자들도 힘든데 결혼도 안 한 총각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며… 이래서 남자들은 절대 안 된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