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더니 나는 과연 사랑을 받긴 하는 건가, 왜 늘 나와 상관없이 주변이 날 힘들게 하는 걸까. 다 거짓말이다, 내가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이럴 수는 없다 생각했다.
얼마 전, 함께이면 즐거운 이들과 양평 용문사로 나들이를 갔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 사진을 찍고 있는데 스님 한 분이 다가오셔서 우리 앉은 옆에 자리하셨다. 지나가시던 길에 사진에 방해될까 봐 잠시 기다리신 거란다. 알고 보니 거기의 주지스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이차를 대접하겠다는 스님 말씀에 손님방(?)에 들어갔다. 내가 요즘 우울한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일행의 질문에 스님은 왜 행복하지가 않느냐 물으셨다.
"어릴 땐 집이 가장 무섭고 불편한 곳이었어요. 이제 자라서 내 선택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만하면 잘 살지 했는데 남편이 외도를 하네요."
두 문장으로 설명했다. 스님은, 속세의 생활과는 다른 생활을 하시니 현실적인 답은 모르는 게 사실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다고 하신다. 주변의 모든 것을 떠나서 내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맞다. 사랑받으려고만 하는 건 욕심이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행복해야 하는 거였다.
행복하려고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혼자서 취미도 가져보고, 운동도 해보고, 독서로 현실도피도 해보고, 식물도 키워보고, 지나가는 강아지 한 마리도 최대한 예쁜 눈빛으로 봐주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되지 않아 병원에 가고 약도 열심히 먹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공허하고 억울했다.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주변은 이럴까 화가 났다.
스님 말씀이 너무 뻔한 말이기도 한데 그날은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럴 인연으로 만나서였을까, 계속 머릿속에 스님 말씀이 맴돌았다.
양평에서 돌아와 성당에 들렀다. 예수님께 인사하며 사과드렸다. 받으려고만 했었다고. 노력한다고 했지만 원망하며 노력했다고. 앞으로, 100프로 되진 않겠지만 최대한 행복하려고 더 노력하겠다고. (아, 정신과 의사가 지금은 너무 노력하지도 말랬는데.. 에너지를 너무 쓰다 다시 무기력해진다고.. 이런.)
어쨌거나 나를 먼저 생각해야겠다. 내가 중심이 되는 생활. 내가 중심이 되는 선택.
내가 중심을 잘 잡고 있으면 주변의 방해에 덜 흔들리는 나무가 되겠지.
일단 그날은 너무 행복했다. 종일 웃었고 종일 햇볕을 쬐었으며 신기한 인연도 만나고, 절에서 하느님께 회개하는 희한한 경험도 하고, 마무리로 맛있는 곱창도 먹었다. 남은 오늘도 나는 나의 행복을 만들 거다. 살찔 걱정을 하면서도 우걱우걱 먹고, 사춘기 소녀들의 지지배배 수다를 들어주고,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곡을 듣고, 샤워 후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우리집 김치냉장고 맥주를 마실 거다.
나는 행복하려고 태어났다. 사랑받으려고 태어났다. 남이 사랑하지 않아도 내가 사랑해 주면 된다. 나에게 사랑받자.