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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랄 Nov 05. 2024

소화불량 일기-2

Day 1.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사탕

갑자기 날씨가 너무 추워졌다. 추운 날씨에 '놋데니아'에 가서 차가운 점심을 먹어서 그런지 배가 살살 아프다. 그래도 도서관이나 가서 경제신문이나 뒤적거려 볼까. 구직에 도움이 되는 기사가 혹시 있을지도 몰라. 나는 근처 도서관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 바로 앞에는 유치원생들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그리고 그 아이들의 엄마들로 보이는 30대 후반 아줌마 한 명과 좀 더 젊은, 그보다 다섯 살쯤 어려 보이는 아줌마 한 명이 타고 있다. 둘은 같은 유치원을 보내는 학부모 같다. 아는 사이지만, 그렇게 친해 보이지는 않는. 하지만 이것저것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억지로 2인석에 함께 앉힌다. 남자아이는 좋아하지만, 여자아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엄마의 눈치를 보며 계속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엉덩이를 들썩들썩한다.     


버스가 정차해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고, 그 모습을 본 여자아이는 그쪽으로 얼른 달려가 앉는다. 남자아이가 흥분해서 씩씩거린다. 몇 번 자기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더니(마치 '엄마, 쟤 왜 갑자기 저리로 가? 내가 싫은 거야?'라고 말하는 듯) 말릴 새도 없이 곧장 여자아이에게로 달려가 머리를 한 대 세게 때린다. 꽝!      


 여자아이가 서럽게 운다.          

“아앙~~~앙~!!! 엉엉엉…”       


 나는 그 여자애의 엄마가 당장 달려가서 남자애를 혼내줄 줄 알았다. 그런데, 여자아이의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다. 몇 분간 애가 그냥 울게 둔다. 뭐야? 엄마 맞아? 순간, 내가 가서 머리 쓰다듬어주고 위로해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동시에 나는 그 남자애를 계속 쳐다보았다. 남자애는 여자애를 때리고서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비로소 분이 풀린 눈치다. 순간. 나에게 얼마 남지 않은 ‘어이’가 하늘로 증발하는 기분이 든다.      


…아… 저 쪼만한 새끼… 아무리 유딩이라지만 인성이 벌써 누렇게 떴네? 근데, 저 새끼 엄마라는 저 새파랗게 젊은 여자는 뭐하냐? 지 자식이 남의 자식을 때렸는데, 그냥 가만히 있네?     


 내가 야려 보는 게 느껴졌는지 그 남자애 엄마는 EBS 라디오의 너무나 우아하고, 고상한 육아 전문가의 강의 시간에 나올 것 같은 목소리로 아들의 눈치를 보며, 애 앞으로 가더니 사탕 하나를 쥐여 주고 사정사정하듯 말한다.      


“아드을? 이 사탕 수영이 갖다 줘, 얼른… 수영이 울잖아…”  


 친구 때려놓고 사탕으로 입막음하라고? 애 참 잘 가르친다. 나는 헛웃음이 피식. 나왔다. 사람 마구 쳐놓고 “이거면 돼냐?” 하면서 돈을 피해자 면전에 마구 뿌리는 영화가 생각난다. 누가 봐도 이 상황엔 ‘너 그러면 안 돼, 친구 때리는 거 아니야. 당장 가서 사과하고 와.’ 가 정석이고 FM아닌가? 사탕? 나중에 지 자식 감옥 가도 돈으로 해결할 여자네?


그리고 대체 왜, 아들 가진 엄마들은 그렇게 '아드을? 아들? 하고 부르는 걸까? 지 아들 이름이 없나? 아들이 브라만 같은 계급인건가? 마치 '넌 내 아들이고, 난 아들 가진 엄마고, 그래서 난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참으로 천박하기 그지없는, 조선시대 남아선호사상에 찌들은 여편네같으니.       


 남자애는 한동안 생각하더니 드디어 엄마가 손에 쥐여 준 사탕을 하나 가지고 가서 여자아이에게 내민다. 여자애는 받으려 하지 않는다. 너무 당연하다. 야야, 받지마… 받지마… 그냥 계속 버스 떠나가라 울어!     


그때 여자애 엄마가 드디어 말을 한다.      

“얼른 받아~ 범수가 미안하대잖아…”      


 물론 범수는 수영이를 때려놓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자기 엄마가 시켜서 억지로 사탕을 내밀었을 뿐. 수영이는 울다 말고 고민하는 눈치다. 수영이 엄마가 사탕을 대신 받아 껍질을 까서 자기 딸 손에 쥐여 준다.


그제야 할 수 없이 수영이는 사탕을 몇 번 빨아 먹기 시작했고, 범수도 엄마가 하나 더 준 자기 사탕을 각자 따로 앉아서 빨아 먹는다. 아이들은 둘 다 조용해진다. 1~2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수영이는 여전히 억울했는지 머리를 만지며 엄마에게 하소연한다.      


“엄마, 머리가 너무 아팠어…”     


그러자, 수영이 엄마가 딸에게 한 말은 내 귀를 의심하게 했다.   


“그러니까 아까 왜 범수랑 같이 안 앉고 다른 자리로 갔어~ 그러니까 범수가 화가 나서 때린 거지…”     


뭐? 진짜 친엄마 맞냐?


그렇게 버스 안에서 정적이 흐르고, 범수와 그 엄마가 목적지에서 내린다. 부드럽게 웃으면서, 수영이 엄마에게 인사하며… 마찬가지로 수영이 엄마도 웃으며 인사를 받는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와. 참 아름답네?     


 수영이와 엄마는 두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렸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수영이 엄마란 여자는 남편에게 맞고 사나? 자기 자식이 남에게 맞았는데 화도 안 나나? 범수 엄마가 혹시 남편 상사 부인인가?  


하지만 나는 일면식도 없는 남의 일에 오지랖 넓게 끼어들 만큼 정의감이 넘치지 않는다. 괜히 애 엄마들 일에 말려들면 상당히 귀찮아진다.


나는 그렇게 입을 닫았다. 계속 입술이 달싹거리는 걸 참으면서. 아… 기분 안 좋다. 가뜩이나 속도 안좋은데 먹은 게 또 올라오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계속 소화불량 일기를 써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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