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불량 일기-4

Day 3. 누나의 밥상

by 아스트랄

정독도서관에 들렀다가 신문을 잠깐 읽고 있었다…가… 졸고 있는데 누나한테서 문자가 왔다.


‘야, 나 오늘 갑자기 일이 조금 늦어져서 말인데 송연이 미술학원에서 좀 데려와 줄래?’

‘^-.-^ 우쒸…’

‘*^^* 잘생기고 멋진 동생아~ 부탁해~ 저녁에 울 집에 와서 갈비 먹자~’

‘…그래’


갈비땜에 해준다. 흐.


저녁 다섯 시 십 분. 너무 일찍 왔네. 송연이 수업이 끝나려면 이십 분 더 기다려야 하는데. 게다가 이 지지배는 비싼 미술 학원비를 아주 제대로 뽕을 뽑는다. 수업이 끝나도 한 이십 분은 기본적으로 지체하면서 이쁜 선생님들 퇴근을 늦게 만든다.


몇 번 데리고 오면서 송연이 작품을 봤지만 내 조카라서가 아니라 정말 그림 하나는 잘 그린다. 나처럼 잘하는 거 하나 없는 삼촌보다 훨 낫다. 나는 카페처럼 꾸며진 부모님 대기실에서 원두커피를 하나 뽑아 들고, 책도 한 권 집어서 대충 읽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호~! 내 방망이를 받아랏~~~!!! 으하하하하하!!!”

“악~~~ 하지마~~~!!!!!”


갑자기 일곱 살 정도 된 남자아이가 자기 몸집만큼이나 커다란 종이 방망이를 만들어서 휘두르면서 뛰어나온다. 동갑내기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향해 때리는 것 같은 시늉을 한다. 여자아이는 도망치며 소리치고 운다. 한참 동안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조용한 대기실이 시끄러워졌다. 아,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여긴 매번 이렇다니까.


여자애가 울고 도망치는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남자아이의 방망이 위협은 더 심해진다. 그때 한쪽에서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던 여자아이 엄마가 나와서 딸을 다그친다.


“얘가! 왜 이렇게 시끄러워!”

“엄마~~ 형남이가~~ 방망이로 이렇게~~~ !!!”


형남이라는 그 남자애는 벌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유, 몰라! 아무튼, 여기서 이렇게 시끄럽게 울지 마! 뚝!”

엄마의 호통에, 그리고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 모습에 아이는 더 서럽게 운다..

“엉엉엉~~ 으아아앙~~~~”

“얼른 가자.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인사해야지!!”


아이 엄마는 어떻게든 울던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문밖을 나섰다. 조금 있다가 형남이 아빠가 나왔다. 아들에게 조그만 소리로 묻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남자아이는, 약간 어깨를 으쓱 해 보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빠도 더는 묻지 않는다. 그렇게 큰 소리로 한참 소란을 피웠는데. 아빠와 아들이 똑같다. 둘 다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서로 묻고, 모른다고 대답한다.


뭐, 적어도 형남이는 그때 그 버스 안에서 본 범수보다는 낫다. 하지만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가 느꼈을 공포를 그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아이는 단지 미술학원에서 시끄럽게 했다고,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혼내는 엄마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아까 형남이 아빠한테, 아들이 방망이로 장난한 것이 다른 아이를 무섭게 했다고 말할 걸 그랬다. 위액 분비가 살짝 많아진 듯하다.


“누나, 나 왔어.”

“응~ 우리 송연이 잘 데리고 왔지? 어서와~”


토끼 그림이 그려진 방수 재질의 보라색 앞치마를 입고 누나는 나를 맞이한다. 라디오는 항상 그렇듯 104.5에 맞춰놓았다. 원어민의 쏼라 쏼라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만 할 수 없다. 누나는 항상 “그래야 영어 한마디라도 더 익히지”라고 한다. 오늘은 누나가 기분이 좋은지 혼자 흥얼거린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폴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누나는 내가 오기 한 시간 전 전기밥솥에서 남은 밥을 퍼서 사발에 담아놓고 마르지 않게 랩을 씌워 놓았을 것이다. 내가 랩을 씌운 밥을 보고 이건 뭐냐고 하면 항상 ‘찬밥’이라고 한다.

