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다섯 시 십 분. 너무 일찍 왔네. 송연이 수업이 끝나려면 이십 분 더 기다려야 하는데. 게다가 이 지지배는 비싼 미술 학원비를 아주 제대로 뽕을 뽑는다. 수업이 끝나도 한 이십 분은 기본적으로 지체하면서 이쁜 선생님들 퇴근을 늦게 만든다.
몇 번 데리고 오면서 송연이 작품을 봤지만 내 조카라서가 아니라 정말 그림 하나는 잘 그린다. 나처럼 잘하는 거 하나 없는 삼촌보다 훨 낫다. 나는 카페처럼 꾸며진 부모님 대기실에서 원두커피를 하나 뽑아 들고, 책도 한 권 집어서 대충 읽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호~! 내 방망이를 받아랏~~~!!! 으하하하하하!!!”
“악~~~ 하지마~~~!!!!!”
갑자기 일곱 살 정도 된 남자아이가 자기 몸집만큼이나 커다란 종이 방망이를 만들어서 휘두르면서 뛰어나온다. 동갑내기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향해 때리는 것 같은 시늉을 한다. 여자아이는 도망치며 소리치고 운다. 한참 동안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조용한 대기실이 시끄러워졌다. 아,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여긴 매번 이렇다니까.
여자애가 울고 도망치는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남자아이의 방망이 위협은 더 심해진다. 그때 한쪽에서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던 여자아이 엄마가 나와서 딸을 다그친다.
“얘가! 왜 이렇게 시끄러워!”
“엄마~~ 형남이가~~ 방망이로 이렇게~~~ !!!”
형남이라는 그 남자애는 벌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유, 몰라! 아무튼, 여기서 이렇게 시끄럽게 울지 마! 뚝!”
엄마의 호통에, 그리고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 모습에 아이는 더 서럽게 운다..
“엉엉엉~~ 으아아앙~~~~”
“얼른 가자.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인사해야지!!”
아이 엄마는 어떻게든 울던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문밖을 나섰다. 조금 있다가 형남이 아빠가 나왔다. 아들에게 조그만 소리로 묻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남자아이는, 약간 어깨를 으쓱 해 보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빠도 더는 묻지 않는다. 그렇게 큰 소리로 한참 소란을 피웠는데. 아빠와 아들이 똑같다. 둘 다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서로 묻고, 모른다고 대답한다.
뭐, 적어도 형남이는 그때 그 버스 안에서 본 범수보다는 낫다. 하지만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가 느꼈을 공포를 그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아이는 단지 미술학원에서 시끄럽게 했다고,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혼내는 엄마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아까 형남이 아빠한테, 아들이 방망이로 장난한 것이 다른 아이를 무섭게 했다고 말할 걸 그랬다. 위액 분비가 살짝 많아진 듯하다.
“누나, 나 왔어.”
“응~ 우리 송연이 잘 데리고 왔지? 어서와~”
토끼 그림이 그려진 방수 재질의 보라색 앞치마를 입고 누나는 나를 맞이한다. 라디오는 항상 그렇듯 104.5에 맞춰놓았다. 원어민의 쏼라 쏼라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만 할 수 없다. 누나는 항상 “그래야 영어 한마디라도 더 익히지”라고 한다. 오늘은 누나가 기분이 좋은지 혼자 흥얼거린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폴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누나는 내가 오기 한 시간 전 전기밥솥에서 남은 밥을 퍼서 사발에 담아놓고 마르지 않게 랩을 씌워 놓았을 것이다. 내가 랩을 씌운 밥을 보고 이건 뭐냐고 하면 항상 ‘찬밥’이라고 한다.
랩 안쪽에 김이 서린 걸 보면 분명 찬밥 아니고 더운밥인데, 새 밥을 짓게 되면 그전 밥은 어김없이 ‘찬밥’이 되는 걸까? 밥이 많이 남았는데 왜 새로 하냐고 하면 누나는 매번 '네 매형이 원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누나는 빈 밥솥을 깨끗이 씻어서 그 안에 한 바가지의 쌀을 붓고, 찬물을 붓고, 쌀을 씻었을 것이다. 여전히 누나가 제일 좋아하는 동요의 한 구절을 변형해서 부르면서…
“새 쌀을 붓고 씻어보자 샥샥~! 쌀알이 밭솥 에서 웃는다~~~”
밥을 안치고, 냄비에 물을 부어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켰을 것이다. 국물 멸치를 대여섯 개 넣고 보통 불에서 뚜껑을 닫고 끓인 뒤, 십 분 정도 있다가 냄비뚜껑을 열면, 멸치가 끓는 물 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 모양이 된다. 또 노래했겠지.
“멸치를 넣고 끓여보자 팔팔~! 멸치가 국물 안에 춤춘다~~~~”
누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상 차리는 건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누나가 채소를 씻고 주요리를 해 놓으면, 내가 상 차리는 걸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