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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랄 Nov 21. 2024

정의로운 삶-3

3. 결정

하지만ᆢ 곧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했다.


수학은 나의 내신 등급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과목이다.

 만일 이번 기말고사에서 내가 수학 1등급을 찍는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국어 1등급, 영어가 3등급이며, 사탐 과목은 3, 4등급 정도 된다. 오로지 그놈의 수학, 수학만 등급을 올릴 수 있다면ᆢ 나는 수도권에 있는 대학으로 진출할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는 거다!


대학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대학, 대학 면서 자신의 월급의 반 이상을 매달 자녀의 사교육비에 갖다 바치는가?


그건 바로 삶의 환경, 아니 운명 자체가 획기적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 대학 동기들, 선후배들, 거기서 만날 수 있는 엄청난 사회관계망의 혜택이 달라짐과 동시에 결정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미래 배우자의 범위와 수준이 완전히 바뀐다!


즉, 그 관계망의 거미줄이 낡고 썩은 머리카락 같은 곳일지, 아니면 아주 튼튼한 면사 실로 넓고 크게 구성되어 있을지, 은그물일지, 금빛과 다이아몬드로 반짝거리며 그 안에 각종 과실들이 풍요롭게 걸려 있는 놀라운 곳이 될지는,


바로 내 생기부에 쓰인 내신성적 등급의 숫자로 결정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ᆢ 나는 글자 그대로 정말 미치고야 말았다. 내 이름 따위, 정의 따위, 아빠의 직업 따위, 양심 따위, 그 무엇도 전혀 필요하지 않다. 나의 창창한 앞날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건 오히려 비겁한 것이고 나약한 것이다.


나는 사실 주변 여자애들이 수행평가를 앞두고 그렇게 생리결석을 써 댈 때도 꿋꿋이 등교를 할 정도로 정직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ᆢ친구들은 그런 나를 비웃으며 말하곤 했다. "이용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데도 이용하지 못하는 게 바로 진정한 바보이며, 노예근성인 거"라고ᆢ


완전범죄는 범죄가 아니다! 이 시험문제에 관련해 아는 사람은 순진이와 나뿐이다. 그리고 순진이가 시험문제를 어떻게 얻었는지 몰라도, (아마 극비리에 어떤 방법을 썼을 것이다) 나 이외에 다른 아이들을 끌여들였을 확률은 높지 않다.


게다가 내가 누구를 해치거나 일부러 불이익을 준 건 아니지 않은가? 막말로 내가 직접 시험지를 훔친 것도 아니고, 누구를 사주한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산 것도 아니다. 내겐 정말 '우연히' 생긴 이득일 뿐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대통령이나 재벌들의 아들 딸들이 향유하는 이득도 마찬가지로 '우연히' 이루어진 게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순진이가 나에게 한 말과 그 애의 해맑은 표정 순간 떠올랐다.


"이따가 꼭 읽어 봐!"


ᆢ 그래서 나는 결심, 아니 결정했다.


일단 시험 문제를 풀어보기로.




"정의로운 삶"은 동명의 또다른 브런치북으로 계속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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