랩 안쪽에 김이 서린 걸 보면 분명 찬밥 아니고 더운밥인데, 새 밥을 짓게 되면 그전 밥은 어김없이 ‘찬밥’이 되는 걸까? 밥이 많이 남았는데 왜 새로 하냐고 하면 누나는 매번 '네 매형이 원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누나는 빈 밥솥을 깨끗이 씻어서 그 안에 한 바가지의 쌀을 붓고, 찬물을 붓고, 쌀을 씻었을 것이다. 여전히 누나가 제일 좋아하는 동요의 한 구절을 변형해서 부르면서…


“새 쌀을 붓고 씻어보자 샥샥~! 쌀알이 밭솥 에서 웃는다~~~”


밥을 안치고, 냄비에 물을 부어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켰을 것이다. 국물 멸치를 대여섯 개 넣고 보통 불에서 뚜껑을 닫고 끓인 뒤, 십 분 정도 있다가 냄비뚜껑을 열면, 멸치가 끓는 물 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 모양이 된다. 또 노래했겠지.


“멸치를 넣고 끓여보자 팔팔~! 멸치가 국물 안에 춤춘다~~~~”


누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상 차리는 건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누나가 채소를 씻고 주요리를 해 놓으면, 내가 상 차리는 걸 돕는다.


“자~ 숟가락 놓고, 이거랑 저거 분리수거 통에 넣고…, 김치통 꺼내주고, 쌈장 떠 놔줄래?”


나는 오로지 갈비를 먹기 위해 누나가 시키는 일들을 아무 소리 않고 하나씩 완수해 간다.


“근데 매형은? 언제 와?”


“응… 여덟 시쯤? 차려 놓고 있으면 오겠지!~”


띠~리리~~ 띠리, 띠릿, 띠리리…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매형이 오셨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말은 언제나 유효하다. 마침 EBS 라디오에서 프로그램 진행자가 쾌활한 목소리로 영어 퀴즈를 낸다.


“Speak of the Devil”의 뜻이 뭘까요? 아시는 분은 샵 일 공 사오 또는 반디게시판, 카카오톡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물로 커피를 드립니다~!“


“어이~ 처남 왔어? 오늘 또 우리 송연이 일일 보모네? ”


서류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고, 매형은 내 어깨를 툭툭 친다. 약간 기분 나쁘네. 헐.


저녁 식탁에 앉았다. 매형과 나, 그리고 송연이가 자리에 앉으면 누나는 완벽하게 차린 임금님표 12첩 반상에 마지막으로 겨우 앉는다.


이제 몇 번 수저질과 젓가락질이 오가고, 매형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누나에게는 밥을 먹다 말고 다른 미션이 주어진다. 모자란 반찬 더 떠오기, 고기에 곁들일 초장과 쌈장, 기름장 더 만들어 오기, 상추와 고추, 깻잎 등 채소 추가하기.


게다가 메뉴가 매형의 맘에 들수록, 누나의 요리가 잘 되면 될수록 누나는 밥 한두 숟가락 뜬 뒤엔 여전히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마치 식당 아줌마가 된 듯 서빙을 해 댄다. 보다 못한 내가 일어나려 하면 매형은 눈에 힘을 주며 말한다.


“어허! 그냥 앉아있어!”


그럴 때면 꼭 내가 일어나서 누나 일을 돕는 게 같은 남자로서 동지의식에 대한 배반이라도 하는 듯한 기분이 된다. 아니. 사실은 배가 고프고 귀찮아서 그런 잠깐의 죄책감은 사라지고 만다.

마침내 송연이가 먼저 다 먹고, 매형과 내가 식사를 마치면 식탁은 꼭 메뚜기 떼가 흩고 지나간 이집트의 형상이 된다. 그래도 여전히 누나의 밥그릇과 국그릇엔 밥과 국이 반 이상 남아 있다. 매형은 ‘잘 먹었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신문지를 들고 거실로 가버린다.


이제 드디어 누나가 남은 밥을 먹을 차례다. 식탁엔 찌꺼기만 남은 밥그릇들과 국그릇들과 반찬 그릇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놓여있는 휴지들, 송연이가 먹다가 흘린 김칫국물과 밥풀이 보인다.


이제 누나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미션은 하이에나처럼 다들 먹고 남긴 밥과 반찬을 깨끗이 비워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보호에 일조했다는 뿌듯함을 가져가는 것뿐.


허겁지겁 남은 밥과 반찬을 혼자 앉아 먹고 있는 누나를 흘깃 바라보면서 나는 밥 먹기 전에 본, 누나가 랩을 씌워 놓은 '더운 김이 나는 찬밥'을 떠올린다. 지금의 누나의 모습이 딱 그렇다.


누나, 몇 년 뒤 비만은 둘째 치고 심각한 위경련이 일어날지도 몰라.


근데 나 이렇게 그냥 앉아있어도 되는 걸까? 누나를 이렇게 식당 종업원 취급해도 되는 걸까? 나 동생 맞는 걸까? 왜 나는 누나가 해주는 맛있는 갈비를 먹었는데도 소화가 잘 안 돼는 것 같은 걸까ᆢ?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4화소화불량 일기-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