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 시간이 지난 10시, 전철 안은 한산하다. 난 오늘도 양복을 쫙~ 빼입고 면접 보러 간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급히 탄 전철.오랜만에 때 빼고 광냈는데 광낸 신발 밑창으로 물이 들어와서 양말이 젖어 버렸다. 아 찝찝해. 그래도 냄새나면 안 되니까 절대 구두는 벗지 않으리라.
가만있자. 남는 신문이 어디 없으려나. 깔창 아래 깔면 좀 나을 텐데… 목을 빼고 선반을 한번 휙 돌아본다.
아무것도 없다. 요즘은 어린것들이나 노인네들이나 다들 스마트폰만 쳐다본다니까. 신문이 있을 턱이 없지. 심각한 거북목 증상도 함께따라올텐데ᆢ
한 아주머니가 휴대폰을 들더니 통화를 시도한다. “띠리링~ 띠리리리링~”
“으응~ 기주야, 엄마야… 오늘 학교 늦게 간다고? 그래~ ”
어쩌구 저쩌구 … 일상적인 엄마의 잔소리를 한참 늘어놓는다. 핸드폰 저 쪽에서 살짝 들리는 목소리로는 아들 같다. 그래, 집에서 자고 있는 자식 걱정이 되나 보다. 그런데 그녀의 마지막 말이 귀를 때리듯 울리며 내 청력을 의심하게 했다.
“아 그리고~ 냉장고에 피자 있잖아~ 그거 오래돼서 좀 상한 것 같아… 절대 먹지 말구~ 할머니 드려~~~ 할머니 잘 드셔~”
뭐라구? 할. 머. 니. 드.려?
그거 할머니 드려‥ 상한 피자 할머니 드려‥ 할머니 드려…
드라마에서 주인공에게 충격적인 말이 무한 반복해 들리듯이, 그 말이 계속해서 귓속에서 맴돌았다. 그 아줌마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띠링. 하고 끊었고, 다시 전철 안은 침묵 속에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만 몇 분간 올렸다.
…윙…. 둥둥. 두두웅… 위잉… 이번 역은 뚝섬, 뚝섬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안내방송이 들리고,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모두 무심한 듯 그대로 서 있었다. 바바리코트를 입고 선 아저씨는 한 손은 손잡이를 잡고 무심히 창밖을 보고, 그 아줌마 바로 앞에 앉아있는 아가씨는 스마트폰에 얼굴을 박고 빛의 속도로 카톡을 쳐대고 있다.
나는?그냥 그 여자를 그저 지긋이 바라보았다. 목구멍까지 하고 싶은 말이 차올랐다.
자기 아들은 신선하고 좋은 새 밥으로 먹이고, 오래돼서 상한 피자를 할머니 드리라고? 게다가, 그 말을 사람들이 멀쩡히 서거나 앉아있는 전철에서 크게, 전화로 말을 해? 이 동방예의지국에서?
이거 실화냐? 아줌마, 나중에 아줌마 아들이 썩은 음식 아줌마한테 먹으라고 남겨두면 어떡할래요? 그래서 아줌마가 아들에게 화를 내면, “왜에~ 예전에 엄마도 할머니 썩은 피자 드리라고 했잖아… 내가 뭐 잘못했어?”라고 할 것 같은데요,
잘 생각해보고 다시 아들한테 전화해서 잘못 말했다고 사과하지 그래요? 후회하기 전에…
하지만 그 전철 같은 칸에 탄 누구도, 그 아줌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아줌마의 통화 목소리는 그 칸에 탄 몇 안돼는 사람들에게 다 들릴 정도로 큰 소리였다. 나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 어른, 나이 드신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오셔서 한마디 해 주시길 바랐다.
그런데 그 칸에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두 세분 타고 있었는데, 모두 못 들은 것인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그냥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아줌마는 자신이 내릴 역에서 내렸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아.. 속이 쓰리고 신물이 올라온다. 단지 아침을 안 먹어서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일까. 면접 보러 가는 길이 너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