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어 1등급, 영어가 3등급이며, 사탐 과목은 3, 4등급 정도 된다. 오로지 그놈의 수학, 수학만 등급을 올릴 수 있다면ᆢ 나는 수도권에 있는 대학으로 진출할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는 거다!
대학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대학, 대학 하면서 자신의 월급의 반 이상을 매달 자녀의 사교육비에 갖다 바치는가?
그건 바로삶의 환경, 아니 운명 자체가 획기적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 대학 동기들, 선후배들, 거기서 만날 수 있는 엄청난 사회관계망의 혜택이 달라짐과 동시에 결정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미래배우자의 범위와수준이 완전히 바뀐다!
즉, 그 관계망의 거미줄이 낡고 썩은 머리카락 같은 곳일지, 아니면 아주 튼튼한 면사 실로 넓고 크게 구성되어 있을지, 은그물일지, 금빛과 다이아몬드로 반짝거리며 그 안에 각종 과실들이 풍요롭게 걸려 있는 놀라운곳이 될지는,
바로 내 생기부에 쓰인 내신성적 등급의 숫자로 결정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ᆢ 나는 글자 그대로 정말 미치고야 말았다. 내 이름 따위, 정의 따위, 아빠의 직업 따위, 양심 따위, 그 무엇도 전혀 필요하지 않다. 나의 창창한 앞날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건 오히려 비겁한 것이고 나약한 것이다.
나는 사실 주변 여자애들이 수행평가를 앞두고 그렇게 생리결석을 써 댈 때도 꿋꿋이 등교를 할 정도로 정직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ᆢ친구들은 그런 나를 비웃으며 말하곤 했다. "이용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데도 이용하지 못하는 게 바로 진정한 바보이며, 노예근성인 거"라고ᆢ
완전범죄는 범죄가 아니다! 이 시험문제에 관련해 아는 사람은 순진이와 나뿐이다.그리고 순진이가 시험문제를 어떻게 얻었는지 몰라도, (아마 극비리에 어떤 방법을 썼을 것이다) 나 이외에 다른 아이들을 끌여들였을 확률은 높지 않다.
게다가 내가 누구를 해치거나 일부러 불이익을 준 건 아니지 않은가? 막말로 내가 직접 시험지를 훔친 것도 아니고, 누구를 사주한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산 것도 아니다. 내겐 정말 '우연히' 생긴 이득일 뿐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대통령이나 재벌들의 아들 딸들이 향유하는 이득도 마찬가지로 '우연히' 이루어진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